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희 Dec 21. 2023

12월 25일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초월한 전 세계인의 기념일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가 다가오면 저는 묘한 우울감과 안정감 설레임을 동시에 느끼곤 합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감정을 이끌어내는 크리스마스를 미워하고 동경합니다. 또 아름답다 느낍니다. 축복이 가득한 날에 왜 우울하냐 되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말에도 동의합니다. 


사실, 저도 제 감정의 원인을 알 수 없어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저는 잔잔한 우울감을 늘 달고 사는 사람이라 어쩌면 우울감만큼은 크리스마스 때문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울은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흥이 많은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건 아니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치거든요. 때로는 내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불안과 고통이라는 친구들을 떠들썩하게 불러내기도 합니다. 


이 우울과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이 사회적, 경제적 성취의 미달과 높은 목표,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맞는 말 같다가도, 아냐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한 것 같은데... 합니다. 


내가 생계수단으로 삼은 일이 무척 바쁘고 매일같이 큰돈을 버느라 일상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과연 행복했을까요. 다 늦은 밤, 고개를 들어 말간 달을 쳐다볼 힘도 남지 않은 상태로 퇴근을 했다면 오늘도 많은 돈을 벌어 신난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분명 가난은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행복과 안정 충만한 기분까지 빼앗아가고 품 안에 불안과 우울 외로움이라는 고통만 떠안깁니다. 그렇게 가난이 너무나 강렬하게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지금의 우울도 가난이 내게 버리고 간 것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해왔습니다.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 머릿속 상상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척이나 섣부른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내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해야 하는 건 돈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실제로 돈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이제 행복을 찾기 위한 방법은 돈을 넘어선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렇다면 정말, 대체 이 우울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구질구질한 가난, 사랑의 실패, 가족의 불화, 친구의 부재. 도통 모르겠습니다. 원인은 모든 것일 수도, 그 어느 것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울감은 타고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울 유전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거든요. 중남미인은 이러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비율이 40%에서 50% 정도인 반면 동북아시아인은 70%에서 80%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유전자가 뜻하는 바는 필연이 아닌 가능성입니다. 과학적 연구의 산물일 뿐 반드시 우울함에 짓눌리게 될 것이라는 선무당의 저주는 아니지요. 


누구는 우울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약을 추천하였습니다. 작은 알약을 삼켜 머릿속을 뿌옇게 만들고 그 안에 있는 우울이 나를 찾지 못하도록 만든다면 그건 행복한 걸까요. 역시 모르겠습니다. 


누구는 운동이 답이라 했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이 넘어갑니다. 하루에 한 시간 반씩 주 5회에서 6회의 운동을 합니다. 기대했던 것처럼 사시사철 나시만 입고 다니며 늘 "머슬업! 머슬업!" 을 외치고 다니는, 변태같이 활기찬 헬스맨으로 변태하지 못했고 하다못해 기적처럼 우울감이 사라진 것도 아니지만 미약한 깨달음이 생겨났습니다. 운동은 몸의 명상이라 했던 누군가의 말이 맞는 걸까 싶기도 합니다. 


운동을 하며 느낀 것은, 사람은 작은 성취를 통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겁니다. 새해가 되면 헬스장은 신규 등록자들로 넘칩니다. 새싹과 함께 움튼 그들의 의지는 더위가 찾아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트레이너의 업무는 회원들의 의지를 연장시키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신규 등록자들이 운동에 재미를 붙여야 다음 달에도 회원권을 등록할 테니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작은 성취감을 안겨주는 겁니다. 작지만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회원권을 한 달 더 연장 시킬 수 있습니다. 사실 방법은 무척 간단한데, 바로 등 운동입니다. 모든 트레이너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빠릅니다. 등 운동은 자세 교정의 효과도 있는데 굽어져 있던 자세를 근육의 힘으로 살짝 펴 주기만 해도 신체 비율이 확연히 달라니다. ‘운동 좀 한 사람’이라는 아우라를 일으키는 ‘덩치’라는 요소의 주원인도 등 근육이죠.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등 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신체 부위가 바로 소지라는 겁니다. 온갖 대근육들이 몰려있는 등과는 반대로 인간의 신체 중 가장 약한 부위라고도 할 수 있는 새끼손가락. 


등에 큰 자극을 줄 수 있는 운동들은 모두 등 근육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버티거나 당기는 자세를 취합니다. 이때 새끼손가락에 힘이 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새끼손가락이 바벨을 꽉 감싸 쥔 힘이 유지되어야 등까지 자극이 올바르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신체에서 가장 강한 부위를 성장시키는 것은 가장 약한 새끼손가락입니다. 몸의 변화를 일으켜 내일의, 다음 주의, 다음 달의 나를 헬스장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하찮기 그지없는 새끼손가락입니다.


운동은 언뜻 글쓰기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고통과 쾌감, 둘 모두가 반드시 동반된다는 점, 행하면 행할수록 고통과 쾌감이 번잡스럽게 뒤엉켜 구분이 어려워진다는 점에서요. 


나는 쓰고 싶어 쓰는 걸까요 아니면 쓰기 위해 쓰는 걸까요. 추위를 뚫고 걸으며 수많은 잡념을 듣습니다. 눈 위에 남긴 발자국으로부터 떠오른 문장들은 종이에 옮기고자 책상 앞에 앉으면 모두 녹아 묽어지고 흐릿해집니다. 


