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의 비커밍(BECOMING)
아마 누군가에게는 '현대의 미국(또는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책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는 미셸 오바마의"BECOMING". 아마도 그런 분들에게는 결론적으로는 좀 우울할 수도 있는 책일 듯 하다. 지금의 미국은 결국 오바마가 떠난 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있으니.
하지만, 이미 뼛속까지 [엄마]인 나의 눈에 이 책은 '여성, 가정, 사랑, 삶,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미셸 오바마를 키운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가정환경과.
미셸 오바마가 일구어낸 가정 내의
아이들과 남편 버락 오바마와의 관계.
일과 가정 사이의 양립.
그리고 여성이자 엄마인 동시에 열심히 자신의 삶을 노력으로 바꿔온 사람이기에 가능한 여러 가지 시선들.
그래서 며칠 동안,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거나 걸어가는 길에는 오디오 북으로, 아이가 혼자 놀고 있을 때 SNS 대신 이 책에 몰입하며 훅 읽어 내려가는 동안. 솔직히... 너무 재미있어서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늦게 오기를 바랐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한 편에 쓸 시간도 없을 만큼, 이 책에 빠져 며칠이 휙 가버렸으니. 아마 육아 살림을 같이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휴가 중이었다면... 하루 내내 밥도 안 먹고 이 책만 보고 있었을 것 같은 느낌.
그녀가 서술한 그녀가 자라온 가정은 이렇다.
언제나 끊임없는 지지를 보내주시되, 자식들이 스스로의 길을 터 나가도록 지켜봐 주는 어머니. 질병과 싸우는 와중에도 근면하고 성실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애쓰던 아버지. 그리고 언제나 그녀보다 한발 앞서 그녀를 끌어주고 지지해 주던 오빠.
딱 경제적인 여유 한 가지를 빼고는, 전반적으로 정서적으로 온전하고 완벽한 가정의 모습.
여러모로 노출되듯, 그녀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가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점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물론, 선거기간 동안 끝없이 본인의 가정이 가졌던 긍정적인 모습을 강조했어야 했기에 그녀의 이런 이야기에 어느 정도의 왜곡, 과장은 있을 수 있다 생각한다. 어쩌면 미셸의 부모님은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든 슬럼화되고 있는 동네를 떠나 더 좋은 마을로 이사 갈 생각 같은 것은 포기한 채 그냥 현실에 안주해버린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고, 본인들보다 훨씬 뛰어난 학벌을 가지게 된 자식들에게 이렇다 할 가이드를 줄 수가 없어서 '지지해 주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을지도?!
하지만, 그 모든 가설을 뒤로하더라도...
한가지 분명하게 책에서 계속 드러나는 것은
미셸 오바마의 [부모님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보며, 그 부모가 그녀와 그녀의 오빠를 참 많이 사랑으로 아끼었다구나...라는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늘 내가 아이를 키우며 여러 가지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도돌이표처럼 늘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최종 해답은 "먼저 내가 아이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충분히 표현해주라"였었다. 훈육도 교육도 모두 충분한 사랑을 토대로 전달할 때만 온전히 전해질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적어도, 미셸의 부모는 아이들이 스스로가 충분히 사랑받고 있고 지지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맞는 방식으로 꾸준히 열심히 소통했을 것이라 보인다. 그랬기에, '나의 부모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내가 옳은 길을 가기를 바라고 있다.'라는 굳건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커 나갔으리라.
그리고 그 부모를 향한 단단한 믿음 위에 더해진 부모님들의 몇 가지 양육 방식은... 결국 최종적으로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그녀 스스로를 찾아내도록 이끌어 주었을 것. 내 눈에 띈 몇 가지 대목과 그동안 읽은 책 속의 올바른 양육 사례를 매칭해보자면...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존중하라.
그녀의 부모는, 미셸과 그녀의 오빠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존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부모님은 대화할 때 우리를 어른처럼 대했다. 가르치려 들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묻는 질문은 아무리 유치한 것이라도 끝까지 진지하게 대답해주었고 편의상 결론을 서두르는 일은 결코 없었다. 대화는 몇 시간씩 이어지곤 했는데, 보통 오빠와 내가 무엇이든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부모님을 취조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따지고 들어서였다.'
