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머스크’ 평전이 육아서로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은 주말이면 삼시 세끼를 차리고 빵을 구우며 주방에 서있는 시간이 긴 사람입니다. 하지만 손에 대지 않는…아니, 댈 수 없는 음식이 있어요. 바로 애기 궁둥이같이 귀여운 복숭아랍니다.
뭘 만지고 먹어도 알레르기는커녕 잘 먹는 저라서, 복숭아를 만지기만 해도 가려워진다는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다 큰 남자가 신기할 따름이었죠.
그런데, 그런 남편과의 사이에 복숭아 같이 동글동글 발그레한 볼을 가진 아이를 하나 낳았는데…아뿔싸.
이 아이도 복숭아 털 알레르기가 있는 게 아닌가요.
안 닮았으면 하는 것들은 어쩜 이렇게 쏙 빼닮아 나오는지... 주고 싶어 준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 빼다 박은 이런 구석들을 보며, 유전자 파워를 새삼 되새기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와 나의 배우자를 빼닮은 아이를 바라보면서 [부모를 닮는 아이]라는 명제에 대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시선을 경험 중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부모님과 다른 성인으로 살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진리처럼 느껴지는데,
내가 낳은 자식이
나와 전혀 다른 독립된 객체라는 사실은
또 반대로 전혀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거든요.
비슷한 이유로, 제가 남동생과 완전히 다른 형질의 사람이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둘 이상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주변 지인들이 첫째와 너무 다른 둘째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또 신기하게 느껴지고는 합니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던 일이 막상 부모가 되니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이런 모순 있는 시선에 스스로도 어이없어하며 어린이였던 나와 지금 어린이인 나의 아이를 비교도 해보고는 하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미 다 자라서 성인이 된 스스로와 저와 제 배우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가 가지고 태어난 '엄마와 아빠의 조각'과,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중에서 어떤 부분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며 부모로서 많은 고민을 하고는 합니다. 그래서, 읽고 보는 많은 콘텐츠들 속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힌트를 발견하게 되면 더 주의 깊게 보며 밑줄도 촥촥 치게 되는 그런 엄마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엄마라서 하게 되는 공부의 시작에는 늘 이런 질문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어른으로 자랐을까?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양육 환경인가??
환경이라면 어떤 점이 영향을 준 것일까???
얼마 전 이 질문에 답이 될만한 매우 흥미로운 책을 하나 만났습니다. 바로, 표지부터 쏘아보는 눈빛이 강렬한 '일론머스크'의 평전이었는데요, 테슬라와 스페이스 x와 같이 신개념의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그 자체로도 이목을 끌고 있지만, 인물 자체가 가진 독특함으로 인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가진 인물로 떠오른 그를 여러면으로 분석하듯 써 내려간 책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지고 있는 테슬라 주식이 계속 오를지 궁금해서 들여다보는 책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일론머스크의 이면이 궁금해서 보는 책일 수 있겠지만 제게는 '도대체 어떻게 키우면 이런 사람이?'라는 질문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 일론머스크만 질문의 답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이미 여섯 개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의 주변에는, 이런 비즈니스들에 도움이 되는 수많은 인재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들 중 일부는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의 삶을 논하기 위해서는 이런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필수 양념처럼 따라오고 있었는데, 이들의 면면이 1-2페이지로 소모하기에는 아쉽다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일론머스크'가 아니라, 'Tech Genius Encyclopedia (테크 천재 백과사전)'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전기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이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유년시절까지 취재한 인물들은 모두 '인재'와 '양육'에 대한 작은 힌트를 모을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해 주었으니까요.
그 모든 것의 시작에 있는 '부모'
일론머스크의 유년시절은, 여러모로 참 다이내믹했습니다. 남아공이라는 환경적인 요인과 자유로움 보다는 방임에 가까운 육아방식의 부모님이 계셨죠. 일론머스크의 어머니 메이는 일론 외에도 2명의 아이를 더 키워야 했고, 아이를 애지중지 키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해요. 덕분에 아이들은 마음껏 돌아다니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유를 누렸고, 심지어 일론이 어린 나이에 로켓과 폭약을 가지고 놀아도 내버려 두었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케 살아남았다 싶죠...?? ) 지금이라면 아동학대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는 양육 환경이기도 합니다.
