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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Jan 09. 2022

포말 2

유원지 惟夗地


Song.  恒夫とジョゼ (츠네오와 조제) - Quruli

            別れ (이별) - Quruli








“김 말이야 진짜 괜찮은 걸까?”

박이 입을 열었다.


나는 흠칫 놀라 처음으로 창밖에서 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 손으로 여유롭게 운전을 하던 강은 갈 곳 없이 쉬고 있던 반대편 손을 마저 운전대에 올렸다. 그 손으로 운전대를 움켜서 말아 쥐었고 가죽이 비틀리는 '빠드득' 소리가 났다.


“괜찮지 않으면 뭐?”


강의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차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며 내는 엔진 소리와 바람소리, 여러 사람이 들뜬 목소리로 떠들고 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전혀 들리지 않는 라디오만이 백색소음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중이었다.


“사실 김이 좀 힘들었던 게 아니잖아. 혼자서 모든 걸 돌봐야 했으니까.”


박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나의 적절한 역할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라'며 이 추측을 환기시키고 안심시키는 것이겠으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그럴 수가 없었다. 김의 힘듦은 박이 말한 것들이 다가 아니었다. 물론 무너진 가정형편과 어머니의 투병만으로도 충분히 고된 삶이겠으나 김은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김은 꿈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가 큰 것에 항상 괴로워했지 똑똑하고 뭐든 잘하는 녀석이니까 가진 꿈도 그만큼 컸던 거야.”

강은 차 안의 룸미러로 나와 간간히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했다.


“우리 사무실 손님 중에 젊은데도 외제차를 찾는 경우가 꽤 많아. 아무리 봐도 내 또래인데 도대체 그 돈이 어디서 나서 오는 걸까 싶어. 어린 나이에 성공을 한 건가 싶다가도 몇 마디 나눠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감이 와.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하고 싶어 하지도 않고 심지어 멍청하기까지 한 놈들이 태반이란 말이야.”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데?” 강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물었다.


“불공평하다 그거지.” 박은 ‘쯥’하고 소리를 내며 잔뜩 불만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은 ‘프쉬’ 하고 코웃음을 쳤다. “세상은 원래 공평도 불공평도 하지 않아. 어떤 일이 발생한 이유는 없는 거야. 그냥 일어난 거라고. 그게 다야.”


박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사이 우리는 도심으로 들어섰다.


 “전방 50미터 앞 좌회전입니다.”


내비게이션의 무정한 말투를 따라 우리는 좌회전 차선 위에 올랐다. 이제 곧 신호가 바뀌면 우리도 차들의 대열을 따라 줄줄이 곡선을 그려가며 왼쪽으로 나아갈 것이었다. 좌회전 깜빡이의 똑딱똑딱 소리가 차 안을 메웠다.


“아, 나 진짜 이사 가고 싶어.”

 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진지한 이야기가 5분 이상 이어지는 법이 없었다.


“어제는 저녁을 먹는데 밥상 끄트머리에 얇은 미역줄기가 붙어있는 거야. 치워버리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뻗었는데 글쎄.”


“벌레였구만” 강이 선수 쳐서 박의 흥을 깨트렸다.


“그래. 돈벌레더라고. 알아차린 그 순간에 얼마나 소름이 끼쳤는지 그대로 밥상 다 엎을뻔했다니까.”


“너네 집 9층 아니냐? 걔는 거기까지 어떻게 올라갔냐. 똘똘한 놈이구만.”


강은 돈벌레가 기특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박을 골려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는 듯한 말투이기도 했다.


“아무리 똘똘해봤자 내 손바닥 안이지.” 박은 의기양양하게 이야기했다.


“너 어릴 땐 벌레 나오면 염소처럼 소리만 질렀었는데 네가 벌레를 잡았다고?”


강과 박은 킬킬대며 농담과 조소를 주고받았다. 언제 들어온 건지 눈앞에 작은 날벌레가 거슬렸다. 나는 잠시 바라보다가 창문을 활짝 내리곤 휘휘 손을 저어 그를 밖으로 내쫓았다.