▶독립적인 아이들.
아무래도, 한국의 모든 부모의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이리라.
방임과 관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으며 독립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서, 그녀의 부모는 이러했다.
'대체로 부모님은 학교 공부 위의 문제에서는 오빠와 내 일에 개입하지 않았고,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기 일은 자기가 처리하기를 기대했다. 당신들이 부모로서 할 일은 주로 집 안에서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필요할 때면 지지해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어머니는 오빠와 나를 한결같이 사랑했지만, 우리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목표는 우리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늘 "난 아기가 아니라 어른을 키우는 거야"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규칙 대신 지침을 주었다.'
'돌아보면, 어머니의 모든 행동과 말에는 자신이 우리를 어른으로 키웠다는 확신이 조용하고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의 결정은 자신이 내릴 일이었다. 오빠와 내 인생은 오빠의 것이지 어머니의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늘 그럴 터였다.'
▶'어머니'의 바람직한 모습, 독립된 자식을 자식에게 건네는 조언의 방식.
이 파트는 문단 자체가 그냥 모범 양육 사례인 것은 물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서도 부모로부터 독립이 안되는 성인들도 다시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라... 그대로 프린트해서 붙여놓고 싶을 정도.
'어머니가 부모로서 지킨 마음가짐은 아주 훌륭하고 나로서는 따라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느 순간에도 동요하지 않는 선불교적 중용에 가까웠다. ···우리 어머니는 그저 한결같았다. 쉽게 판단하지 않았고, 쉽게 참견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 기분을 면밀히 살폈고, 무엇이 되었든 그날 우리가 겪은 시련이나 성공을 자애롭게 지켜보는 증인이 되어주었다. 상황이 나쁠 때라도 동정은 아주 약간만 표시했다. 우리가 뭔가를 잘 해내면 딱 적당한 정도로 칭찬하여 자신도 기쁘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그 이상 지나치게 칭찬하여 우리가 어머니의 칭찬을 바라고 무언가를 하게 되는 상황은 만들지 않았다.'
' 조언할 때는 냉정하고 실용적인 조언을 주는 편이었다. "선생님을 좋아할 필요는 없단다." 어느 날 내가 씩씩거리며 불평을 늘어놓자 어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 머릿속에는 네가 배워야 할 수학 지식이 담겨 있어. 그 점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렴"'
'어머니 메리언즈 실즈 로빈슨의 한결같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내 반석이었고, 내가 타고난 나 자신일 수 있도록 자유를 허락하면서도 현실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었다.'
미셸의 어머니는, 미셸이 성인이 되어도 사생활에 개입하지 않고, 늘 믿음직한 존재가 되어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후반부에도 보이지만... 그녀가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믿고 맡아준 사람 역시 그녀의 어머니였다. (결국 성공한 사회인 여성을 위한 친정엄마의 육아 서포트는... 한국이나 미국 영부인이나 어쩔 수 없는 굴레인 것인가 싶기도 했던 부분이라 씁쓸해지기도 한 부분이었지만... 후에 아마도, 그녀 역시 그녀의 자식들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면 본인의 어머니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또한 내 아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 자신은.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도 아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고 줄 것도 많다. 나는 아내가 되었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인생을 함께하는 일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중이며 때로 그 어려움 앞에서 겸허해진다.'라고 고백한다.
오바마와의 만남과 가정을 꾸리고 그에 관련하여 생겨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서술하는 미셸 오바마는, 생각보다 훨씬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야기하고 있어 정말이지 깔깔거리며 웃었던 부분이 많았다. 그녀가 스스로의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그제서야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은 코끝이 시큼해지기도 했다. 나 또한 그랬기에.
정말이지 64년생인 그녀의 30대에 83년생인 내가 이렇게 격하게 공감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60년대 시카고에서 흑인 노예의 후손으로 가난하다면 가난한 집에 태어났지만, 프린스턴과 하버드를 졸업하고 대통령이 될 남자와 결혼하여 영부인의 삶을 살아낸 그녀와.
