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스러운 아이. 웃자란 아이, 눈치빠른 아이들이 많은 사회란.
영악한 아이, 그리고 아이다운 아이
절찬리 마지막 회를 향해 달리는 중인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는.
'엄마가 두루치기를 몇 개 팔아야 48만 원이 생기는지' 걱정하는 여덟 살 아들 필구에게 미안해한다. 어려서부터 엄마를 지켜주느라 힘들었다는 어른스러운 아들의 말에 가슴을 친다. 그리고 급기야는 어른들이 원하는 상황에 맞게 자신을 끼워 맞추느라 원치 않는 아빠 집으로 가 살며 눈치까지 보기 시작한 필구를 보고, 동백은 가슴을 치며 왜 그러냐고 울었다.
그렇게 어른들의 세계를 읽을 줄 알고, 그에 맞게 움직인 아이는 상황에 맞는 판단을 했을지는 몰라도 아이로서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너무 빨리 안에 어른이 들어가 앉은 필구를 보며... 옛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몇 년 전이었을까. 일하는 엄마 사람이었던 시절.
엄마인 회사원과 아빠인 회사원이 모여서 점심을 먹게 되면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가기 일쑤였기에,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랬다. 팀원 중 한 분이 영국 신사와 결혼하셔서 아이가 이제 막 국제학교의 유치부 과정에 다니고 있는 중이었는데, 한참 영어에 대한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3-4세의 아이를 둔 다른 팀원들이 그분께 국제학교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던 중이었다. 당시만 해도 해외를 나올 예정 같은 것은 없었고, 국제 학교는커녕 영어 유치원도 보내는 것이 맞는가 고민 중이었던 겨우 2년 차의 어설픈 엄마였던 나는 내 눈앞의 음식과 점심 이후에 있을 미팅 자료가 더 급했기에 다른 팀원들의 질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귀를 쫑긋 하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우리 애 학교(국제학교) 반 친구들을 쭉 보면... 다들 좀 심하게 순진해. 좋게 말하면 순진하고, 어떻게 보면 좀 어리숙 하게 보일 때도 있고. 하하하. 특히 한국 일반 학교 다니는 애들하고 섞여서 노는 키즈카페 같은 데서 보면, 우리 애 다니는 국제학교 애들이 좀 어리숙한 게 확 눈에 보이더라고."
한국 학교를 다니느냐,
국제 학교를 다니느냐... 에 따라
아이들의 어리숙함의 정도가 달라진다니?
생각해 본 적 없던 부분이라,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당최 무슨 상관관계로 이런 차이가 생길 수 있을까 한참을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 학교보다 훨씬 비싼 교육비를 내면서 다니기에 비용만큼 커리큘럼도 좀 더 촘촘해서...??
학교의 학부모들 역시 다국적 가정 또는 해외에서 한국으로 주재원을 온 경우 국제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경우라 다양한 문화적 자극이 있어서?? '
등 여러 가지 차이를 생각해 봤지만... 어느 부분을 고려해 보더라도 되려 일반적인 한국 학교의 아이들보다 더 많은 자극에 노출될 듯하고, 그렇다면 이 분이 말씀하신 성향의 반대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더 들었었다.
그렇게 왜 그럴까?라는 생각을 하다 다시 일상의 문제들로 이 의문이 잊혀 갈 때 즈음...
어쩌다 보니 정작 우리 가족이 해외에 나와서 살게 되었더랬다.
그리고 잊고 있던 그분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실제로.
정말 예전에 그분이 이야기하셨던 대로, 아이들이 전체적으로 한국의 유사 연령의 아이들 대비 눈치 빠르게 주변의 상황에 따라 반응할 수 있는, "영악함이나 기민함"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감정 표현 방식이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반응 등이 [훨씬 정제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의 행동을 비교해 보아도 한국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보았던 아이들이 훨씬 일. 사. 분. 란. 하게 움직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곳 아이들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어딘가 발달이 더딘 것처럼도 느껴지기도 했던 것.