학교에 간 뒤에는 그의 타고난 성격과 기질들이 친구를 사귀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스스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하는 일론 머스크는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합니다. 그 결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도 서슴없이 하지만, 그로 인해 혼자 남겨졌을 때는 처절한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합니다. 최근에는 아스퍼거 증후군 자체가, 자폐 스펙트럼중 일부에 포함되는 것으로 의학적인 정의가 바뀌었다고 하는데요 전형적인 자폐환자들과 아스퍼거 증후군 사이의 차이가 바로 이 '외로움'을 얼마나 느끼는가가 그 기준이 된다고 하네요. 실제로, 책 속에는 '홀로 남겨지는 상황'을 극도로 꺼리는 일론머스크의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등장하죠.
이와 더불어 소설 '파리지옥'에 비견될 만큼 폭력적인 남아공의 분위기와 학교 내 문화는 여러 싸움에 휩싸이는 상황도 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런 그를 그의 아버지는 거꾸로 비난하죠. 부모님의 이혼 후에는 자기 확언과 허언에 가까운 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아버지의 학대에 가까운 양육에 놓여있다가 성인이 된 일론은.. 그 후 지금까지도 자신의 “행복”이 머무는 공간을 찾지 못하고 헤맵니다. 이런 그의 정신상태에 가장 큰 악영향을 끼친 것은 일론의 아버지 “에롤”이라고 주변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죠. 일론 머스크의 아버지 에롤은 일론이 성인이 되어 사업에 성공한 뒤, 다시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던 시기에도 그야말로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줍니다. 일론의 엄마와 이혼한 뒤,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4살 때부터 키우던 양딸을 임신시키고(- 이 대목에서, 읽다가 몇 번이나 제가 제대로 읽은 게 맞나 싶어 눈을 의심했네요.) 그 딸과 세 번째 재혼을 하는... 인간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용인받지 못하는 삶을 살죠. 그 결과, 친아버지인 에롤은 아들인 일론 머스크가 평생을 걸쳐 가장 증오하며 밀어내게 되는 인물이 됩니다. 책의 후반으로 가도 변함없이 이상한 각종 음모론에 빠져서 아들에게 협박에 가까운 요구도 일삼는 그야말로 이 시대의 파렴치한 아버지상을 보여주죠.
그런데, 그런 아버지인데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를 닮아가는 모습이 참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습니다. 일론의 첫 번째 부인인 저스틴은 이런 그의 면을 이렇게 말합니다.
'윤리'적인 부분은 아버지와 다르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스스로를 고통으로 밀어 넣는 모습 등에서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일론머스크를 관찰하며 이 평전의 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전미 대통령 오바마가 한 말을 떠올립니다.
Someone once said that every man is trying to live up to his father's expectations or make up for his father's mistakes, "
Barack Obama
예전에 누군가가 말했다.
모든 사람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아버지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애쓰며 산다고. 어쩌면 나의 특정한 결함도
거기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버락 오바마, 회고록 중-
자녀들의 기억 속에서는 끔찍한 아버지였던 에롤과 달리, 세 번의 결혼 끝에 얻은 총 11명의 아이들을 얻은 일론머스크는 일하는 곳에도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멀어진 아이와의 관계에 상처받았음을 가감 없이 표현하기도 하는 가정적인 면을 보입니다. 이런 면은,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스스로를 회복하고 싶은 노력이었을까요?
읽는 내내, 성인이 될 때까지 20년의 시간 중에서도 겨우 절반 정도를 함께 한 아버지의 존재가 '삶'을 대하는 일론머스크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넘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랑받고 평온하며 안정적인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던져 넣는 미션에 내던지고, 주변인들은 물론 스스로조차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몰아붙이는 일론 머스크는 세상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일지 몰라도 가장 행복할 수 없는 어른으로 자랐으니까요.
이런 그의 모습은 [부모], 특히 '동성인 부모'가 보여준 삶의 모습이 설사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할지라도 자녀의 전 생애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소름 끼칠 정도로 실감하게 해 주죠. 그런 면으로, 이 책은 '아들'을 둔 아버님들이 꼭 보아야 할 책이다 싶기도 합니다.
