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와 나이의 상관관계

새 해 첫날, 꼭 한 살 더 먹어야 해요...?

by 맨모삼천지교

오지 않을 것 같던 2020년.

무려 2000년이 지나고도 20년이나 더 지난, 영화에나 나오던 그런 숫자.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감상은 그런 신기함과는 먼 거리에 있었다.

분명 예전에는 새해가 되는 카운트다운의 순간이 어딘가 찌르르르한 순간도 있었는데...

2019년 12월 31일 밤은 그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매우 졸린 12시였고, 결국 새해가 넘어가기 10분 전부터 젊음에 흐려지는 의식 너머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여보!

새해 되는 것도 안 보고 잘 꺼야? 아.. 진짜 시골 아낙네처럼 열두 시 되었다고 이렇게 졸고 있.... 을.........." 까지가 내가 들었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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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아침형 인간의 섭리상 나에게는 심히 눈뜨고 있기 힘든 시간이었으나...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TV 속의 타임스퀘어는 Ball Drop을 중계하느라 난리법석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한동안 자정에 시작된 불꽃놀이로 뉴욕과 뉴저지가 번쩍번쩍 들썩였이고 유람선들은 허드슨 강을 위아래로 오가고 있었다. 맨해튼이 들썩이거나 말거나 고3 시절의 독서실 쪽잠 같이 달콤한 잠에 빠진 나는, 이제 그냥 들어가라는 남편의 볼멘소리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2000년대의 강산이 두 번 바뀐 시간이 마무리 된 2019년 12월 31일이 저물었다.

한 손으로 날 흔들어 깨우는 와중에 남편이 찍어둔 화면. 키스대신 쓰러져 잠든 와이프가 원망스럽지 않았길:)

우리의 나이

대망의 2020년 새해 첫날 아침.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앉은 테이블에서 남편이 전자북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제는 이런 책을 읽어야 하나?"

" 어떤 책?"

" 마흔 건강법, 마흔에 행복해지는 법... 뭐 이렇게 '마흔'으로 시작하는 책들이 많은데?"

아.. 그래, 그런 책 많이 본 것 같아. 서른의 어쩌고, 이십 대의 뭐뭐.. 같은. 그러니 마흔도 뭐가 있겠지?라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한 책들이 정말 많았다.

'마흔'만 검색해도 이렇게 많이 나온다. / 이미지 캡처 from 인터파크 도서 페이지.

마흔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이토록 많은 책들이 이야기하고 있단 말인가.

마흔에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읽어두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지는 책들의 리스트를 눈으로 훑으며 '한 살 더 먹어야 하는' 새해 첫날 아침이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아이의 나이


아이는, 늘 미국에서의 나이보다 한국에서의 나이가 한 살 많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태어난 뒤 실제 자가 호흡을 하며 살아낸 시간만큼을 나이로 치는 미국에서보다, 뱃속에서부터 나이를 먹어 태어나자마자 이미 한 살로 치는 한국의 나이.


조금이라도 언니가 되고 싶은 작은 꼬마에게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한 살 더 많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자랑스러운지 "How old are you(몇 살이니)?"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I'm 5. But I'm 6 in Korea(전 다섯 살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6살이에요)!!"라며 친절한 설명을 굳이 강조하여 덧붙이고는 했다.


한 살이라도 더 먹고 싶던 그런 시절.

기억도 가물한 그 시기지만, 아이의 그 마음은 아직 알 것 같은 기분.


한국 나이 -1 = 미국 나이?


3월에 태어난 우리 아이는, 2020년 1월 기준... 미국 나이로 5살 반이 좀 지났다.


"엇, 그럼 이제 우리 빈이도 한 살 더 먹으니 한국 나이로 7살이네?"

"왜 내가 7살이야? 한국 나이는 미국 나이보다 1 살 많은 거 아니야 아빠? 나 아직 미국에서 5살인데?

"어.. 어.. 그게. 한국은 해가 바뀌면 한 살을 먹는다고 하거든. 생일이 안지나도."

"해가 바뀌는 게 뭐야?"

"어제가 2019년의 마지막 날이고 오늘이 2020년의 첫날이라는 뜻이야"

"엉. 근데 해가 바뀌는데 난 생일이 아닌데 왜 나이를 먹어?"

"아.. 그게 한국은......... 해가 바뀌면 나이를 먹는데, 미국은 생일이 지나야 보통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거든."

"왜 한국은 그래?"

"........................... 아.... 아니다. 빈다. 아하 하하하하. 다음에 이야기하자. 하하하하하하. 아, 체스 두고 싶다고 했지? 얼른 두자, 어디 갔더라~~~~?"