그런데도 이런 아이들을 보고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온 부모들은 "city kids"라 지칭하며 아이들이 너무 아이답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상대적으로 순진하고 어리숙한 주변 아이들 덕분인지, 때문인지..... 한국에서 온 우리 아이는 명민하게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른다는 평가와 함께 "She seems like have a teenager inside" (이 아이 안에는 사춘기 소녀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라는 코멘트를 받는 웃지 못할 상황도 마주하고 나니.... 더욱 내 아이와 같은 반 주변 미국 아이들 사이의 주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의 차이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그 팀원분이 이야기하신 미국식 교육을 받고 있는 국제학교의 아이들이 더 순진하다, 어리숙하다]라는 이야기가 실제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인지 몸에 와 닿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이들은 아이다웠다.
즉흥적이고, 오래 참기 힘들고, 시끄럽기도, 어설프기도, 순진하기도, 더 웃기도, 더 울기도, 더 슬퍼하기도, 더 기뻐하기도 하는... 그런 아이의 원래의 모습 그대로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이들의 교육은 물론, 아이들을 대하는 전반적인 문화의 차이였다.
박물관에서
Natural History Museum (자연사 박물관)에서 Baby animal encounter(아기 동물 만나기) 이벤트가 열려 참석한 적 있었다. 강당을 가득 메운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한 시간 반이 넘게 각종 동물들에 대한 소개를 이어온 강사가 마지막으로 "Do you have any questions?(질문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저 의례적으로 있는 마무리 순서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이후의 상황에서 세 가지 부분에 놀랐었다.
첫째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손을 들어서 깜짝 놀랐고.
둘째는, 아이들이 하는 질문이 (꽤 큰 초등학교 저학년 포함) 매우 심하게 유아적이거나, 유치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진지하게 질문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놀랐고, 그런 아이들의 질문을 더 해보라고 권장하는 부모들에 놀랐다.
셋째는, 같은 질문이 반복되기도 하고, 장난 같은 질문이 난무하기도 하는 와중에도.... 마치 대학 강의실의 교수님처럼 정말 진지하게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강사의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아이들은 아이들 주변의 어른이나, 상황 등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고 ‘내가 궁금한 것’에만 집중하며 마음껏 손들고 마음껏 소리치고 있었다. 일견 내 눈에는 정신없어 보이기도 하고.... 어이없을 정도로 창의적인 아이들의 질문과 행동을 일체의 필터링이 없이 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도 신기했지만, 그 와중에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은 어른 나름의 진지함과 진중함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기에 더욱 놀라웠던 것 같다.
순도 100% made by kids
아이가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다녔을 때, 어버이날이나 크리스마스 날이 되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만드신 것이 자명한 무언가를 가지고 집에 왔었다. 선생님이 만들고 붙이고, 거기에 아이 사진만 붙어 있거나... 스티커 정도만 정말 아이가 붙인 형태의 카드. 그래서 뭔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가져가라니 집으로 가져와 엄마 아빠에게 주는 아이는, 그걸 받고 감격하는 부모의 얼굴에 그냥 좋은 건가 보다.. 하며 따라 웃었었다. 그래서 받고 ‘부모 됨’이 엄청 와 닿아서 뿌듯한 동시에... 결국 이 모든 반 아이들의 것을 만든 것은 선생님인 것이 너무 뻔해서 유치원 선생님이란 직업의 고됨에 미안함이 마음 한편에 자리했던 것도 사실.
미국 유치원에서도 밸런타인데이며, Father's day에 부모님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가져온다 해서 어떠려나... 하고 기대했는데... 웬걸.
