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사람 말고, 山 사람으로 새해를 시작하라

스마트폰 대신 침묵을 품은 사람들 이야기

by 아침햇살

1월.
새 다이어리의 첫 장에는 늘 비슷한 글귀가 적힌다. “올해는 진짜 달라질 거야.” 그러나 2주쯤 지나면? 대부분의 사람은 다시 ‘요새 사람’으로 돌아간다.


요새 사람은 늘 바쁘다. 손에는 스마트폰, 마음엔 불안, 머릿속엔 일정표가 꽉 찬 사람이다.


예수는 요새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산 사람들 — 모세, 엘리야, 예수 — 그들은 ‘산에 가는 사람’이었다. 단지 힐링 캠핑을 간 게 아니라, 자기 안의 소음을 멈추러 간 사람들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공처가”라는 소문이 난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술김에 친구들 앞에서 “오늘은 내가 2차를 우리 집에서 쏜다!”라며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집 문 앞에 이르자마자 술이 깨고 아내 얼굴이 떠올랐다. 무서웠다. 그래서 친구들을 문 앞에 세워두고 혼자 들어가 “오늘만 봐줘”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내는 딱 잘라 말했다.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안 돼!”


결국 그는 다락방에 숨어버렸고, 아내는 문을 열고 남편의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우리 남편 안 왔어요.” 그 말을 듣다가 결국 다락방에 숨어 있던 남편이 뛰쳐나와 외쳤다. “들어오긴 했지만, 뒤로 나갈 수도 있잖아!”


이 이야기가 웃긴 이유는 단순하다. 요새 사람은 이렇게 논리로 자기 실체를 감추는 데 능하다. 말은 그럴듯한데, 삶은 딴판이다. “나 잘 살고 있어요”라며 인스타에 웃는 얼굴을 올리지만, 현실은 다락방 속 공처가처럼 두려움에 숨어 있다.


예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예”면 예, “아니요”면 아니 오를 말한 사람이다. 자기 안의 소음과 논리적 핑계를 잠재운 사람, 오직 ‘지금 여기(here and now)’를 산 사람이다.


어떤 도인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욕하며 부르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자기 진짜 ‘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름, 직업, 팔로워 수 같은 가짜 껍집을 자기 정체성으로 착각하며 산다. 하지만 진짜 나란, 그 모든 이름이 벗겨졌을 때도 여전히 남는 존재다.


한 심리학 교수가 아마존에 가서 한 원주민 스승에게 이런 과제를 받았다고 한다.


“살아있는 짐승들의 소리를 멈추지 않게 하며 걸어보라.”


그는 자신만만하게 걸음을 내디뎠지만, 정글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스승은 말했다.


“짐승들이 네 안의 ‘폭력’을 냄새 맡았기 때문이다.”


그는 5년 동안 그 소리를 멈추지 않게 걷는 법을 배웠다.


우리 안의 폭력 — 불안, 조급함, 비교의식 — 이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산이 우리를 받아준다.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산을 오른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곳에서도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틀고, 인스타 스토리를 올린다. 그렇게 ‘평지의 문명’을 산속까지 끌고 간다. 산은 침묵으로 우리를 초대하지만, 우리는 침묵이 두렵다. 고요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한 여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걸음을 멈췄다.
너무 평화로워서 앉았다.
너무 고요해서 눈을 감고 내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바로 ‘山 사람’의 삶이다.


예수와 모세처럼, 자기 안의 폭풍을 지나 고요에 이른 사람. 그들의 얼굴이 빛났던 이유는 단순히 신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산의 고요가 그들 안에 흘렀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우리에게 필요한 결심은 ‘더 열심히’가 아니라 ‘더 고요히’ 일지도 모른다.


산에 오르듯, 잠시 멈추고 호흡하며 지금 이 순간을 살아보라.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올해는 요새 사람 말고, 산 사람으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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