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제 아침, 남편의 짧고 놀란 목소리였다. 남편이 바지를 입다 말고 허리 아래 부분에 두 손을 대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린 것도 아니고 바지를 입기 위해 허리를 구부렸다 펴는 중에 삐끗할 수도 있다니, 놀라운 신체의 변화였다.
찜질을 하고 바로 누워 쉬어도 차도가 없어 오후에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다. 그러나 다음날인 어제 아침이 되어도 차도가 없어 병원에 가기로 했다. 좋다고 이름난 동네 정형외과들은 대체로 본질보다는 부속적인 외형에 더 신경을 쓴다. 원적외선 치료에 온찜질까지 한의원과 대동소이한 부분이 많다. 엑스레이와 주사, 약 처방이 한의원의 침과 대조될 뿐이다.
작년, 발목 때문에 고생하는 내게 이웃에 사는 이가 한 정형외과를 알려주었다. 자신이 팔꿈치 때문에 다니게 된 병원인데 주사 두 번에 많이 좋아졌다고. 그래서 들른 정형외과에서 나도 주사 두 번으로 발목이 많이 좋아졌고 현재까지 더는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지내는 중이다.
그 병원엔 어느 병원에서나 볼 법한 그 흔하디 흔한 원적외선이나 온냉 찜질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오로지 소독약 냄새와 주삿바늘이 주사약과 함께 가지런히 쌓여 있을 뿐이다. 아, 엑스레이 촬영실과 부속실 등이 있다. 환자는 자신의 환부와 증상에 대해 의사에게 상세히 알려주고 주사를 맞는다. 그리고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사서 며칠간 먹으면 된다. 진료 시간도 조금 걸릴 뿐만 아니라 냉온찜질 시 왠지 불결해 보이는 보조 치료 물품들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함도 없다.
코로나 19가 3차 대유행을 맞아 교육을 쉬게 된 남편은 전날 티브이 시청에 빠졌다가 9시 반에야 일어났다. 병원에 가자는 내 말에 남편이 부랴부랴 병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병원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병원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폰 주소록에 저장해 둔 병원장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인터넷을 켜고 병원 근처 정형외과를 다 뒤져 결국 가려고 하는 병원 이름을 찾았다. 전화를 걸었다. 11시까지 와야 오전 진료를 볼 수 있고 늦어도 11시 반에는 도착하기를 바랐다. 내비에게 주소를 알려주니 35분이면 도착한다고 뜬다. 11시 15분 즈음 도착하겠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니 서두르지 않고 가도 되겠다.
얼마쯤 갔을까, 벌써 도착했을 시간인데 내비가 우리를 길에서 빙빙 돌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 다녀갈 때 보았던 큰 건물이 조금 전 지났으니 이 길에서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좌회전 우회전을 계속 시키고 있었다. 가시나야, 또 뭘 헷갈렸니? 하는데 차가 정형외과가 있을 자리를 지나쳤다.
남편은 차를 대려고 주차장을 찾고 나는 남편 진찰을 접수하기 위해 미리 병원으로 들어갔다. 어? 그 사이 병원을 수리했거나 증축한 건가 싶게 입구부터 내부까지 낯이 설다. 간호사가 손 소독을 하라며 알코올병을 가리켰다. 손 소독을 하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병원 넓힌 건가요? 많이 달라졌어요."
"어디 오신 건가요? 우리 병원은 30년째 같은 모습인데요."
아뿔싸. 병원을 잘못 찾은 것이다.
"**정형외과 맞죠? 전화까지 하고 왔는데."
"정형외과 이름이 같은 데가 많아요. 예전에 다니시던 병원이 아닌가 봐요. 다시 확인해 보세요."
가려고 하던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첫 전화도 다른 병원과의 통화였던가 보다. 저편에서 이름은 맞는데 주소가 다르다며 병원 주소를 가르쳐 주었다. 시간은 11시 20분이었다. 주차를 하러 갔던 남편을 전화로 부르고 내비에 병원에서 알려준 주소를 입력했다. 못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건지 내비에게 새로 입력한 주소가 먹히지를 않았다. 신식이 아니라 구식을 입력해서인가 보다.
진땀이 났다. 오후 진료를 받아도 되는데 왜 이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나를 억누르며 정형외과 옆 약국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했다. 약국을 찾으면 병원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다행히 약국 주소는 내비가 바로 소화했다. 11시 35분,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에 들어서자 방금 전화를 걸었던 사람임을 알아보고 진찰표 작성을 하도록 했다. 남편이 환자이며 남편은 주차장을 찾고 있을 거라 또 조금 늦을 거라 알려주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환자도 줄어서 병원 앞 차도에 주차하셔도 되는데요."
주차하려는 남편을 또 불러야 했다.
"병원 앞에 그냥 세워도 된대요. 방금 마지막 환자 진료 끝나서 당신만 오면 된대요."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다 돌아나와 한 블록을 돌아 다시 병원 앞으로 오기까지는 신호등도 있고 해서 또 7~8분이나 걸렸다. 나는 그 사이 병원 옆 약국에 들러 주소 알려줘서 시간 내에 병원 도착했다고 감사 말씀을 전했다. 약 사면서 해도 될 말을 뭐가 그리 급한지 스스로를 볶아대며 정신없이 만들고 있었다.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 나올 때까지 몇 분 기다린 후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고 나오니 딱 12시다. 병원 직원들을 12시까지 꼼짝없이 잡아둔 것이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한 마디 했다. 왜 그렇게 달달달 했느냐고. 나도 모르겠다고. 달달달 하는 걸 느끼면서 달달달 하고 있었다고. 병원 접수해 두고 오랜만에 우리 동네 아닌 곳에서 느긋하게 점심도 사 먹고 오후에 진찰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생각과 달리 나도 몰래 볶아대고 있었노라고. 지갑 속에 내 진찰권이 있다는 게 왜 이제야 생각나는 거냐고.
"이거 좀 보세요, 진찰권에 병원 이름도 전화번호도 신주소도 다 적혀 있잖아."
그런 와중에 이 병원을 알려준 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다른 사람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을 정도로 말이 많아 말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 많은 말속에 1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렇게 쓸모 있는 알맹이가 들어 있었다니. 새삼 그가 입을 열면 조용히 일어나 바쁜 일이 있는 척 자리를 떴던 나를 돌아보았다. 벌이라면 벌이다. 일부러 자리를 뜨면서까지 멀리하려 애쓸 필요야 있었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