라며 황급히 다른 놀이로 관심을 돌리며 아이의 "왜" 급습에 대한 답을 얼버무려버렸다.


생일과 상관없이 해가 바뀌면 온 국민이 똑같이 한 살씩 나이가 드는 한국.

그리고 해가 바뀌는 것과 상관없이 생일이 지나야 나이가 드는 미국.


우리도 모르겠는 그 차이의 이유를 아이에게 어찌 설명하겠는가.


물어오는 이도, 질문하는 경우도 없는. 나이.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 늘 [나이]란 '사생활'에 가까운 정보이기 때문에 웬만큼 개인적으로 친해지기 전에 물어오지도 물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내다가 궁금해지는 사람들에게는 '이방인' 쿠폰을 꺼내 간혹 물어보았더랬다. '내가 너희들 나이가 가늠이 안 가서~'라는 참으로 외국인스러운 멘트를 두르고 말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 중, 나와 같은 생년이라 답하는데 그에 따라붙는 나이가 나보다 2살이 어린 경우가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었다.

[한국 나이-1=미국나이]의 공식이 왜 적용이 안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후에 알고 보니... 다들 "생일" 기준으로 생일이 지나면 1살을 먹고, 생일이 지나지 않으면 해가 바뀌었어도 나이를 먹지 않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었던 것. 심지어 꼬마 아이들 중에는 몇 살이냐는 질문에 "5살 10개월이에요!"와 같이 답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 구체적이어라 ㅎㅎㅎ


그러고 나서 보니, 어찌어찌 내가 "How old are you?"라는 질문을 하면 상대도 답을 한 뒤 자동반사적으로 "When is your birthday (넌 생일이 언제야)?"라는 질문을 나에게도 던지고는 했었다.

생년이 아닌 생일이 몇 월인지를 더 궁금해하다니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내가 미국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생일이 "몇 월"인지를 설명한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를 계산하는 기준점이 생일이 되기 때문이니 생월이 중요했던 것이고, 굳이 이야기할 일도 많지 않은데 기왕 이야기할만한 사이라면 생월 기준으로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었던 것. 동시에... 나이를 물을 정도로 친하다면 기억해 두었다가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의미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해가 바뀐다고 생일이 1월 첫날이 아닌 이상 "나이가 한 살 들어 늙는 것 같아 슬프다"라는 코멘트나 이를 위주로 다룬 책이 나올 이유가 없었고, '나이'를 중요 콘텐츠로 제작하는 책이나 광고 등도 보이지 않는다.


내 나이가 몇 살이더라.


이 곳에서는 아무도 내 나이를 묻지 않고, 나 역시도 물을 일이 많지 않다. 새로 친해진 친구들도 나보다 조금 위인 듯, 많이 위인 듯, 비슷한 듯... 정도의 감만 기억할 뿐 실제 누가 누구보다 더 많은지 적은 지는 신경 쓸 일이 없다.


그렇다 보니 '내 나이'에 대한 관념도 점차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나의 행동에, 생각에 나이를 테두리로 해야 하는 일들도 희미해져 갔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친구가 되지 않는 것도, 적다고 해서 시작할 것이 없는 것도, 사랑에 빠질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나이가 적어도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상사가 되기도, 나이가 엄청 많아도 새로운 필드에 도전한다면 인턴이 될 수도 있는 곳이니까. 나이가 적어도 엄청난 꼰대처럼 비서에게 지시하며 사람을 부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나이가 지긋한 회장님이 본인 점심 식사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계산할 수도 있는 일.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화장을 하고 꾸미는 한 편에서,

나이가 50이 넘은 성공한 기업인으로 알려진 아저씨가 해변가에서 20대처럼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장성한 손자 손녀까지 함께 여행을 온 듯한 너그러운 인상의 할머니는 정렬적인 비키니를 입고 수영을 즐긴다. 아이가 셋인 엄마라고 해도 '나의 꿈은...'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즐긴다.


[내 나이가 XX인데]로 경험 가능한 삶의 범위를 만들지 않고 나니 이야기할 거리도, 만나볼 사람도, 가보고 싶은 곳들도 더 생겨났다. 내가 잊고 사는 만큼, 나이가 나에게 주는 속박도 멀어졌다. 그래서 '마흔'이라는 테마의 책을 들여다보는 남편에게 말했다.


굳이 20대 같은, 30대 같은... 혹은 마흔에 해야만 하는 무엇.

에 멈추지 말고, 그냥 내 인생 중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나'의 나이 때로 살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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