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를 믿는 어른들의 심리학

기적을 핑계로 책임을 미루는 마음에 대하여

by 아침햇살

인생이 완전히 끝난 것 같다고 느낀 한 남자가 있었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고, 직장은 사라졌고, 집마저 은행에 넘어갔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낀 그는, 이제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절망의 순간, 아래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뛰어내리지 말아요. 나는 당신을 도울 수 있소.”

그 목소리의 정체는, 바로 주름투성이의 늙은 마녀였다. 남자는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겠지. 손해 볼 건 없잖아.” 그리고 마녀의 조건, “내 집에서 와서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을 받아들였다. 치욕과 역겨움, 자존심을 삼키며 그는 그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완전히 탈진해서 잠든 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여전히 그 추한 노파가 앞에 서 있었다. 남자는 말했다.

“이제 약속을 지키시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시오.”

마녀가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당신 몇 살이오?”
“마흔두 살이오.”
그러자 마녀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마녀가 있다고 믿는단 말이오?”


이쯤 되면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조금 헷갈린다. 그러나 이 짧은 이야기 안에는, 어른들의 심리가 아주 촘촘히 숨어 있다.


1. 절망이 가져오는 ‘아무 말 대잔치’ 심리


이 남자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라고 생각했다. 이 말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자주 나온다. 문제는, 이 말이 대부분 거짓이라는 데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더 바닥을 향해 내려갈 수 있고, “이 정도쯤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할수록, 이상한 선택을 하게 된다.


절망은 판단력을 흐린다. 논리를 따지기보다는, “지금 당장 이 고통에서만 벗어나면 된다”는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평소 같으면 절대 믿지 않을 이야기,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한다. 마흔두 살 먹은 성인이, 주름투성이 노파를 보고도 “그래, 이 사람은 진짜 마녀일 거야. 내 소원을 들어줄 거야”라고 믿는 것은, 사실 ‘마녀’ 때문이 아니라 ‘절망’ 때문이다.


우리도 비슷하다. 힘들고 지치고, 마음이 무너져 있을 때, 말도 안 되는 제안이 어쩐지 “기적처럼” 보일 때가 있다. 평소에는 절대 안 할 투자, 인간관계를 건 도박, 자존심을 완전히 버리는 선택까지도, “지금보다 나빠지겠어?”라는 말 한마디로 포장해 버린다.\


2. 소원을 위해 관계를 ‘거래’로 만드는 심리


이 남자는 마녀의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자신의 몸과 마음, 자존감을 “소원 세 가지”와 바꾸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그는 이 노파를 “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내 소원을 들어줄 마법의 도구”로 보았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한 인격으로 보기보다, “내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 “내 성공을 도와줄 발판”, “내 외로움을 달래줄 존재” 정도로 여길 때가 많다. 관계를 맺는 이유가, 사랑과 존중이 아니라, 내 안의 결핍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거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마녀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남자를 돕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조건을 내걸고, 그를 자신의 욕구를 위한 도구처럼 사용했다. 어느 순간, 둘은 모두 상대를 대상으로만 보았다.


웃긴 점은, 둘 다 결국 속았다. 남자는 “소원”에 속고, 마녀는 “내가 아직도 통할 거야”라는 자기 착각에 갇혀 있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서로를 도구로만 볼 때, 당장은 이득을 보는 것 같아도, 결국 모두가 상처받고, 신뢰를 잃고, 헛수고만 남게 된다.


3. 아직도 ‘마녀’를 찾는 어른들


이 짧은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은 상당히 유머러스하면서도 뼈를 때린다. “당신은 아직도 마녀가 있다고 믿는단 말이오?” 이 말은 이렇게 바꿔 읽을 수도 있다.

“당신은 아직도 누가 와서 당신 인생을 대신 책임져 줄 거라 믿어요?”
“당신은 아직도 기적 같은 지름길이 있을 거라 기대해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우리는 여전히 “마녀”를 찾고 싶어 한다.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모두 해결되는 기적

나 대신 책임져 줄 누군가

아무 준비 없이, 아무 변화 없이, 손해도 안 보고 얻어낼 수 있는 ‘세 가지 소원’


이런 환상은, 어린 시절 동화에서나 가능한데도, 마음이 힘들어지면 우리는 다시 그 동화의 세계로 도망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자존심도, 시간도, 감정도, 때로는 몸까지도 내어준다.


정작 마녀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래도 혹시…”를 붙잡고,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무리한 부탁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거래를 시도한다. 그리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 보면, 남는 건 후회뿐이다.


4. 진짜 어른의 심리: ‘마녀’ 대신 ‘내 마음’을 보는 것


이 이야기의 교훈은, 단순히 “마녀는 없다”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깨달음은 이것이다.

“마녀를 찾는 내 마음”을 보라는 것이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절망했을까?

왜 나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속였을까?

왜 나는 내 인생의 책임을 누군가의 ‘마법’에 맡기고 싶었을까?

왜 나는 상대를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소원을 들어줄 도구로 취급했을까?


현실적인 심리의 성장은, “기적 같은 누군가”를 찾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슬픔, 분노, 상실감, 외로움, 욕심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건강한 도움을 요청하고, 천천히 관계를 회복하고, 작은 선택들을 다시 책임 있게 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녀의 한마디는 사실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당신은 아직도 마녀가 있다고 믿는단 말이오?”
이 말은 우리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 인생의 진짜 주인이 ‘다른 누군가’라고 믿고 있습니까?”


5. 웃으면서 끝내기


생각해 보면 이 남자는, 참 억울한 사람이다. 인생 바닥에서 간신히(?) 찾아온 기회가 하필이면 ‘노파 마녀’였고, 친절하게(?) 그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줬는데, 돌아온 말은 “아직도 그런 걸 믿어?”니까.

하지만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번만은 진짜야!”라고 믿고 다시 시작한 이상한 연애,

“이 정도면 대박 나겠지!” 하고 덤벼든 무모한 사업,

“이 사람만 잘해주면 내 인생이 달라질 거야”라고 매달렸던 관계.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어딘가에서 마녀가 비웃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은 아직도 그걸 믿는단 말이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주는 가장 큰 위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다 조금씩, 마흔두 살 먹고도 마녀를 믿는 사람들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세 번째에도 똑같이 속지는 않는 것이다.
마녀가 아니라, 나 자신과, 건강한 사람들과, 현실적인 노력과 변화를 믿는 것.

어쩌면 진짜 기적은, 마녀를 만나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마녀 같은 약속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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