80년대 서울에서 자라 학교를 다니고...
나이 서른이 훨씬 넘어서 미국으로 이제 막 와서 살고 있는 내가 어떤 부분에서 공감을 했을까? 하나하나 되짚으며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동시에 떠오른 기억 한 가지.
미국에 와서 사귄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본인들의 "엄마들의 삶"가 내가 설명하는 한국의 현재 30대 여성들과 비슷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같은 시대지만, 문화와 인지의 차이가 30년 정도 나려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나의 막연한 추측이 옳았음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놀랍게도 60년대 생인 그녀의 30대에(1990년대) 고민하고 부딪히는 문제가, 80년대에 태어나 201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30대들과 같았기에.
그래서, 현실의 벽을 마주하며 미쳐버린 82년생 김지영보다는 그 문제들에 솔직히 부딪혀 깨 나간 그녀의 이야기가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기에 나에게는 매우 통쾌하고 즐거웠다. 물론, 미셸 오바마에게는 82년생 김지영이 가지고 있던 해결 불가의 문제 ( - 문제적 시댁 또는 아내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견고한 가부장제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성(그리고 흑인)에 대한 벽을 마주하거나 일과 육아(가정) 사이에서 번뇌해야 하는 상황을 정해진 답이 없는 상태에서 맞이하고 쩔쩔 매는 모습은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같은 여성으로.
맡은 일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키워나가는 일을 해 오다 가정과 일의 양립 불가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던 엄마 사람으로.
그리고, 자신보다 바쁘게 일하는 배우자를 둔 아내인 동시에 엄마이며.
배우자의 선택에 따라, 같은 가족의 구성원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
그리고, 인생의 큰 변화 안에서 균형을 잡아가려 어떻게든 애쓰는 시기를 지났다는 것.
나는 바로 이런 소소한 부분들에 공감하고 탄식하고 기뻐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이미 겪었고, 한국의 30대 여성들이 비슷하게 마주하고 있는 문제 상황에 미셸은 어떻게 했을까.
그걸 알면 우리도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미셸은 '일'과 '육아'에서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두는 데 대해서 남들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동료들]을 보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탁월함을 유지할 수는 있다]는 것을 먼저 워킹맘이 된 동료와 선배들을 보며 배워나간다. 다시 말해, 그녀에게는 이미 가정과 일을 보기 좋게 양립해 가는 좋은 롤모델들이 있었던 셈이다. (심지어 이혼 후 싱글 맘인 상태에서도 이 모든 것을 해 내고 있는 선배들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지기 전 주변에 그런 롤모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그러했듯이, 그녀도 독립적이고 열정적인 직업여성과 평범한 아내와 어머니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며 '직장과 가정'을 둘 다 가지고 싶지만, 어느 쪽이 다른 한쪽을 찍어누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처럼 되고 싶으면서도 결코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 않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난다.
후에 난임으로 인해 배란유도제를 직접 주사해야 하는 상황(불임에 대한 해결을 여성 혼자 짊어져야 하는 상황)과 남편의 일로 인한 부재 속에서... 태생부터 불공평하게 주어지는 남녀의 차이를 절감하고 이를 처음으로 실감하고 분노하는 스스로도 마주한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처음 겪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머니가 되는데 일정한 공식이란 없다는 것'과, 자식을 잘 키우려 애쓰는 여자들의 집단적인 힘을 마주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을 엄마 동지들을 만난다. 그리고, [어머니가 되는 일에는 정해진 공식이 없다]라는 대 진리를 얻는다.