운동으로 시작되고, 완성되는 삶의 근성.
화성으로의 이주에 대한 꿈을 이루는 중심이 될, 우주선을 만들고 지구 밖으로 쏘아 올리는 일을 하고 있는 Space X에서 일한 여러 인재들 중에는, 일론의 미친듯한 압박을 순조롭게 지나간 인물들에 대해서 작가가 좀 더 집중적으로 이들을 조명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루카스 휴스 Lucas Hughes라는 인물이 대표적입니다.
여덟 살에 체조를 시작했고, 일주일에 30시간이라는 강도 높은 훈련을 지속해 나간 그는 이 운동이 그의 학업적인 성취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합니다. '훈련'의 과정에서 자라난 근성과 테그닉들은, 그의 삶에 생기는 여러 위기에 가까운 상황을 헤쳐나가는데 도움을 줍니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에게 아버지가 말합니다.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루카스 휴스야 말로, 어떤 고민과 고난이라도 단련된 몸과 마음이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금융을 전공하면서도 훈련을 함께 이어나가 남자 체조 6 종목에 모두 출전한 것 역시도, 어쩌면 그 스스로 운동으로 단련되는 강인한 정신력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온라인에서 2010년, 스탠퍼드 체조팀으로 출전한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한번 보실까요? 취미로 하는 수준의 운동이 아닌 것을 보실 수 있었습니다.
https://www.flogymnastics.com/video/5197477-lucas-hughes-pommel-horse
몸의 근육들을 훈련해 나가며 미세한 강도로 이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체조를 통해 그는 삶의 기술을 배운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멘털이 갈려나가는 일론머스크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에 대한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일론이 질책할 때 저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체조는 고도의 압박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저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 력했습니다."
일론머스크가 주기적으로 팀원들을 미친 듯이 몰아치며 폭언을 쏟아붓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그의 근성이었던 거죠.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인한 신체와 정신은 후에도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알고 선택을 내리는데도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론 밑에서 일하는 것은 가장 흥미진진한 경험에 속하지만, 인생의 다른 많은 것을 위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그것이 훌륭한 거래가 되기도 합니다. 랩터가 역사상 가장 저렴한 엔진이 되어 인류를 화성에 데려다줄 수 있다면 부수적인 피해를 감수할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8년 넘게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특히 아기가 죽은 후에는 인생의 다른 것들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스 휴스 Lucas Hughes-
일론머스크를 신적으로 숭배하거나 악마처럼 바라보는 이분법적인 시선 속에서도, 그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객관적으로 뚜렷하게 이야기하며 이를 바탕으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엿볼 수 있었지요.
많은 전문가들과 수많은 책들이 '운동'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를 루카스 휴스처럼 실질적으로 운동으로 다져진 근성이 '어떤 방식으로' 삶의 순간에 마주하는 위기를 넘어서게 해 주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많지는 않았어서, 더더욱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뛰어난 성과를 내는 상위 5%의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주당 평균 40% 더 긴 시간을 운동에 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운동을 통해 더 집중적으로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울 뿐 아니라, 우울이나 불안감,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항상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 정김경숙, 웅진 지식하우스-
어린 시절의 좌절을 질문으로 바꾼 4살에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소년, DJ 서
뉴럴링크의 공동창업 멤버 중, 일론머스크가 선사하는 압박과 혼란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에서 4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DJ서'라는 한국 교포입니다. (책에는 DJ 서라고만 명기되어 있는데, 조사해 보니 '서동진 박사님'이 시더라고요!)
그는, 미국으로 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주한 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좌절감을 수도 없이 경험했다고 합니다. 다만,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는데서 오는 답답함과 좌절감을 겪으며 마냥 무너지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질문하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비슷하게 언어라는 벽에 가로막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으로 좌절감은 비슷했을 수 있지만, 좌절에 그치지 않고 질문을 이어간 그의 삶은 이 질문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바로 이 좌절과 질문들이, 그를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버클리 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가며, 뇌에 넣는 작은 센서를 개발하는데 그의 인생을 바치게 했으니까요.
