우유통을 들고 걷는 우리에게

by 아침햇살

나는 요즘 자주 '나라다'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인도 우화에 등장하는 세상에서 신을 제일 사랑한다고 자부했던 그 수행자 말이다. 나름 “내 신심이 최고!” 를 외치며 으쓱거릴 즈음, 신께서 느닷없이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나라다야, 곁에 있는 농부 한 명과 며칠 지내보거라.” 솔직히 좀 억울하다. 내 기도며 명상은 어디 가고, 하루 두 번밖에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농부가 갑자기 나의 롤모델이 되다니!

신의 취향이 너무 틀렸다 생각하며, 삐져서 농부를 찾아간다.


농부를 보니 정말 평범함 그 자체다. 아침에 신의 이름을 한 번, 밤엔 또 한 번 부르는 게 하루 종일 신에게 바치는 시간의 전부였다. 낮에는 온통 밭일만 하고, 돌아와선 애들 챙기고, 늦게서야 겨우 한 번 신의 이름을 생각한다! 아니, 저렇게 성의 없이 신을 대하면 신께서 기분이 상하지 않으실까? '나였다면 하루에도 스무 번은 신을 찾았을 텐데…' 속으로 꽁하게 생각한다. 내 신앙심, 비교 불가 아니던가?


딱 그 타이밍에 신이 또 말을 건다. “나라다야, 이 우유통을 머리에 이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오너라. 단, 한 방울도 흘리지 말거라!” 쉬울 줄 알았는데, 한 발 내딛자마자 신경은 온통 우유통으로 집중된다. 조심조심, 삐걱삐걱… 겨우 한 바퀴를 돌아 돌아왔더니


신이 물으신다. “걷는 동안 나를 얼마나 생각했느냐?”

나는 솔직했다. “사실 한 번도요. 우유를 쏟지 않으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신이 큭큭 웃으신다. “그랬구나. 그런데 저 농부를 봐라. 가족 부양에 바쁜 와중에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내 이름을 잊지 않는구나.”


뜨끔했다. 내 신앙은 ‘나는 진짜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자부심과 남과 비교, 질투가 섞여있었다. 실제로는 내 일에 쫓겨 하루 종일 신을 떠올릴 겨를도 없으면서, 남보고 ‘신앙심 없다’고 푸념했던 나였다.


오히려 농부는 바쁜 삶 한가운데서 잠깐이라도 신을 생각하며 마음을 여는 그 순간이 진짜 귀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우유통을 들고 사는 중이다. 회사일·집안일·공부에 허덕이다 보면, “신이 뭐였더라” “내가 왜 이러지” 한 번쯤 중얼거릴 뿐이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이, 뭔가 근사한 기도나 명상보다 훨씬 진실한 신을 찾음인지도 모른다.


신앙이란, 하루 종일 신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 번 진심으로 마음을 열 수 있는 용기. 남과 비교해 우쭐대거나 스스로 위로하지 않아도, 내 삶의 본질이나 소중한 가치를 조용히 떠올릴 줄 아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우유를 흘릴까 밤새 뒤척이던 나라다에게, 신은 말했다. “무게만큼만 신경 쓰되, 가끔 내 이름을 기억하는 그 순간이 네 마음의 진짜 무게란다.”


지금도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우유통 하나씩을 들고 세상을 걸어가고 있다. 남이 더 잘 한다며 부러워하거나, 내 짧은 순간에 부끄러워하지 말자. 사실 신은, 그 잠깐의 진실한 미소에 더 큰 위로와 기쁨을 느끼지 않을까?


그러니 다음에 삶이 팍팍할 때 우유통을 들고 무거워 휘청일 때면, 나라다가 되어 “지금 이 순간, 내가 신의 이름 한 번을 부를 수 있으면 참 잘한 거지!” 하고 웃어넘기면 된다.


우유통을 들고 걷는 세상의 수많은 나라다에게, 오늘도 신은 조용히 미소 짓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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