새벽형으로 살아야 하는 자신과 아이들과 달리, 올빼미형 남편과의 맞지 않는 라이프스타일 사이에서 불만이 쌓이고 쌓여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오바마는 미셸을 사랑하고 그녀의 일에 대해서 언제나 지지를 보여왔지만, 일주일에 며칠은 집을 떠나 있었고 심지어 그렇게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는 그 귀가일에도 아이와 아내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는 중이야"라는 말을 하고는 친구를 만나고 오기도 하고 운동을 하고 오기도 하는...아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좌절한다. 물론, 미셸은 그의 이런 행동을 '오바마의 영원한 낙천성'에서 비롯된 어서 집에 오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썼는데. 남편을 전반적으로는 사랑하지만 이런 시기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것을 은근히 비꼬고 싶었다는 것이 느껴서 어찌나 웃기던지.
물론, 그녀답게.
이 모든 상황에 현명하게 정면으로 문제를 돌파해 나간다.
주변의 이혼하는 부부들을 보며 문제의 원인만을 따지고 서로를 원망할 경우 찾아오게 될 미래를 알았을 것이고, 실질적인 해결을 위해 부부 상담을 받고, 문제의 "대상"이 아닌 '상황'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아간다.
몇 가지 해결 과정에 대한 예시 중 하나로, 저녁 식사에 늘 늦는 [아빠]의 일정에 맞추어 모든 가족이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정확히 하고 두 딸이 그 과정을 지켜보며 가부장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고 아래와 같이 명확히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혹시라도 집안의 남자 가장이 귀가한 뒤에야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여기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아빠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가 우리를 따라잡아야 했다."
그리고 다행히.
그녀의 배우자인 버락 오바마는 아내가 찾은 해결책의 방향에 같이 발맞추는 남편이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우리는 퍼스트레이디로 미셸이 오바마와 함께 백악관에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아니었다면 홀아비 대통령을 보지 않았을까 )
또한, 그의 그의 참아줄 수 없는 몇 가지 면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현명하고 이상이 큰 남성'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일들을 손에서 절대 놓지 않는 남편이지만 ... 인간적으로 배울만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그녀에게는 꼭 필요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사람이었다. 배우자와의 동등한 관계이기를 원하는 진취적인 여성이 동시에, 아내로서는 남편에게 사랑받고 그를 순수히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지극히 우리와 같은 그녀. 그런 그녀에게 버락 오바마는 참 좋은 남편이자 친구였던 것 같다. (아, 동시에 오바마는 일상적인 물건들에 대해서는 정리 정돈이 정말 안되는 스타일인 듯하다. 오죽하면 오바마 만의 책과 서류가 쌓여있는 "굴"이 있다고 표현했을까. 그리고 물론... 싸울 때도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 편이라 더 짜증 난다는 이야기도.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용서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것 역시도 맞는 듯!)
'한번 해보라고 말해주는 사람, 걱정을 지우고 행복할 것 같은 방향으로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버락뿐이었다. 그는 내게 미지의 세계로 도약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다고 해서 꼭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걱정 마, 우리는 할 수 있어, 어떻게든 해낼 거야. 이것이 버락의 생각이었다.'
어느 부분에서, 미셸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며 본인이 가진 결혼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한다.
'훨씬 나중에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매년 시카고에 봄이 찾아와 공기가 포근해지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한다. ···
'이제는 나도 이해한다. 아무리 행복한 결혼이라도 때로 성가시다는 사실을. 결혼은 계약이고, 그 계약은 거듭 갱신되는 것이 좋다. '
정말 맞다. 결혼은 성가시고 힘든 일이다. 인간의 수명이 100년 가까이 된다는데 그 기간을 단 한 명의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일구다니. 참 길게 보기도 하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 한낮의 꿈처럼 미셸의 어머니도 그녀도 그런 생각을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을 하고 했던 또 다른 마음 역시 이해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가정을 이루고, 배우자와 이렇게 저렇게 삶의 균형을 맞추고, 아이를 키우며 삶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는 이 삶이. 결국에는 우리가 '더 나은 사람'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노력하게 하는 원천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지금에 멈추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지치지 않고 꿈꾸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 가정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82년생 김지영이...
포괄적 의미의 가정이 아닌,
나와 배우자, 아이로 이루어진 협의의 가족이 중심인 1990년대 미국에 있었다면?
아내와 남편 둘 사이의 문제가 '가정문제'의 중심이었다면?