나는 301호의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 종이 위의 글자들이 누군가의 접근을 단단히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이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협박문을 작성해 자기 집 문 밖에 붙인 사람을 마주해도 될까. 김을 걱정하는 마음이나 공감의 분노 따위의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초인종을 누르면 얼굴을 마주해야 할 사람이 미친 사람일까 봐 걱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 강에게 연락을 할까 고민했다. 지금 김의 집 앞이라고, 그런데 이상한 게 문 앞에 붙어있다고. 잠시 고민을 하던 나는 순식간에 손을 뻗어 벨을 눌렀다. 나의 버릇이었다. 나는 무언가 고민이 되는 상황을 눈앞에 맞닥뜨렸을 때 그 고민의 순간이 10초를 넘어설 것 같으면 충동적으로 몸을 먼저 움직였다. 어떤 일이든 고민하는 순간이 제일 괴로웠다. 어떤 선택을 한다 해도 그게 옳은 선택이었을지 일이 시작된 후에야 알 수 있다면 뭐하러 고민을 하나. 일단 저질러 버리고 수습은 이후에 해도 된다. 결국 확률은 5:5 아닌가. 옳으냐, 그르냐.


학교의 쉬는 시간을 알리는 벨과 같은 음악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 안에서 누군가 쿠당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김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나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왔어?”


그 순간 나는 김과의 첫 만남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말을 할지 미리 생각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일단 던지는 수밖에.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김의 집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고 그와 동시에 그에게 선물을 건넸다.


“뭐 하나 샀다. 별건 아니고.” 나는 그가 걱정될수록 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보다도 더 정 없이 이야기했다.


“쓸데없는 짓 하는구먼.” 김이 하하 웃으며 내 말투에 맞춰주었다.


그의 집은 멈춰있는 것처럼 보였다. 많지 않은 가구, 닫힌 방 문들, 창문의 바로 앞 정도만 간신히 비추는 채광, 밝지 않고 눈이 부시기만 한 형광등, 냉장고의 웅웅 거리는 울림소리, 간간이 들려오는 ‘쿵쿵’ 윗집의 발걸음 소리. 숨이 막히는 집이었다.


“이야, 이거 진짜 좋다. 그런데 우리 집하고 어울릴지 모르겠네.” 김이 내가 선물한 바다 사진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 사진은 꽤 커서 김이 양 끝을 잡고 활짝 벌렸는데도 중간 부분이 흐물거리며 볼품없이 휘어져있었다.


“사실 얼마 전에 바다를 몇 군데 다녀왔거든, 그걸 어떻게 알고 이런 걸 사 왔네.”


그는 사진을 둘둘 말아 식탁에 올려놓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찬장을 열고 한참을 말없이 달그락거리더니 둥굴레차 티백을 팔락 팔락 흔들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뭐 시원한 거는 없어? 바다는 어디 어디 다녀왔는데? 머리도 식힐 겸 여행 다녀오면 좋지.”


“이거에 얼음 넣어 마셔. 시원한 차도 먹을 만 해.”


나는 달고 탄산이 있는 시원함을 이야기한 것이었으나 아직은 김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가 없으니 조금 더 관찰하며 그에게 맞춰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다는 강릉, 제주, 속초. 세 곳 다녀왔어. 좋더라. 왜 다들 틈만 나면 여행을 가려 애쓰는지 알겠더라고, 물론 가서 한건 별로 없지만.”


“뭐 했는데?”


나는 냉장고에 쓸만한 음료수가 있는지 열어볼까 말까 고민을 하느라 별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


“사실 한건 별거 없었어. 이것저것 좀 알아보고 난 뒤에 바다 보며 앉아서 술이나 마셨지.”


알아보다니, 이사라도 가려는 걸까. 김의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못한 질문들이 가득 쌓여가고 있었고 이를 해결하려면 나는 슬슬 문 밖의 협박문에 대해 물어봐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오늘 김과 나 사이의 거리에 어떠한 진전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 내가 들어오면서 보니까 문 앞에 열쇠 스티커… 뭐라고 쓰여 있던데 그건 뭐야?”


나는 물어보면서도 김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진 않을까, 갑자기 화를 내며 나를 내쫓지는 않을까, 최악의 상황으로는 나에게 주먹이라도 날리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그러나 김은 나의 걱정들이 무색하게 ‘프쉬’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 그거.”


나는 그의 웃음에 내심 안도하면서도 어떤 답이 나올까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그거 내 성벽이야.”


“성벽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 성벽이라고. 바깥의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열쇠집 사람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한번 더 캐물을 용기는 나지 않았다. 확실히 우리의 관계는 많이도 달라져있었다.


‘이제는 돌아가지 못하는구나.’


나는 세영의 결혼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에도 그 생각이 들었다. 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공부를 하며 꽤나 바쁜 이십 대를 보냈는데, 문득 친구들과 함께 이십 대를 보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울 때면 십 대의 즐거웠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지금의 이 고난만 끝나면, 내가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언제든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버티곤 했다. 그런데 결혼이라니, 인간 최세영은 이곳에서 쓰러지고 누군가의 남편 최세영, 누군가의 아버지 최세영으로 다시 일어서는 결혼이라니.


