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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의 아침식사 베이글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베이글,


언젠가 커피에 찍어 먹었을 때의 미지근한 맛이 괜찮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평소엔 거의 눈길도 주지 않지만 갓 구워낸 베이글의 향에 끌려 네 개짜리 한 봉지를 냉큼 집어 들었다. 베이글 좋아하는 이에겐 미안하지만 베이글의 식감은 내게 고무나 스펀지를 씹는 느낌이다. 하지만 썩 달지 않은 베이글의 맛이 커피와 어우러질 때 주는 느낌은 조금 다르다. 그날이 그날 같은 변함없는 삶의 느낌을 베이글에서 느낀다고나 할까. 요즘 내 일상이 베이글에 커피를 찍어 먹을 때의 달지도 쓰지도 않은 모습인 것만은 확실하다.


아침식사로 1인 1개의 베이글을 커피와 함께 내니 남편이 부담스러워했다. 나 또한 베이글을 커피에 찍어 먹었을 때의 느낌과 갓 구워냈을 때의 향에 끌려 샀지만 그건 그 순간에 지나가 버렸다. 괜히 샀다. 고무를 씹고 스펀지를 씹는 느낌을 알면서 베이글을 사다니. 변함없는 일상을 아침식사로 먹는 베이글에서까지 느끼려 들었다니 엉뚱하고 어리석다.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낼 수 있을까. 더구나 아침식사로 한 사람이 베이글 하나를 소화하기엔 무리다. 반 개씩을 먹어봤다. 역시 무리다. 마지막 하나 남은 베이글은 1/4쪽씩 먹는 게 어떠냐고 남편도 나도 입을 모았다. 1/4쪽이면 식빵 한 쪽 분량이다. 지나치게 많은 양을 내놓고 맛이 있느니 없느니 베이글을 탓했다. 그저 구워졌을 뿐인 베이글에게, 구워져서도 말없이 가만있을 뿐인 베이글에게 민망해졌다.





칼을 불에 달궈 베이글을 둥글게 반으로 갈랐다.


내 모든 행위는 어쩌면 지극히 원시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새로 나온 주방도구나 그릇 등에 거의 관심이 없다. 새로 들인 그릇을 상자 안에 넣어 둔 채 몇 년씩 묵히다 지난해에야 바꿨다. 그릇에 관심 많은 친구는 자주 만나든 오랜만에 만나든 반드시 주방용품 코너를 돌아보곤 한다. 주방용품에 별 관심 없는 나는 주방용품보다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즐거운 시간이다. 친구는 새로운 그릇이나 주방용품을 보면 얼굴에 환한 웃음이 돈다. 나는 뜨뜻미지근하게 '오, 또 새로운 게 나왔네.' 정도의 반응이다. 친구가 뭘 고르고 사든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결코 만져보지도 않는다. 누가 보면 꼬질해 보일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에 더 마음이 머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릇은 깨지지 않는 한 잘 닦아서 쓴다. 이 접시는 한 30년 연세는 있는 그릇이다. 칼을 불에 달궈 빵을 자르는 것 역시 오래전 한 번 들은 것에서 진보하지 못했다. 접시 위에 놓인 베이글이 뜨겁게 달궈진 칼에 제 속을 드러냈다. 반은 다음 끼니에 먹기 위해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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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글 1/2로 남편과 나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둥글게 반으로 가른 베이글 1/4쪽의 안쪽에 피자치즈를 깐다. 그 위에 구운 애호박을 한 줄 올린다. 애호박구이는 요즘 코로나19 등 여러 가지로 인해 애호박 소비가 거의 없어 갈아엎고 있다는 소식에 하나라도 더 먹어볼 요량으로 만들어봤다. 기름 두르지 않고 소금 한 꼬집도 섞지 않고 구운 이런 미적달착지근한 맛이 내 입에는 맞다. 애호박구이 위에 다시 피자치즈를 몇 개씩 올린다. 피자치즈는 쓰다 남은 게 있어서이기도 하고 베이글 빵과 속이 서로 따로 놀지 않아야 먹기 편할 것 같아 깔아보았다.