그리고 그녀가 남편의 지지를 얻어 해결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면?
일찍 문제상황을 깨닫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볼 생각을 했다면?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미국의 양극단을 모두 한 번에 볼 수 있는, 퍼스트레이디가 되었기에 가능했던 경험을 통해 미셸은 삶에 대한 큰 통찰력을 얻은 듯하다. 하긴, 지구상에 그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을 몇 명이나 찾을 수 있을까. 책은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아주 긴 시간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전해 줄 때, 가장 가치있게 느껴지는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성공한 후에도 대형 경기장을 메울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비판자와 회의론자가 따라붙는다. 그들은 그가 사소한 실책을 저지를 때마다 "내 그럴 줄 알았지!"하고 외친다. 그런 소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 소음을 견디는 법을, 대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목표를 꿋꿋이 밀고 나가는 법을 터득했다.'
'···처니는 차에서 내렸다. 나는 차를 모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냥 한번 해봐. 그리고 즐겨봐. 이것이 그녀가 말하려는 메시지였다.'
'사람들의 온기를 잴 수 있을 때, 삶은 훨씬 더 나아진다. 늘 그렇다.'
'인간관계에서는 우리가 상대에게 결코 가르칠 수 없는 점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새로 갖춰주거나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지만, 삶에서 무언가를 고민할 때는 한번 해보라고, 일단 가보라고... 그리고, 그 안에서 힘들고 지칠 때는 사람에게 또 기대 쉬라고. 그렇게 그녀는 이야기한다. 결국 그녀의 삶의 곳곳에 버티고 있던 인생의 힘은. [사람]이었다. 그 힘이 아이들이기도 했고, 남편이기도 했고, 어머니이기도 했고, 그녀를 믿어준 수많은 유권자들이기도 했다.
우리도 우리 삶에서 그렇게 기댈 누군가를, 그리고 곁에서 응원해 줄 누군가를 늘 찾고 있듯이 미셸도 사람을 통해 삶을 끌어왔다.
물론 이 책은 위에 내가 주로 이야기한 3가지 테마로 접근하지 않아도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만하다. 미셸 오바마의 가정 환경이나 사랑, 육아 등을 제외하고도 참고할만한 부분은 넘친다. 백인 남성들의 우월주의가 드러나는 프린스턴이라는 대학의 풍경들. 선거에 관련된 자세하고도 상세한 묘사. 현재의 미국이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총기사건 등등)에 대한 고민.
아직 내가 잘 모르는, 어쩌면 평생 사는 동안 그녀만큼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전반적인 미국에 대한 "전직 퍼스트레이디"의 브리핑에 가까운 이야기는, 아주 짧은 시간에 현대의 미국을 훅 들여다보게 해준다. 특히 그중 많은 부분은 "현재 노력 중이지만, 아주 힘들고, 고생스럽고, 당장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며 그 이유는 공공의 이익 따위에는 관심 없는 사람들의 정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해주어 우리의 미래라는 것이 과연 밝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스럽게 해준다.
그러나.
그런 암담함과 회색빛의 미래 우울한 마음으로 내가 이 책을 덮지 않게 해준 이유는, 이런 그녀의 말이 결국 남기 때문이었다.
'발전과 변화는 느리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삶은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것은 2년 만에, 혹은 4년 만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한평생 부족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변화의 씨앗을 심는 것이고, 그 열매는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참을성을 가져야 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은.
매일이 씨앗을 뿌리는 것만 같은 일일 수도 있다.
이 방향이 옳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그저 그 씨앗을 뿌리는 것 만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 말대로 그것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쩌면 우리 세기 안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씨앗을 심어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있어야, 지금 살아가는 오늘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리라. 부모인 나의 의지로 이 세상에 내놓은 내 아이가 적어도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바램으로 내가 아이들의 삶을, 부모들의 삶을 이 다른 나라에서 들여다보고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또는 우리 스스로에게도 남아 진화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82년생의 김지영보다
2014년생의 우리의 아이들이 조금은 더 행복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