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용 인생에서 사용 중 인생으로
이웃에 사는 남자가 자동차를 샀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차였다. 문제는, 그 반짝거림이 매일 아침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매일같이 그 차를 닦았다. 닦고 또 닦고, 닦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차가 한 번도 도로 위에 나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먼지도, 비도, 긁힘도 두려웠다. 완벽히 새것인 그대로의 상태로 그 차를 간직하고 싶었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 차를 한 번도 타지 않나요? 엔진은 아직 살아 있나요?”
그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 차를 사랑합니다. 너무나 사랑해서 상처받을까 두려워요. 혹시라도 스크래치라도 생기면, 내 마음이 찢어질 거예요.”
그때 깨달았다. 그는 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차에게 ‘갇혀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소유하면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새 휴대폰, 최신형 노트북, 명품 가방, 혹은 잘 짜인 인스타그램 피드까지. 하지만 웃기게도, 소유하면 할수록 그것이 우리를 소유한다.
그 남자는 자동차를 산 것이 아니라, 자동차에게 잡아 먹힌 것이다.
당신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그 스마트폰이 당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매일 아침 그것을 닦지는 않지만, 매번 알림이 울릴 때마다 무릎을 꿇고 반응하지 않는가?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그들은 물건에 대한 두려움을 사랑한다고 해야 맞다.”
그 남자가 차를 닦을 때마다 하는 일은 사랑의 의식이 아니라, 두려움의 의식이었다.
“혹시라도 잃어버리면 어쩌지?”, “상처 나면 어쩌지?” 이 두려움이 그를 매일 같은 길로 끌고 갔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이런 ‘자동차’가 하나씩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몸을, 어떤 이는 커리어를, 어떤 이는 인간관계를 그토록 닦는다.
‘완벽해지고 싶다’는 그럴듯한 말 뒤에는 ‘흠집 하나 없는 진열품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완벽해지려는 순간, 인생은 멈춘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부딪히고, 더러워지고, 긁히기 마련이다.
살아 있는 것은 흠집투성이다. 살아 있는 사랑은 다투고 화해하며 성장한다. 살아 있는 몸은 주름지고 흉터가 남는다. 진짜 여행은 먼지를 뒤집어쓴 것처럼 어수선하다.
그 남자의 차는 멋지지만, 이미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박제된 생명체’였다.
그것은 죽은 완벽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르며 너무 많은 것에 속박된다.
사랑해서 아이의 인생을 대신 결정한다.
사랑해서 연인의 휴대폰을 몰래 본다.
사랑해서 자신을 혹사한다.
사랑해서 돈을, 명품을, 타인의 시선을 포기하지 못한다.
사랑은 자유를 주는 일인데, 많은 사랑이 현실에서는 감옥이 된다.
그 남자는 자동차를 정말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자유를 주는 사랑이 아니라 소유를 향한 집착이었다.
진짜 사랑은 상대가 먼지를 뒤집어써도, 길 위에서 비를 맞아도 괜찮다고 미소 짓는 것이다.
진짜 사랑은 사용되더라도, 닳더라도, 여전히 아름답다.
당신의 인생 차고 안에도 언제나 새것인 채로 묶여있는 어떤 것이 있지 않은가?
한 번도 실행해보지 못한 꿈, 부끄럽다는 이유로 꺼내지 못한 감정, 혹은 "언젠가 해야지" 하며 밀어둔 사랑. 그것들은 매일 닦이고 있지만, 결코 길 위로 나오지 못한다.
이제 그 차를 끌고 나와 보자.
스크래치가 나도 괜찮다. 사고가 나면 고치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당신의 삶이 지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살아 있는 한, 흠집은 존재의 흔적이다.
당신이 스스로를 너무 닦지 말라. 반짝이는 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지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용기다.
“먼지를 두려워하지 말라. 먼지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진짜 생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