정말 어설픔이 넘쳐흐르다 못해... 정말 어른의 터치는 1도 가미되지 않은 그런 아이의 그림 그대로, 이름인지 외계어인지 모를 글자가 쓰인 카드가 도착했다. 받아 들고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정말 선생님의 손은 하나도 거치지 않은 작품이 거꾸로 너무나 어색하고 신기한 나는 한참 이리 보고 저리 보았던 것 같다. 딱 그 나이 대의 아이가 만들 수 있는 그런 작품, 아이가 실제 할 수 있는 손놀림으로 완성 가능한 수준의 그런 그림을 카드처럼 접은 것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아이는 본인이 직접 다 해낸 것이라는 자부심에 어깨가 한껏 솟아올랐다.
이렇게 저렇게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상황들은 모두,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더하지도 빼지도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아이도 “아이다움”을 더 가감 없이 내보였다.
그리고 가만히 살펴보니...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이'라는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문화는 넓게는 아이와 어른을 나누어 보지 않는 것 역시 포함하고 있었고,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이 도시의 적극적인 노력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원래 그대로의 자신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이 나라에서 만들어진 콘텐츠와 문화는 정보통신의 발달을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도 쭉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젠 반대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원인들을 생각해 보던 중, 남편 유학 때문에 미국에서 3년여를 살다 귀국하신 옛 직장 선배님이 뉴욕에 출장을 오셔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선배님의 아이도 미국에서 지내다 한국의 유치원으로 들어갔는데, 한국 유치원이 다른 친구들이 선생님의 지시에 민첩하게 착착 따르는 상황을 낯설어하며 적응 초반 한동안 입을 열지 않고 다른 아이들을 지켜만 보고 있는 시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하셨다. 미국에서 3년을 지낸 그 작은 아이에게 같은 나이 한국 친구들의 모습이 매우 낯설고 어색했던 것. 그리고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매우 의아하게 보는 시기를 지나야 만 했단다.
그 사례를 기초로, 미국과 한국의 육아와 아이를 둘러싼 환경을 동시에 경험한 두 엄마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며 경험을 기초로 원인을 찾아보았다.
주변을 더 신경 써야 하고... 주변과의 경쟁이 필수적인 한국에서는,
그런 분위기와 상황이 양육자들을 통해 유소 아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다른 아이와의 발달을 비교하고, 다른 집과의 교육 방식을 비교하고, 아이의 양육 방식에 대해서 가족 구성원 이외의 누군가의 코멘트를 받는 경우가 일견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문화. 또한, 아이를 대동하고 외출을 하게 되면 주변의 상황에 맞춰 아이의 행동과 말을 매우 적극적으로 재단해야만 '주변에 피해를 주는 부모'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여러 가지 상황에서 미국보다는 더 심한 심리적인 압박과 위축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인 점. 그리고 당연히 그러한 부모의 심리적인 압박감은 분명 아이에게도 전달이 될 부분일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는 것 외에 아이가 가진 본래의 모습에서 벗어나 주변을 살피고,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조용히' 행동하도록 지도해야만 했을 것이다. 동시에 약간은 더 어른 같은 눈치 빠르고 재빠른, 나이보다 앞서가는 아이를 칭찬하고 똑똑하다 이야기하는 분위기 역시... 아이들을 '웃자라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경쟁이 극심하고, 전체주의적인 문화가 아직 선명히 남아 있는 한국의 성인 사회는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투영되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분명 지나온 과거의 시간 속에 이런 분위기와 문화를 토대로 세계가 인정할 수 있는 나라로 올라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와 문화를 고도성장의 '훈장'이 아니라 '상흔'이라 말하고 싶은 이유는, 적어도 지금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경쟁해야 할 것은 한국 사회 내의 누군가가 아니라... 이 지구 상의 누군가일 것이기 때문.
그리고, 그 진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한국의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더 천진난만하게, 더 거침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유치할지라도 비난받지 않는 환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더 많이 도전하는 [아이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금의 어른들이 도와줘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그 나이 본래의 모습으로 존재해도 괜찮다고, 우리는 너희가 어떤 모습이던, 어떤 이야기를 해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너희의 생각을 존중한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부터가... 지금 한국의 교육이 외치고 있는 "사고력과 창의력"이 자라나는 환경의 가장 첫 시작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