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

by 선희

노매드랜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펀은 얼마 전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그녀가 일하던 석고보드 공장이 문을 닫게 되어 직업을 잃 었고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남편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일련의 사건을 기점으로 펀은 노매드, 유 목민으로 살아갑니다. 밴을 타고 이동하고 밴에서 식사를 하고 밴에서 잠을 자는 현대판 유목민이 된 것이었죠.


그녀는 생활비를 얻기 위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일을 해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살아갑니다. 씻을 수 없으니 머리는 늘 기름져 있고 밴을 주차해 놓고 잠을 자다가 그곳을 지키는 경비원으로 부터 차를 빼라는 위협적인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방한이 어려운 밴 안에서의 잠은 늘 입김과 살 떨림, 차문 틈을 파고드는 살벌한 바람 소리를 동반합니다.


그녀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돈이 필요하고 식사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움직이지 않는 벽과 천장을 가진 집이 매우 절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것 들을 쫓지 않습니다. 그저 눈앞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잠시 머무를 뿐입니다.


생계라는 고단함이 늘 그녀를 매섭게 따라오지만 그녀는 발버둥 치지 않고 그저 살아갑니다. 자 신과 같은 처지의 노매드들을 만나 한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생존에 필요한 여러 기술 들도 배웁니다. 그렇게 마주친 이들과 웃고 떠들기도 합니다. 협곡을 바라보며 고기를 구워 먹기 도 하고 뜨겁게 타오르던 태양이 차갑게 가라앉아 어둠이 될 때까지 가만히 앉아 바라보다 잠에 들기도 합니다. 자신이 일하는 테마파크 안, 조잡한 모형물 앞에서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셀프 카메라를 찍기도 하고요.


펀이 만난, 아들을 잃은 한 노매드는 말합니다.


길에서 만나는 이들 중 대부분은 아픔을 갖고 있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이 생활을 하면서 제일 좋은 건 영원한 이별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난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않는다. 늘 ‘언젠가 다시 만나자’라고 한다. 그리곤 만난다.


펀은 번듯한 집에서 같이 살자는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리곤 언젠가 그녀가 집에서 살던 시절 사 용하던, 사설 창고에 맡겨 놓았던 오래된 짐들을 모두 “없어도 괜찮다” 라고 말합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영화는 끝끝내 말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말이 많은 영화가 아닙니다. 그저 펀의 생활을 덤덤하고 조용히 따라다닐 뿐입니다. 몹시도 아름다운 풍경과 색감, 음악과 함께 말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늘 기억해야 할 것도 그러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고 해도 이야기로서 바라보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노매드들은 수없이 잃고 헤어지면서도 그저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갈 뿐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없는 것을 너무나 명확히 인지한 채 말이죠. 펀은 너무나 많은 것들과 마주쳤고 너무나 많은 것들과 헤어졌습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치거나 사라지는 것을 따라가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들고 내 앞에 놓인 길을 나아갈 뿐입니다. 그녀는 또다시 차를 몰고, 목적지는 어디 인지 모르지만, 눈앞에 난 길을 나아갑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때,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많은 것들과 헤어진 이들이 오늘도, 내일도 그저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영화를 소개합니다.


p.s. 같은 결을 다루지만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는 영화를 찾고 싶은 분들은 ‘애프터썬’, ‘미스 리 틀 선샤인’을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영화 내용과 큰 관계없는, 덧붙이는 이야기지만, ‘미스 리틀 선샤인’의 원제목은 ‘리틀 미스 선샤인’입니다. 한국의 제목은 ‘리틀 선샤인’이 변하지 않는 가치라 고 생각하고 있고 미국은 ‘미스 선샤인’이 변하지 않는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네요. 영화는 이처럼 보는 시기나 장소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의 국적에 따라서도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재미 있지 않나요? 별것 아닌 단어의 배치 차이 하나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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