X로 이름이 바뀐 트위터를 살펴보니, 서동진 박사님은 2020년 MIT 대학에서 선정하는 "MIT Technology Review의 TR35(또는 "35세 미만 혁신가")"로 선정되었다고 해요. 생명 과학, 컴퓨팅, 에너지, 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35세 미만의 우수한 혁신가를 선정하는 이 리스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통 자신의 분야에 큰 기여를 하고 있으며 기술과 혁신 분야의 잠재적인 미래 리더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하니... 이른 나이에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죠?
이런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가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해결책을 찾아주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거기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질문을 이끌어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은 수도 없겠지만, 거기에 꺾이는 것과 그 상황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방향과 질문을 떠올려 보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선택이니까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의 더 뻗어 나왔습니다.
완전한 답이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라 생각하며 책을 계속 읽어가던 중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어요
아이들에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들
테슬라의 시작에 있던, 제프리 브라이언 스트로벨 : JB straubel
테슬라의 창업자인 JB는 어려서부터 자동차광으로 일찍부터 전기자동차의 매력에 푹 빠져, 13세에 이미 골프 카트의 모터를 개조했다고 합니다. 화학도 좋아해서 고교시절에는 지하실에서 과산화수소로 모종의 실험을 하다가 폭발로 얼굴에 심한 흉터가 생겼다고 합니다. 덕분에, 위스콘신에서 자라며 옥수수를 좋아하던 다람쥐같이 생긴 귀여운 소년은, 평생 약간 삐뚤어진 미소를 지니게 됩니다. 아마, 폭발한 지하실과 다친 아들을 보며 스트로벨의 부모님은 심장이 오그라드셨을 것이고, 그 이후에도 흉터를 볼 때마다 가슴 아파하시겠지만... 이런 사건들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과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죠.
사업가의 기질은 이미 12살부터, 안토니오 그라시아스
비슷하게 12세에 이미 남다른 관심을 보여준 이 가 또 있습니다.
미시간주에서 작은 속옷가게를 하던, 스페인 가족에서 태어나 자란 '안토니오 그라시아스'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스페인어밖에 할 줄 모르는 작은 가게의 주인이었지만 그녀의 아들인 안토니오는 12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애플 컴퓨터의 주식'을 사달라고 합니다. 애플 컴퓨터의 초기 버전을 사용하고 있던 그가, 애플의 잠재력을 12살이라는 나이에 이미 알아본 것이죠. 그렇게 영어도 어려워하는 어머니가 어찌어찌 구해준 300달러의 애플의 주식 10주는, 현재 가치 약 49만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후에, 조지타운 대학 재학시절 다양한 사업을 시도해 본 것은 물론,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에 다니던 시기에도 부업으로 소규모 기업을 인수하는 벤처 펀드를 설립하고, 그의 모국어나 다름없는 스페인어를 활용하여 캘리포니아의 전기도금 업체를 회생시키며 문제가 있는 회사를 더 많이 인수하기 시작합니다. 후에, 일론머스크와 함께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가 되는 것은 물론, 테슬라의 초기 펀딩 라운드에 4차례나 참여하여 그 자신을 백만장자 반열에 올린 선택들이, 이미 유소년 시절부터 싹을 틔웠음을 보여주는 일화죠.
오징어 범벅이 된 지하실을 청소하던 소년 : 올리버색스
이런 비범했던 소년에서 비범한 성인으로 성장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일론머스크의 책에 등장하지 않지만 위의 두 인물과 비슷한 시기에 이미 특별한 관심을 내보이는데 주저함이 없던 소년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올리버색스(Oliver Sacks)**인데요, 뇌과학자이자 신경학자였던 그는 그의 생에 대한 이야기를 펴낸 책 "모든 것은 그 자리에(Everything in its place)"에서 그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들이 모여있는 런던의 사우스 켄싱턴에서 자란 그는, 이 박물관들을 자유로이 오가며 세상과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열두 살에는 이런 흥미를 더욱 키워주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더더욱 꽃을 피우죠.
