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어른들. 그리고 열성적인 꼬마 관람객들이 사라진 곳에서
거의 1년 만이었다.
"미술관"이라는 실.내.전.시.공.간.에 아이와 함께 간 것이.
2020년 3월, 코로나가 찾아오고, 뉴욕의 모든 것은 멈추어버렸었다.
브로드웨이의 쇼도, 운동 경기도, 학교도, 회사도, 박물관도, 미술관도, 식당도.
모두가 숨죽인 사이 인종문제로 시작된 대대적인 폭동과 시위로 도시는 다시 한번 크게 망가졌고, 화려함이 아니라 재앙지로 유명해져버린 도시 속에서 문을 걸어잠근 채 집안에 앉아 봄을 흘려보냈다. 여름 동안 환자 수가 다소 줄어드는 모양새로 돌아서자, 9월부터 도시는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실제 등교를 옵션으로 두고 9월 개학을 준비한 한 학교와 함께 박물관과 미술관들도 개관한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전했다.
그 모든 변화 속에서, 이 거대한 뉴욕이라는 도시 속의 모두는 각자의 사정과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가족처럼 100%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식당에 에 가서 외부의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 것 까지는 시도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마저도 위험하다며 일체의 외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안에서 우리 가족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쪽 보다는, 온라인으로 선생님을 만나며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외부 활동을 하긴 하지만... 밀폐된 실내에 가는 것은 가급적 지양했다. 우리가 생활 방식을 알고 있는 타인들과의 접촉만 유지하며 바이러스로부터 최대한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그랬기에, 미술관이나 박물관까지는 가 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가을의 끝을 맞이했었다.
바이러스로 병원선까지 둥둥 뉴욕을 향해 떠온 것을 본 이후였던 터라, [실내, 그것도 아주 밀폐된 실내]인 미술관과 박물관은 쉽게 가까이 가게 되지 않았다.
그렇게 2020년을 마무리하게 되려는 찰나.
유일하게 일상을 공유하는 가까운 가족이 "미술관이 문을 여는 시간=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적은 & 지나간 사람들이 공기 중에 뿌렸을 바이러스가 적은 시간"에 가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바이러스의 창궐 속에서, 늘 우리 가족보다 약 500배는 더 조심스러운 행보를 늘 보이는 그 가족의 면면을 보아왔기에, 우리도 가봐도 될 것 같은 용기가 새싹만큼 자라났다. 그렇게, 거의 1년을 잊고 지내던 미술관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했다.
예약을 위해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웹사이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일 예약은 매우 힘들 수 있으니, 사전 예약 필요.
한 그룹당 9명 이상의 동반 입장은 불가.
본인과 타인을 위해 반드시 마스크는 착용할 것과,
예약된 시간을 준수하여 방문해 줄 것
뉴욕시 외에서 온 경우, 각 지역별 조례에 따라서 14일의 격리기간 이후에 방문이 가능하고...
등등...
스크롤 다운을 해 내려도 상당히 긴 내용의 안내문이 웹사이트에 고지되어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갈 수 없던 미술관은
바이러스의 시간 속 어떻게 변해있을까.
우산이 다 부러져버릴 정도의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도 들뜬 마음으로 헤치고 도착한 미술관 입구에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존재했다. 입구에는 늘 넘치던 인파 대신 정해진 시간에 예약한 사람들만 소수 기다리고 있었고, 실내로 들어가기 전 입구 바깥쪽에서 사전에 티켓을 확인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입구 앞에는 이미 웹사이트에도 길게 게시되어 있는 안전 관련 지침들이 대형 패널로 우리를 맞이했다.
실내로 들어가니 (당연히) 눈에 보이는 모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고, 가방을 체크하는 직원은 플라스틱 보호막이 쳐진 박스 안에 서서 우리의 소지품을 검사했다.
잠시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분명 주말 이 시간의 미술관이라면 유모차와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많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바이러스 때문인지 아이를 동반하고 나선 사람들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낯설고 어색한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변치 않은 것은, 들어가자마자 미술관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나의 아이였다. 심오한 미술작품이나 난도 높은 설명은 가볍게 지나치고 한눈에 보기에도 장난감 같아 보이는 전시물들만 더 오래 기웃거리는 딱 일곱 살 아이다운 행동을 보며, 아이는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다행히도.
세상이 변해버린 속에서도, 아이의 호기심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
우리는 박물관을 찾았다.
12월 14일 월요일을 기점으로, 폭증하는 코로나 환자수로 인해 모든 레스토랑의 실내에서의 식사를 금지한다는 행정명령이 공지되었다. 실내에서의 식사가 불가능하다면...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라도 올 겨울 더 이상의 외식은 없겠다는 생각에, 점심이라도 먹자며 어퍼 웨스트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한참 피자를 맛있게 먹고 있던 중, 바로 인근에 뉴욕 자연사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공룡 보러 가고 싶어.
얼마 전 미술관에서 느낀 흥분과 떨림이 남아 있어였을까. 익숙하다 못해 탈출하고 싶은 집과, 뻔한 공원과 놀이터가 아닌... 곳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간절함에 나도 마음이 동했다. 그 길로 갑자기 향한 뉴욕 자연사 박물관은 정말 다. 행. 히. 도!! (사람이 없이 ) 매우 한산했고... 비록 입장부터 가방 검사와 체온 측정까지 마치 공항 검색대와 같은 단계를 지나야 했지만, 그걸 통과하고 만난 박물관의 전시물들 안에서 아이는 마음껏 뛰어놀았다.