‘아, 이제는 돌아가지 못하는구나.’


물론 김과 세영의 ‘돌아가지 못함’은 달랐다. 한쪽은 상황이 달라진 거라면 다른 한쪽은 사람이 달라졌다. 어쩌면 없어졌다 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김이 없어졌다.


김은 차가운 둥굴레 차가 담긴 유리잔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때 유리잔이 상에 놓아지며 낸 ‘달그락’ 소리 사이로 윗집에서 의자를 끄는듯한 ‘끼기긱’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 몸을 울리는 층간소음에 불쾌감을 느끼며 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은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살짝 감았다. 그는 잠시 작동이 정지된 기계처럼 그 자리 그대로 멈췄다가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 바다, 바다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김은 내 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가 지금 그의 기억 속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선 속초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또 이상하게 깡패들이 많더라? 진짜 깡패인지는 모르겠지만 덩치 크고 딱 붙는 티셔츠를 입고 양쪽 팔에 문신이 가득하고 금목걸이를 한 그런 사람들 말이야.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어. 안정감이 없어.”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속초는 일출의 도시가 아니었던가. 깡패의 도시라니, 그 다운 특이하고 재밌는 생각이었다. 나는 예전의 김을 다시 보는 듯 한 그 말을 끊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 말 없이 둥굴레차를 한 입 마시며 눈썹을 추켜올렸다.


“제주는 정말 좋지만, 아무래도 육지와 떨어져 있다는 게 답답할 것 같아. 또 나는 눈을 너무 좋아하는데 제주는 눈이 잘 안 오잖아? 그건 문제지.”


“그리고 강릉, 강릉은 정말 완벽했지. 송정해변이라고 가봤어? 바다와 소나무 숲이 모래를 사이에 두고 끝없이 늘어서 있는 곳이야. 그곳 벤치에 앉아 몇 시간이고 바다를 봤어.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더라. 바다는 파도를 내어 모래를 적시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소나무들이 흔들리며 비단이 비벼지는 소리를 내는 곳이야. 그곳에 앉아 눈을 감으면 파도가 내 눈앞에도, 내 머리 위에도 있어. 강릉에서 떠나는 게 딱이야.”


내가 ‘강릉으로’가 아니라 ‘강릉에서’라고 말한 그의 말실수를 곱씹는 동안 김은 계속해서 내 뒤 그만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있잖아, 너는 바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뭐라고 생각해?"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글쎄 나는 조용한 바다가 더 좋더라. 에메랄드 빛으로 잔잔하고, 너무 투명해서 그 속이 다 비치는 바다 말이야.”


“아니! 아니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은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김이 돌발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경계하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의자에서 몸을 떼어 일어날 준비를 했다. 왜인지 김은 화가 나 보였다.


“바다의 핵심은 파도고, 그게 내뱉는 포말이야.”


그 말을 하려고 이렇게 화를 낸 건가. 나는 무서움과 더불어 약간의 짜증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짜증을 원동력 삼아 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지금 그에게 필요한 말들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상처는 반드시 소독의 과정을 거쳐야 덧나지 않는 법 아닌가.


우리 둘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김은 숨을 고르며 잠시 시간을 갖더니 한층 안정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갑자기 소리 질러서 미안하다... 네가 말한 잔잔한 바다들도 물론 아름답지만, 너무 재미없지 않아? 바다란 파도가 쳐야 제맛이고, 그 파도의 제맛을 내어주는 건 포말이야. 네가 가져온 사진에서도 봐, 저 하얀 물거품 부분들, 그 흰색이 없는 바다라면 너무 심심하지 않겠어?”


나는 그의 사과를 듣고는 손을 들어 올려 짧게 손사래를 쳤다.


“그 포말은 바다에서 가장 짧은 생을 살아. 파도와 함께 금방이라도 피어오를 듯 솟구치지만, 파도가 내려앉자마자 거품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고.”


나는 그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는 포말을 옹호하고 있었다. 포말이 그에게 어떤 큰 의미를 가진 존재라도 된 양 굴고 있었다. 내가 잔잔한 바다가 좋다고 말한 것이 그에게는 마치 거친 파도에 올라 살아가는 포말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이라도 한 듯 느껴진 것인지, 그렇게 느껴졌다 한들 왜 그렇게나 슬프고 억울한 일인 건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거야.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쓰임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에 사그라들어 사라지는 게 포말은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그렇게 사라짐으로써 더 중요한 존재가 되는 거야. 포말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지고, 던져져서 잔뜩 부글거리고, 저항하고, 변화하다가 사라진다고.”