그러던 어느 날, 한창 관심 있게 보던 오징어류의 동물을 잔뜩 채집할 기회가 생긴 올리버 색스는 이를 전부 학교로 가져가 자신과 비슷하게 두족류 동물(오징어, 갑오징어, 문어류)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한 마리씩 나누어줄 계획을 세웁니다. 이를 나누어줄 생각을 한 어린 올리버도 재미있지만, 오징어류의 동물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새삼 너무 재미있더군요. 게임도 아니도, 운동도 아니고.... 곤충도 아닌 오징어라니요.
하지만, 친구들 손에 닿기 전까지 열두 살 꼬마들이 처리해 둔 보관 방식에 이슈가 있었던 것 가습니다. 학교에 가져가기까지 보관해 둔 지하실에서,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갑오징어들이 부패하고 발효되어 보관해 둔 유리병이 다 터진 것은 물론 그로 인해 엄청난 악취와 오물로 지하실이 초토화되는 결과를 맞이했거든요. 이 에피소드 뒤에 이어지는, 사고 수습과정과 그 과정에서 알게 된 헤모글로빈을 포함한 여러 가지 생물학적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88세로 지구를 떠나간 이 과학자의 삶은 이미 12살에 그 꽃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학원이 아니면 PC방이나, 운동장을 오가는 것이 전부이고... 스마트폰이 생긴 뒤에는 온라인의 공간에서 헤매는 요즘의 아이들을 바라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보니, 과연 요즘의 아이들이 이런 '사고'를 칠만한 공간과 시간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꿈틀거렸습니다. 궁금해하는 것을 충분히 탐험할만한 시간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발견한 흥미도 좌충우돌하며 마주해 볼 환경을 주고 있는지도 되돌아보게 했죠.
박물관이 근거리에 널려있는 곳이 아니라, 술집이나 운동장이 몰려있는 곳이었다면 올리버 색스는 생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관심을 뻗어나갔을 것 같기도 하고...
영어를 못하는 와중에도, 속옷장사를 하며 적지 않은 가격의 신형 컴퓨터를 아들에게 사준 어머니가 없었다면 안토니오 그라시아스의 지금도 없었을 것입니다.
흥미로워하는 것들을 책으로만 보고 실제 실험해 볼 수 있는 지하실이 없었다면, JB 스트로벨의 얼굴은 흉 없이 깨끗하게 자랐겠지만, 그의 열정이 과학으로 지금 이만큼 뻗어나가기 쉽지 않았겠다 싶죠.
결국 크고 작은, 아이를 둘러싼 환경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가지고 태어난 '유전적인 요인'의 영향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어떤 것이지만, 이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부모로 아이에게 의도했거나 하지 않음으로 전하고 있는 다양한 환경적 요인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무게를 새삼 생각해 보았습니다.
"It made me realize how difficult it is not to be shaped by what we grew up with, even when that's not what we want."
-Justine (Elon's first wife)-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신이 성장한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지요."
- 일론머스크의 첫 번째 아내, 저스틴-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 자라는 아이에게 내가 가진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 할 이유로 이 이상 가는 말이 있을까요. 언젠가는 제 손을 떠나서 또 다른 꽃을 피우러 떠날 아이가, 제 곁에 머무는 동안은, 제가 만들어 둔 보호의 울타리 안에서나마 마음껏 실험하고 부딪히고 또 일어나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어떤 자질을 보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면 그게 언제 즈음이었는지를 살펴보며 제 아이의 어떤 도약의 시기를 제가 놓치고 있지는 않나 되돌아보기도 하고, 어떤 계기나 환경이 삶의 방향을 바꾼 이야기를 만나면 저희가 아이에게 제공해 주고 있는 아이를 둘러싼 요소들을 살펴보고는 하죠. 부모가 준 사랑이나 상처가 성인이 된 아이의 삶에 드러나는 이야기들을 보며, 제가 보내고 있는 매일매일의 소중함과 무거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오늘 제가 뿌리는 씨앗이 먼 미래에 어떤 모양의 나무가 될 지는 그때 가서야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어렵고, 그래서 또 알 수 없기에 신비로운 것이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싶습니다.
[참고자료]
** 올리버색스에 대한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8%AC%EB%A6%AC%EB%B2%84%20%EC%83%89%EC%8A%A4
안토니오그라시아
루카스 휴스
https://www.linkedin.com/in/lucas-hughes-7685a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