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a Risk
지.금.의. 저는 매사에 조심성이 많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소처럼 열심히 성실히 달리며 선택에 대해 후회하진 않지만, 결정을 하기까지 참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는 편이에요. 아주 작은 리스크라도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고 해야 할까요. 타고난 성격 때문인가 생각해 보지만... 글세요. 임신-출산-육아를 경험하며 엄마라는 삶을 살기 시작한 한 것도 하나의 큰 계기였고, 툭하면 아프면서도 하고 싶은 일, 가보고 싶은 곳들은 넘쳐서 늘 중간에 한 번씩 크게 탈이 나서 다 내려놓는 경험을 거친 것도 지금의 안전제일주의자가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 캐리어 안에는 화장품 파우치는 없더라도 항상 크디큰 약봉지가 꼭 들어가 있고, 아이 생일파티가 예정되어 있는 달에는 사람 많은 곳에 갔다가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하고는 합니다. (그래서, BTS의 입대 전 마지막 콘서트는 티켓팅 엄두도 내지 못했죠... 정국아.ㅠㅠㅠ) 이런 삶이 스스로 참 안타까울 때가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같이 사는 반려인은 이 모든 걸 "의지의 문제야~~"라며 일갈하지만, 마흔 가까이나 되어서나 감기가 걸려본 타고난 체력을 자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해 못 할 삶이기도 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수백 가지지만, 체력과 상황을 고려해 가지치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가장 안전하고 실패할 확률이 적은 일들이 리스트에 남습니다. 해도 큰일이 나지 않지만, 안 해도 큰일이 없는 그런 일들의 주르륵 적혀있는 목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위험"을 호기롭게 택해볼 수 있는 시기와 실패하더라도 극복이 가능한 시기는 삶이라는 스펙트럼의 앞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해서 다가오는 생일이 크게 반갑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미 꽤 지나온 제 삶도 들여다보지만, 제 곁에서 이제 겨우 십 년을 조금 더 살아낸 아이는 다가올 젊음의 시기에 저보다 더 크고 와일드하게, 다소간의 위험한 선택도 좀 해보며... 그런 리스크를 딛고 일어설 체력도 비축하며 지나가기를 바라게 되곤 합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마냥 좋은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꽤 많은 동식물들이 저희 집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개와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개구리, 올챙이, 개미, 소라게, 반딧불, 무당벌레, 나비, 거북이, 새, 장수풍뎅이, 파리지옥 등등등을 거쳤습니다. 하나, 친칠라와 기니피그, 햄스터까지 키우고 싶다고 목놓아 외치는 아이의 성화에, 결국. 지금은 아이의 동생이자 저와 남편의 아들로 개 한 마리가 저희와 살고 있습니다. 이럴 거였으면 애초부터 그냥 개를 키울 것을 뭘 그렇게 빙빙 돌아왔을까 싶네요. 여하튼!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았던 수많은 동식물들 중, 특별한 이유로 가끔 떠올리는 동물이 하나 있습니다.
한동안 양서류에 빠져있던 아이가 개구리를 키워보고 싶다고 했고, 그 결과 아마존 택배 박스를 타고 올챙이가 도착했습니다. 박스를 열어보니... 봉투 안에 있던 올챙이는 제가 생각한 새끼손톱만 한 꼬물이가 아니라.... 자두알만 한 거대한 머리를 가진 올챙이였어요. 미국은 올챙이도 거대하냐며 진절머리를 냈는데, 그래도 아이는 양서류 친구가 좋은지 매일매일 밥을 주고 청소도 열심히 하며 나름 정성껏 돌보았죠.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올챙이의 다리는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일반적인 성장 기간을 훨씬 넘겨서도 다리가 나올 기미가 없던 올챙이는 결국 개구리가 되지 못한 채 죽고 말았죠. 올챙이의 성장일기를 쓰려고 매일 지켜보던 아이의 실망은 컸고 도무지 왜 이런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농장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새로 한 마리를 또 보내주었어요. 그런데,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다리가 나오지 않은 두 번째 올챙이를 묻어주며, 어딘가 기형이 있는 올챙이를 판매한 농장이 나쁘다며 이야기를 했더랬죠.