그 위에 1/4쪽의 베이글 빵을 올리고 살짝 눌러준 다음 전자레인지에 30초 데웠다. 빵을 들어보니 피자치즈가 잘 녹아서 베이글과 찰떡처럼 붙었다. 줄줄이 올라오는 피자치즈 사이로 첫째가 만들어준 수제 요구르트를 밀어 넣었다. 생크림 대신 넣은 것은 아니지만 색깔만은 생크림을 닮았다.


이번에는 길이를 반으로 잘랐다. 1그램이라도 치우침이 없이 하려고 노력했다. 더위에 입맛을 잃기 전부터 임플란트 때문인지 입맛이 없다는 남편은 먹을 거라면 어떻게든 작은 것을 집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입맛 없는 남편에게도 입맛 좋은 내게도 치우침이 없도록 하기 위한 나의 칼질 원칙에 대해 남편은 몰라야 한다. 지독한 몸살 두어 번 겪었을 때 외에는 언제나 입맛 좋은 나는 1그램이라도 남편에게 더 주고 싶지 않노라 실토하지 않을 것이다.


드디어 베이글 빵 1/4쪽을 아침식사로 내놓게 되었다.





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올림픽 경기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주말에 한 번 보는 드라마도 중단한 채 코로나19 확산으로 무관중 형태로 치러지고 있는 올림픽 경기 중계에만 열을 올리는 지상파들을 보며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이런 와중에 공영방송인 kbs는 시청료를 올리겠다고 어느 과정까지 이미 진행된 모양새다. 시청해 주는 내게 역으로 감사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케이블 티브이를 신청하라는 안내 문자가 시도 때도 없이 온다. 뉴스나 드라마 한 편 정도면 족할 세상 소식에 별 큰 관심도 없다. 케이블 티브이 연결한 이웃집은 하루 종일 티브이를 켜 두고 심심하면 그 앞에 가 앉곤 한다. 세상 모든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하지만 결국은 행복에 함몰하게 만들고 만다. 그리하여 행복에 겨워 행복에 빠져 익사하게 만든다는 것이 내 부족한 생각의 결론이다.


티브이 시청 시간이 거의 없다 보니 책도 더 많이 읽고 더 짜임새 있는 글도 더 자주 쓰면 좋으련만 그런 바람은 욕심인 모양이다. 재능보다는 욕심이 앞선 희망사항일 뿐 요즘 같은 더위 앞에서는 모든 게 녹아내린다. 에어컨 바람을 쐬다 더운 바람을 맞는 순간 내 온몸에 들러붙는 수증기에서 찬물 한 컵에 왁자지껄 달려와 붙었다가 줄줄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본다. 찬물 한 컵과 내가 동격이 되는 순간이다.


나는 원시적일지도 모른다는 말은 나를 위한 약간의 변명이 섞인 말이다. 나는 지극히 원시적이라는 말이 정확하다. 그나마 저녁식사 후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샤워하듯 다소 격한 운동으로 피곤해진 몸을 일찍 누이면 금세 잠에 빠진다. 그러다 보니 새벽 네다섯 시면 일찌감치 또 눈이 떠진다. 어떤 일이든 반복이 되면 거기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아침 준비를 한다. 별생각도 없이 지극히 단순한 한여름의 삶에 빠져 얼마쯤 익숙해진 요즘이다.






일찍 일어난 덕분에 내 나름대로 베이글을 상대로 장난을 쳤다. 베이글 안에 몇 가지 넣어 데우고 잘라내고 명란두부계란찜도 만들고 과일도 씻고 깎아냈다. 커피도 한 잔 탔다.


남편도 다른 날에 비해 몇 십 분 일찍 깼다. 밍밍한 맛의 베이글이 양이 많지 않아 좋다고 엄지 척이다. 방울토마토 몇 개와 사과 한 쪽, 복숭아 한 쪽, 명란두부계란찜까지 두어 번 맛을 봐 준다. 명란두부계란찜도 괜찮다는 반응이다. 나이 들어 남편 반찬에 더 신경 쓰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조심스럽기도 하다.


준비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먹는 데는 5분 남짓 걸린 듯하다. 남은 명란두부계란찜과 복숭아 한 쪽, 방울토마토 여섯 개는 대화 상대도 없이 종일 남편을 기다릴 내 점심 식사다.


현재의 내게 완전히 익숙해지기 전에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베이글이 주는 미적지근한 맛에 빠져 지낼 수는 없을 나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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