“피투 되어 기투 하는 존재...”


그의 말에서 무엇인가 떠올린 내가 중얼거리자 그는 번뜩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너라면 이해해줄 줄 알았어.”


나는 김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본 것이 처음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대화들은 수 없이 많고 모두가 흥미로울 것이 뻔했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의 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 역시 느끼고 있었고 마음이 찢어지듯 슬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갖고 있던 경계와 조심스러움을 모두 던져버리고는 그와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또 나눌 뿐이었다. 해가 지고 식사 때를 놓쳐도 배고픔조차 잊은 채로.


집을 나서려 현관에 선 나에게 김은 무엇인가 말하려다 말고를 반복했다. 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왜? 말해봐, 괜찮아.”


라고 하자 그는 빠르게 고개를 떨궜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나는 모두의 머릿속에서라도 잘 살고 싶어.”


그는 그 울먹거림을 얼마 동안이나 참아낸 것일까.


올라올 때도 그렇게나 벅차던 계단을 내려가려니 무릎이 욱신거렸다. 혹여 넘어져서 굴러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한발 한발 신중히 발을 내디뎌 일층까지 내려온 나는 이곳에 처음 도착했을 땐 미처 보지 못했던 노란 바구니를 발견했다. 그 노란 바구니에는 손바닥만 한 쪽지가 붙어있었다.


‘301호 택배 올라오지 마시고 여기에 넣어주세요. 감사합니다.’



‘신랑 최세영 신부 장…’


“이야 날씨 죽인다!”


신랑과 신부의 이름을 읽던 나에게 박이 거칠게 어깨동무를 했다. 결혼식은 바닷가에서 야외로 진행되었다. 소나무 숲을 병풍 삼아 늘어선 곱고 빛나는 모래사장과 잔잔한 에메랄드 빛의 바다, 따뜻하고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행진하던 신랑과 신부, 모든 게 아름다웠다.


나는 햇빛에 눈이 부셔서 식을 보다 말고 소나무 숲 그늘 밑으로 들어갔다. 곧지 않고 구불대며 자랐음에도 높고 굵게 뻗어있는 소나무들과 왜인지 그 몸통을 댕강 잘라버려 등걸만 남은 나무들이 어지러이 섞여있었다. 산 것과 죽은 것들이 한자리에 있다. 등걸은 죽은 것이다. 아직 살아있다 한들 몸을 불리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줄기를 높고 두껍게 솟아 올리고, 가지를 이리저리 뿜어내어 하늘을 선점한 것들이 만들어낸 그늘에 온몸이 흠뻑 젖어 있으니까.


결혼식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름다웠으나 흐릿했다. 어떤 흐릿한 장막 너머로 아주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잔치를 구경한 느낌만이 남아있었다. 짧고 호사스러웠던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입을 열었다.


“나 사실 얼마 전에 김 만났었어. 강릉으로 갔다더라. 거기서 아주 바쁘대.”


“그럼 그렇지! 근데 걔는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친구 결혼식에도 안 오냐?”


“그러게 연락 한통도 안 하고, 좀 서운하네.”


박과 강이 떠들썩한 반응을 보였다. 입에서 나오는 서운함의 말들과는 달리 그들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겠구나.’


“세영이 한테 따로 연락하겠지...”


나는 웅얼거리며 차 창문을 내렸다. 얼굴에 열이 올라 식혀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잘하지 못했다. 거짓말만 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모두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차가 달리며 바깥 공기를 안으로 잔뜩 퍼나른다. 차갑지만 상쾌하고 비릿하지만 달큼한 바닷내가 얼굴을 식히고 코를 적신다. 저 멀리 바다에는 닿지 못한 것들이 가득하다. 땅에 닿지 못한 것, 목적지에 닿지 못한 것, 꿈에 닿지 못한 것.


지상에 닿지 못한 것들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햇빛이 잘게 쪼개지고 바스러져 우수수 떨어지고 있다. 하늘에서는 양껏 빛을 뿜어내며 당당했을 것들이 바다에서는 좁쌀알이 되어 파도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튀겨지고 사라진다. 지상으로 향하는 파도가 일으키는 포말은 그가 지상에 오르기 위해 쥐어 짜내는 분투의 땀이고, 볼품없이 질질 흘려대는 침이고, 끓어오르는 혈기, 눈물이다.  포말들은 '부그르르'하고, '철썩'하며 피어오르지만 이내 사그라들고, 가라앉고만다.


물거품이 가라앉는다.





[포말] 끝

유원지 惟夗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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