그러다, 그즈음 읽고 있던 책 속에서 의외의 답을 찾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네이딘 버크 해리스의 저서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에 등장한 올챙이 실험이 바로 그것이었어요. 이 실험에서는 올챙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위해 그들의 수에 비해 적은 물을 제공했다고 해요. 그 결과, 어느 정도 성장한 올챙이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로 변태 속도가 빨라져 일찍 개구리가 되어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지만, 발달 초기의 어린 올챙이들은 거꾸로 성장이 억제되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고 해요.** 이러한 결과는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이 생물학적 변화를 일으켜, 이후의 발달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죠. 그제야, 저는 우리 가족이 올챙이를 위해서 준비해 둔 어항은 너무 좁았기에 올챙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성장하기를 포기 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살만하지 않으니 성장을 포기한 올챙이의 비극이 제한된 환경 내의 성장을 보여주는 사례였다면, 그 반대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鯉 코이
잉어라는 뜻의 이 한자어를 일본어로 읽으면 'コイ코이'라고 합니다. 바로 '코이의 법칙'의 주인공이 바로 잉어입니다. 코이는 물의 양과 깊이에 따라 성장 호르몬을 분비하여 몸 크기를 조절한다고 해요.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작은 어항에서 자라는 코이는 10cm 정도로 자라지만, 수족관에서는 30cm, 강물에서는 1m 이상 자랄 수도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환경에 따라 반응하는 올챙이와 잉어를 보며, 사람도 누구를 만나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능력과 꿈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당연하지만 부모이기에 또 되새겨야 할 사실을 가만히 생각해보고는 합니다.
제가 얼마 전부터 뒤늦게 정주행 하며, 한 회 한 회 아껴보고 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랑의 이해"라는 작품인데요, 이 작품 속에는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와 함께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은행원이 된 하상수 대리(극 중, 유연석)가 있습니다. 명석한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오래된 차를 끌고 다니는 그에게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피부 관리사로 일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머니는, 자신이 운영하는 관리실의 VIP 딸과 아들이 같은 지점에 근무하며 만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관계에 대한 걱정과, 다른 아가씨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아들의 진심이 궁금합니다. 그런 엄마에게 아들은 VIP인 그녀와 헤어질 예정이라 말하며 이런 말을 하죠.
"언제부턴가 시뮬레이션 같은 걸 하면서 살았어. 어떤 일에도 항상 결말부터 떠올려.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고...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없을까 걱정하면서 해결 방법까지 다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지는데..."
- 사랑의 이해, 상수의 독백-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향하는 사람과 향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서 번뇌하는 그를 보며 안타까워하며 보던 중이었지만.... 이 장면에서는 이런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쪽이 많이 시렸을 엄마의 마음을 상상해 봤습니다. 늘 안전한 길, 늘 가보지 않아도 결과가 보장된 곳에만 발을 딛으려 한 저를 투영해 보며 말이죠. 마음이 향하는 곳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는 하상수 대리를 보며, 충분치 않은 환경 속에 습관이 되어버린 계산과 걱정이 슬펐습니다. 자식이 늘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꾸려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안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도전할 기회' 또는 '도전할 용기'는 아닐까요. 자신의 솔직한 욕망과 욕구를 들여다보는 것 역시 '용기'중 하나일 테니까요. 그래서, 매사 조심성이 넘치는 제가 혹 내가 아이에게 주고 있는 것이 너무 작은 어항은 아닐지, 아이에게 너무 많은 계산과 걱정들을 습관처럼 하게 만드는 것은 없는지도 고민해 보았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같은 지붕 아래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이의 성향이 저와 참 반대입니다. 얼마 전 처음 간 낯선 스키장에서, 새로운 곳이라 어느 쪽 길로 가야 할지 모르던 중, 남편의 안내 따라 들어선 슬로프에서 엄청난 경사와 곳곳에 쌓인 모굴을 보고 빙벽에 붙어서 오도 가도 못하고 울상이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아찔한 경사를 후들거리는 다리로 목숨이 경각에 달한 파리처럼 달달 떨면서 내려와서 보니 "World Mogul Championship(월드 모굴 챔피언쉽) "이 열린 곳이라는 표시가 있더군요. 준비운동 하자고 데리고 간 곳이 월드 챔피언들이 대회하는 코스였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서 쨰려보는 것도 잊은 채 웃음이 터졌습니다. 늘 할 수 있는 일에서 30% 즈음 더 나가는 이런 사람이 내 남편이구나, 참 우리는 너무나 다른 인간이구나를 또 한 번 실감했다고 할까요. 사실 이 슬로프만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경사가 있고, 난해한 코스들이 있는 것은 기본이고 코스 바깥쪽에 안전 펜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서 늘 아이가 길의 가장자리로 가는 순간이면 혹시 사고라도 날까 큰 소리로 조심하라며 따라붙어야 했죠. 하나, 새로운 환경에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는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신나게 달려 나갔습니다. 그 결과 마음을 졸이고, 따라붙으며 힘주어 달리고 나면 고작 서너 시간 후에도 다 풀린 다리로 오징어처럼 숙소로 기어 들어가고는 했습니다. 저보다 늘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도 저녁 8시면 힘들어 곯아떨어졌죠.
