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코끼리와 작은 씨앗

by 아침햇살

석가모니는 제자들을 세 가지 항아리에 비유했다고 한다. 첫째 항아리는 뚜껑이 꼭 닫혀 있어서 천 번, 만 번 가르침을 부어도 단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다. 둘째 항아리는 밑바닥에 구멍이 나서 아무리 채워도 줄줄 새어나간다. 셋째 항아리는 열려 있고 밑도 멀쩡하지만 안이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차 새 물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이것이 불행한 제자들의 모습이었다.


여기에 예수의 말씀을 더해 보자. 겨자씨만 한 믿음이라도 제대로 작동되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믿음이 히말라야보다 더 큰 힘을 낸다는 얘기다.


이쯤에서 눈을 굴리지 말고, 서커스 코끼리를 떠올려 보자. 야생에서는 나무를 뽑고 트럭을 밀어버릴 힘을 가진 코끼리가, 서커스장에서는 가느다란 줄에 얌전히 묶여 있다. 왜일까? 새끼일 때 굵은 쇠사슬에 묶여 도망치려다 번번이 실패했다. 그 기억이 각인되어 “나는 도망칠 수 없다”는 믿음이 뼛속까지 새겨진 것이다. 그래서 줄이 아무리 얇아져도 더 이상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코끼리를 잡고 있는 것은 줄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믿음이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안 돼!”라는 말을 수만 번 듣는다. 하지 마라, 조용히 해라, 꿈 크게 꾸지 마라. 그렇게 길러진 마음은 얇은 줄에도 갇혀 산다.


하지만 믿음은 양날의 칼이다. 옛 소련 역도 선수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500파운드의 벽을 넘을 수 있었던 건, 코치가 무게를 속였기 때문이었다. 450파운드를 들면서 500이라고 믿었더니, 진짜로 500이 무너지더라는 것이다. 또 어떤 실험에서는 농구 선수가 슛을 ‘상상만’ 해도 실제 연습한 선수만큼 실력이 늘었다고 한다. 머리가 먼저 길을 열면 몸이 따라오는 것이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실질적 힘을 낸다는 증거다.


문제는 우리가 그 힘을 어디에 쓰느냐다. 믿음은 전기와 같다. 도시를 밝히는 빛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을 태우는 불꽃이 될 수도 있다. 파괴적으로 쓰면 불신과 두려움의 감옥, 곧 지옥을 만든다. 창조적으로 쓰면 치유와 자유, 곧 천국을 연다. 천국과 지옥은 저 멀리 있는 장소라기보다 우리가 믿음으로 지어 올리는 건축물에 가깝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믿고 있나?”가 아니라 “무엇을 믿고 있나?”이다. 코끼리처럼 끊을 수 있는 줄을 믿는가, 아니면 아직 시도해 보지 않은 자유를 믿는가?


결국 인생은 우연한 찬스(chance)가 아니라 즐거운 댄스(dance) 다. 음악은 이미 흐르고 있다. 이제 발걸음을 내딛고, 줄을 끊어내며, 겨자씨만 한 믿음으로 산을 옮기든, 아니면 서커스 천막 정도는 흔들어 보든, 우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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