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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Sep 10. 2022

더러움 주의

관계의 다이내믹

향이란 정말 놀랍지 않은가.


앞으로도 이 이야기는 수도 없이 반복하게 될 것 같다.


지나간 사람은 무엇으로 추억되는가. 가장 강렬한 것 중 하나는 반드시 냄새일 것이다. 그 친구에게서는 오이비누향이 났다 젊은 여자아이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나 또한 군대를 다녀왔으나 군필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오이비누 냄새에는 늘 공감하지 못했다. 오이비누라는게 그들의 말처럼 강렬하고 독특한 고유의 냄새를 가진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밍숭맹숭하고 달큰한 비누내’ 정도가 내가 받은 느낌의 전부였다. (내 군생활은 온통 개똥 냄새의 향연이었다.) 그러나 최근 그 향을 강렬하게 뇌에 각인시키고 만 것이다. 그 친구의 영향으로. 그 친구는 오이비누를 썼고 담배를 피웠다. 묘하게 잘 어울리던 담배향과 오이비누 향. 그 조합을 글로 써 보니 한층 더 매력적이고 힙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 친구도 그랬다. 쏘 힙.


우리 사무실 건물에는 공용 화장실이 있다. 그곳은 무척 드럽다. 나는 지금부터 그 화장실에 대한 묘사를 아주 깨끗하지도 아주 역겹지도 않게 묘한 선을 타며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더 이상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여하튼. 그곳은 무척 드럽다. 더럽다는 말보다 드으럽다 또는 디이럽다 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세면대와 거울에는 늘 물때가 껴있고 어떤 이가 잔뜩 막힌 코를 시원하게 비워 낸 흔적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날도 있으며 … 내가 더 이상 못쓰겠다. 드으럽다 정말.


어느 날은 소변을 보고 있는데 옆 옆 소변기를 이용하던 대머리 아저씨가 빡뿌부벗 소리를 내며 방귀를 뀌었다. 나는 먼저 일을 마친 후  ‘아 진짜 디러 죽겠네’ 생각을 하며 그 옆을 지나가게 되었고, 대체 왜 그런 건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데, 코가 아닌 입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말았다. 그 묘하게 동치미 향과 비슷한, 그러나 따뜻하고 찝찝한 구린내로 가득찬 숨이 입안 가득 혓바닥을 감싸고 치아 사이사이를 구불대며 통과하였고 목젖을 때리고 기도를 타고 들어가 나의 폐 가득히 들어오고만 것이다. 순간 대머리 아저씨의 곱게 면도되어 반짝이고 찰기 있던 그 뒷통수를 짝 소리가 나도록 후려갈겨버리고 싶었으나 잔뜩 미간만을 찌푸린 채 괜스레 잘못도 없는 손을 비누로 빡빡 씻고 나와버렸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을 무척 가기 싫어했다. 그곳은 나에게 더러움의 온상이었으므로. 그러던 어느 날, 그 더러운 세면대에서 늘 식기들을 설거지하는 아저씨 때문에 손 한번 씻으려면 오분을 기다려야 해서 짜증이 잔뜩 났던 그날. 골초였던 아저씨가 설거지를 마치고 자신의 식기들을 챙겨 나가며 묘한 담배냄새를 풍기었고 화장실에 있던 오이비누로 설거지를 한 탓에 많은 거품을 내어 그 진한 향들이 함께 풍기게 되었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방귀 냄새를 맡고 남들의 코딱지를 보며 헛구역질을 하던 그곳에서 나는, 그 친구의 냄새를 맡고 눈물을 찌륵찌륵 흘리고 만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짜증이 나는 바람에 금방 그칠 수 있었지만. ‘그 친구의 냄새를 다시금 맡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찌질한 생각과 함께 더럽기 그지없는 화장실을 지금은 아주 조금 덜 싫어하게 되었다.


참 향이란 정말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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