그런데, 이 전지훈련 이후 얼마 뒤. 평소 자주 가던 스키장을 갔다가, 완전히 다른 느낌에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전에는 '어떻게 내려가지....'라며 우두커니 서서 가야 할 길을 요리조리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이게 되는 것이 맞나 고민하던 곳인데, 너무 수월하게 심지어 즐기면서 타고 있는 게 아닌가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남편도 아이도 이전과는 달라진 느낌에 '어, 왜 이렇게 수월하지??'라며 서로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어려운 슬로프에서의 경험들이 쌓여 결과적으로는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결국, 아이도 자라면서.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부모 된 눈으로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늘 안전한 길로만 아이를 이끌었다면, 아이는 늘 비슷하게 안전한 코스 안에서 자랐을 것이고 아이의 세상은 펜스가 쳐진 길 그 안에 머물었을 것입니다. 부모로서 할 일이란 그저 '최악을 방지하는 일'이지, '모든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사람을 키우는 육아뿐만 아니라, 부모인 우리의 삶도 이 밸런스 게임의 연속이겠죠. 더 크게 보면, 지금 속해서 살고 있는 이 사회도, 나라도 이 무게추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중이기도요. 음. 그런면으로보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사운을 걸어보는 스타트업들이 쇼생크 탈출처럼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소식*은 지금 이곳의 삶이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는지 보여주는 사례겠죠.
아. 제가 위에 말했던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하상수 대리가 엄마에게 하던 말의 끝에는.
이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없을까 걱정하면서
해결 방법까지 다 생각해야 마음이 편해지는데..., 근데 그게 안 되게 해.
불안해 불편해. 이런 상황도 이런 감정도.
근데도 상관없게 만들어."
- 사랑의 이해, 상수의 독백-
스스로의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불편함, 솔직한 마음과 현실사이에서 저울질하며 생긴 불안함, 이 모든 것이 힘들지만 이 또한 상관없어졌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삶의 RISK(리스크= 위험)를 결국 지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결국 그는 더 행복해졌을까요? 네, 저는 그랬을 것 같습니다. 위험해 보이는 선택이지만 자신의 결정에 스스로를 맡겨볼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또 나아갈 것 같아서요. 하상수 대리의 대사를 곱씹으며 저는 저와 아이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인생의 진짜 성장은 완벽히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고, 때로는 불확실한 길을 걸어가며 그 불안과 싸워나가는 데 있지 않을까요. 제가 아이에게 원하는 것 역시 결국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이지, 늘 안정된 길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결국 제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한 걸음씩 내딛으며, 그 순간순간을 체험하고 배우고, 결국 더 크게 성장하기를, 그렇게 때로는 위험한 길이라도 두려움 없이 걸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인가 봅니다. 안전한 결과보다는 도전을 선택하는 용기로, 그 길에서 자신만의 빛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죠. 그리고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바라기 전에, 우리 역시도 그런 부모가 되어줄 수 있기를, 부디 그러하기 바래봅니다.
* 기사 출처
https://www.mk.co.kr/news/business/11231843
**
네이딘 버크 해리스의 저서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에서, 저자는 버클리대학교 생물학자 타이론 헤이스 박사의 연구실에서 수행한 올챙이 실험을 언급합니다. 이 실험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이 올챙이의 성장과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한 것이었습니다. 올챙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위해, 그들의 수에 비해 웅덩이의 물을 적게 제공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실험 결과, 어느 정도 성장한 올챙이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로 변태 속도가 빨라져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지만, 발달 초기의 올챙이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에 노출되면 성장이 억제되어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https://namu.wiki/w/%EB%B9%84%EB%8B%A8%EC%9E%89%EC%96%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