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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Mar 30. 2024

뭉근한 협박

당신들은 내게 이 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내가 불쌍한 옹알이기 때문이지 말을 팔아 쌀을 사고 배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고 글을 팔아 은행에 저당 잡힌 일회용 보금자릿세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야


말을 팔고 글을 파느라 낮에는 입이 아프고 밤에는 손이 아픈

줄기를 올려 세우고 뿌리를 내려 살아남기에 바쁜

가난하고 가난한

잡초


당신들은 내게 이 상을 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는 무척이나 무서운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상을 주어야 한단 말입니다 날아가던 참새를 탈취해 그 등에 올라타 당신들이 평화로이 일하고 있는 건물을 들이받기 전에 당신들의 집에서 늘어져 잠자는 토끼 무리 몰래 훔쳐 산에 들에 논에 밭에 풀어줘 버리기 전에 당신이 퇴근 후 도각도각 무를 썰고 맛 좋은 양지를 넣어 정성 들여 끓여놓고는 입을 씻으러 간 사이 그 달큰 고소한 뭇국을 훔쳐 달아나기 전에


꼬리 밟힌 강아지 친구 없는 까마귀 바람에 나부끼는 억새 한겨울 눈 쌓인 바다에 흠뻑 젖어 떠는 바위 수억 개의 종이 날에 베이는듯한 바람에 눈 못 뜨는 길고양이 작은 하이힐 속 끄트머리에 대가리 처박고 엉엉 울어대는 새끼발가락 그냥 보고 지나치려거든 납작 엎드려 손바닥 마주잡고 들어 올린 절실한 신자 등을 고이 밟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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