쓰기 위해 억지로 짜낸 글은 불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꾸역꾸역 중반 이상 작성된 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함과 짜증이 깊은 속에서부터 꾸물대는 것을 느낍니다. 그 답답스러움을 해소하기 위해 한숨을 쉬기도, 낮은 욕지거리를 내뱉기도 합니다. 


나는 우울합니다. 얕은 재능의 바닥이 드러나게 되는 게 두려워 우울합니다. 사랑이 없어 우울하고, 가난해서 우울하고, 재능이 없어 우울하고, 우울해서 우울합니다. 우울해서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스러워 글을 씁니다. 그 우울로 인해 온몸에 쥐가 나는듯한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바닥끝까지 자유낙하하는 기분을 또 글로 묘사하고 싶어지는 나는 천상 예술인인 걸까요. 예술인이라 불리기 위한 대가가 우울과 불안이라면 덥썩 입에 물어 삼키겠노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에게도 우울감을 압도할 수 있는 소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우울로 소망을 성장시킵니다. 고통과 쾌감이 번잡스럽게 뒤엉킵니다. 


그렇다면 우울은 감정이 아닌 통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운맛이 그렇듯이요. 미각이 아닌 통각. 


과거엔 저도 매운맛을 즐겼습니다. 매운 것을 먹으면 입만 고통스럽던 시절. 그 고통을 통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쾌감을 느꼈던 시절. 편의점에 들어가 호기롭게 불닭볶음면을 집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체질이 변한 건지, 원래 열이 많던 성질이 드러나게 된 것인지, 어느 날 매운 걸 입에 넣자마자 땀이 줄줄 흘러내리게 된 뒤로부터 매운 음식을 잘 먹지 않습니다. 특히 바깥에서는요. 머리가 흠뻑 젖고 밥상에 땀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며 셔츠가 땀으로 천천히 젖어들어가는 사람과 마주 앉아있고 싶어 할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흐르는 땀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바쁘게 닦아대는 사람은 무언가 문제를 앓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더위로 인해 그러한 고통을 맞닥뜨릴 때도 있습니다. 특히 땀이 많은 체질이 드러난 직후,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몰라 이런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대학생 때, 학교 정문에서 전공수업을 듣는 건물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5분 정도였습니다. 학교를 갈 때면, 초여름이었는데도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어갔습니다. 집이 무척 멀었으며 게을렀던 저는 늘 수업 시작 직전이 되어서야 학교 정문에 도착했고 지각을 피하려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난데없는 더위 속 운동으로 인해 당황한 심장 박동은 온몸 구석구석 땀을 내보내며 높아진 온도를 식히려 들었습니다.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온통 땀에 젖은 몰골을 수습하고자 화장실에 들어가 휴지로 땀을 닦아내 봐도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뿐이었습니다. 휴지와 물이 있어 땀을 닦아내기 좋고 남들 눈도 피할 수 있어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정 반대였습니다. 밀폐되어 습기와 더위가 잔뜩 갇혀있는 곳에 몸을 던져 넣은 꼴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지요.


**사실 땀을 가장 빠르게 식힐 수 있는 방법은 그 땀을 신경 쓰지 않고 정해진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내에서 가장 강한 세기로 에어컨이 틀어져있는 곳은 강의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땀이 온몸에 흐르고 있을지라도 억지로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체온은 정상으로 내려가고 땀은 금세 모습을 감췄습니다. 


가라앉히려 애를 쓰면 쓸수록 우울은 무의미한 노력들과 더욱 엉겨 붙어 처참한 몰골을 만들어냅니다. 반대로 온몸 구석구석 새어 나오는 우울에 맞서지 않고 눈앞의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그 감정으로 인해 아름다움이 피어오른다는 사실을 이젠 압니다. 


물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늘 다른 영역입니다. 걸음은 때로 무의식의 영역이 되고 사뿐히 걷는 것을 잊어 진창에 머리까지 잠기고서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어둡고 더러운 바닥에 시선을 꽂고 퇴근하는 길, 눈가에 따뜻한 빛이 어른거립니다. 고개를 드니 백화점 앞 거대한 트리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트리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의 꿈을 꿉니다.


곧 크리스마스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사람과 새해를 기약하는 사람의 소망이 하늘에 올라 구름이 되고 또다시 흰 눈이 되어 세상에 내려앉습니다. 그들을 가만 바라보다 신발 속 발끝을 오므려봅니다. 혼란스러운 감정에도 감사함을 느끼며 정해진 하루를 덤덤히 살아낼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랍니다. 종교는 없지만 힘을 빌려달라 기도합니다. 머리까지 잠기고 나서야 무심한 걸음이었음을 깨닫던 어제에서, 공중을 떠다닐 순 없다 하더라도, 허리쯤 잠겼을 때 사뿐히 걷는 방법을 다시 떠올리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크리스마스입니다. '메리'는 없다 하더라도.








*타인의 의지가 돈벌이 수단이라니 옛날 옛적 착한 도깨비 설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사실... 애초에 촉박하지 않게 학교에 도착하면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퇴근길, 서울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