정말 마음껏.
물론, 이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미술관도, 박물관도 온전히 예전과 같은 모습일 수는 없었다.
수도 없이 진행되던 관람객 참여형 프로그램들은 모두 중단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타인과 옷 깃이라도 스칠까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단순 마스크가 아닌... 심해 100미터로 잠수를 하거나 화생방 훈련에 들어가도 될 것 같은 마스크를 쓰고 온 사람들도 꽤 눈에 띄었다. 가는 곳마다 '가는 길'과 '오는 길'의 동선이 나누어 표시하여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걷지 않도록 가이드하고 있었고, 환풍시설이 여의치 않은 공간들은 여지없이 폐쇄되어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의 경우 큰 규모에 맞게 곳곳에 있던 기프트샵들도 최소화되어 두 곳 정도만 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더 큰 변화는 그런 물리적인 차이가 아니었다.
이 모든 공간에 존재하던,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의 '제3의 어른들'의 부재였다.
관람객과의 소통을 통해서 더 흥미로운 방향으로 변화하게 되는 내용물의 부재였다.
공간은 그대로였지만 매표소부터 신이 나서 방방 뛰는 아이를 보며 웃고, 농담을 건네던 수 많은 어른들.
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웃으며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던 수많은 어른들이 사라져 버렸다. 눌러보고 소리를 들어보며 체험할 수 있던 전시물들과 공간들은 모두 닫혀있거나, 만지면 안 된다는 싸인이 대신 기다리고 있었다.
수도 없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의 특성상, 플라스틱 차단막과 마스크 뒤에 있어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직원이 관람객과 할 수 있는 소통은 최소한의 그것이었다. 심지어는 그마저, 마스크 너머의 잘 들리지 않는 소리로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줄래요?"를 외쳐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
남의 아이도, 나의 아이처럼 따뜻하게 지켜보던 눈길은 이제는 "Keep the distance (거리를 유지하세요)"라는 표어에 걸맞게 내 아이를 따라 시선이 닿는 곳 안에 모르는 다른 아이가 가까이 있지는 않는지 살피는 눈길로 변해야 했다. 아이들 모두의 가까이가 아닌, 아이를 포함한 타인인 모두로부터의 거리를 지켜야만 '나'도 안전할 수 있는 세상 속.... 그 안에서 사회의 모두가 전하는 따뜻한 온기를 가장 크게 잃게 된 것은 어쩌면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뉴욕 자연사 박물관을 배경으로 했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는, 박물관 내 전시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살아나 움직이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너무나 실감 나는 전시물들을 보며 나 역시 당장 저 유리창 안에 박제되어 있는 동물들이 뛰어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생각했었는데, 감독의 눈에 이 부분이 가장 먼저 보인 것이 그다지 의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생동감 1000000%로 연출되어 있는 전시물들은, 가까이서 보기 힘든 동식물이나 이미 수억만 년 전에 사라져 버린 공룡 등을 가까이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함께 돌아보는 사이에 아이의 질문은 늘어갔고, 관심은 높아졌었다.
그리고, 이런 아이의 궁금증에 대해서 답해주던 이 공간안에 존재하던 수많은 어른들을 통해 박물관 속의 전시물들은 아이에게 살아 있는 동식물들 못지않게 정말 큰 영향을 주었었다. 실제로는 생명이 없는 죽어있는 존재들을 진열한 공간이지만... 이 공간들을 찾는 사람들과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들로 인해 생기를 얻어가던 공간이 바로 미술관과 박물관이었더랬다. 그래서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나는 마음과 동시에, 어딘가 서운하고 슬픈 마음이 삐죽 자라 올라왔다.
많은 사람들이 '뉴욕'이라는 도시를 이야기하며 엄청난 스카이라인과, 화려한 네온싸인, 5번가의 쇼핑거리를 말하지만,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는...아이가 체험할만한 공간이 넘쳐 흐르고, 그 모든 공간에 아이들을 반겨주고 아이들과 소통하는 너무나 많은 따뜻한 어른들이 있는 그런 '아이들의 천국'이라 더 외치고 싶은 곳이었다. 그래서 이 따뜻한 공기같은 제3의 어른들로부터 멀어진 지금, 차가운 콘크리트의 냉기만 남은 도시의 느낌이 더 슬프고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길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눈이 마주치면 아이를 향해서 웃어주던 이웃들, 말도안되게 화려하게 차려입고 등교를 하겠다고 우기는 아이를 향해 "오늘 옷 너무 멋지네! 특별한 날인가보다!" 라며 아이의 어깨가 한껏 솟아오르게 만들어 주는 완전한 타인인 어른들로 인해 아이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커가는 것을 보아왔었다. 아이를 '아이'가 아니라 아직 미숙한 성인처럼 대하는 학교의 선생님을 보며 부모인 나도 함께 배우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모든것이 어서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된다.
죽어있는 박물관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박물관을,
조용히 걸려있는 그림들이 가득한 미술관이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가득한 미술관을.
그냥 멀찌감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거리가 아닌,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는 거리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