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이라는 폭력

by YUJU

유튜브 쇼츠에서 "(소름 돋는) 가정이 무너지는 과정"이라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용은, 양가가 모두 편안하고 화목한 집에서 끼리끼리 만나 결혼을 해 공부도 적당히 잘하는 착한 딸 하나를 둔 평범한 대한민국 가정의 50대 엄마가 쓴 글이었다. 이 엄마는 딸을 낳고도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며 가정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딸이 취업 문턱에서 좌절을 하고, 그 뒤로 일자리를 구할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채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되면서,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시간과 돈과 체력을 영끌해 이 딸을 계속 키워야 한다는 절망감 때문에 매일 딸 얼굴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는 하소연이었다. 글을 읽고 있던 유튜버는 이 정도로 어디 하나 부족함 없이 무난하고 무탈하고 평범했던 사람들의 인생마저도 이렇게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는지, "사는 거는 X발 진짜 누가 기획했길래 이렇게 X 같은 걸까..."라고 말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는 이 희대의 명언을 다시 듣기 위해 쇼츠를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최근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나름대로 분석해보려 하다가 알게 된, 학계에서는 '반출생주의'로 유명한 데이비드 베너타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는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이 책은 "삶이라는 것이 왜 언제나 '절대선'으로 여겨지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시작된다. 인생은 대체적으로 한 인간의 높은 이상과 기대와 욕망을 만족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인생이라는 돌림판의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인 뽑기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행복보다는 고통을 준다. 따라서 삶은 대부분의 상황이 '고통의 연속'이 된다. 그렇기에 '아이를 위한 출생'이라는 것은 사실상 아이의 의사가 배제된 부모의 일방적 결정일뿐 전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며, 태어나지 않았다면 받지도 않았을 고통을 굳이 세상에 아이를 태어나게 만들어 겪게 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죄악이자 폭력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글을 읽으며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해보았다. 몇 년 전 개봉한 픽사 영화 '소울'에서 처럼, 곧 태어나야 할 아이들의 영혼을 불러 모아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지에 대해 아주 적나라하고 솔직한 브리핑을 한다면. 인생이라는 것은 한평생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하기 싫은 일, 귀찮은 일, 남이 시키는 일들을 하다가 어느새 늙어가는 것이고, 살아있는 시간 동안에도 대개 '불안감 실망감 좌절감 질투심 시기심 이기심 열등감 열패감 분노 증오 혐오 억울함 비겁함 비참함 수치심 죄책감 우울함' 등 내면에서 수시로 솟구치는 온갖 끔찍하고 추악한 감정들에 휩싸여 번뇌하다 죽어가는 것일 뿐임을 보여주고, "자, 이제 태어날지 말지 네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렴"이라고 선택권과 결정권을 제시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단점들을 뒤로하고 '세상에 존재함'을 선택할 수 있을 용기 있는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최근 고 찰리 커크가 '낙태'를 주제로 미국 대학생들과 토론 배틀을 뜨는 유튜브 영상들이 알고리즘에 올라오고 있어 유심히 보았다. 찰리 커크를 위시한 낙태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태아의 살 권리를 엄마라는 타인이 임의로 박탈하는 행위가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불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애초에 살 권리와 마찬가지로 죽을 권리 또한 태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태아는 태어날 권리도 박탈당하지만, 태어나지 않을 권리도 박탈당한다. 따라서 아이의 자발적 의사에 반해 아이를 낙태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아이의 자발적 의사에 반해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것도 똑같이 불법이다.


낙태를 금지해서 그들이 주장하는 '소중한 생명' 하나를 지켜낸다 치자. 그러나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것이 어려운 인간 사회에서 그 아이는 평생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이를 전혀 원치 않았던 엄마 밑에서 억지로 태어나 부와 모 양쪽의 뒷받침 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신체적, 정서적으로 양질의 성장이 가능은 할까. 아이 때문에 억지 결혼을 했다 치더라도, 부부가 매일 싸우며 지옥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면? 혹은 낳긴 낳았으되, 낳고 나서 버려 버린다면? 부모 양쪽의 생존과 돌봄과 보호가 아이의 복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 사회에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남의 손이나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가 있는 아이들과 자신을 수시로 비교하면서 "아아, 그래도 태어나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며 성장하게 될까? 사회가 낙태를 금지시킴으로써 살려낸 생명이, 태어났다는 이유로 평생 겪어야 할 일들을 나열해 보면 그들의 앞날은 비참함의 연속일 뿐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사회는 아직 낙태금지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보장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결국 낙태금지는 세상이 완벽하게 '유토피아'적 일 때나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다. 만약 세상이 정말 아름답고 따스하고 훌륭하다면, 이렇게도 좋은 세상에 아이가 태어나 성장할 수 없도록 방해했다는 사실은 아이에게 짓는 부모의 죄가 분명히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완벽하게 잔혹하다. 나는 그래서 공산주의자와 낙태반대론자가 사실상 똑같이 '몽상가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낙태금지를 주장하려는 이들은 추상적인 생명 윤리만 들입다 운운할 것이 아니라, 엄마가 임신과 출산의 과정 속에서 한치의 차별 없이 모든 활동을 비임신 상태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학교와 기업 환경을 철저하게 모성 중심으로 유지하고, 아이를 나 몰라라 하는 아빠에게는 아이 양육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짊어질 때까지 전과 기록을 적시해 취직이나 사회활동에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주며, 출산으로 인해 생겨나는 한부모 및 어린 부모의 생계를 정부에서 넉넉히 지원하고, 낙태를 포기하고 낳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연애나 결혼, 취업 및 사회 활동에 대해서 공동체 누구도 함부로 뒷말하지 않고 토 달지 않는 건강한 시민 문화의 확립을 먼저 약속하고 실현해야 한다. 사실은 그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혜택 속에서라면 여자들이 낙태를 '애써' 선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덧붙여 자신으로 인해 '태어나 버리게 된' 작고 가녀린 생명을 이토록 잔인한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도 일종의 훌륭한 모성의 발로이다(최근 저출산을 '결정'한 대다수 한국 청년들의 심리가 바로 이와 같다). 저출산을 요즘 젊은것들의 이기심으로 매도하려 하는 사람들은, 앞서 언급하였듯 이 잔혹하기 짝이 없는 세상 속에서 소중한 한 생명이 행복한 나날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토피아적 대안부터 마련해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주장은 오늘 하루도 삶이라는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채 사는 게 버거워 허덕이고 있는 수많은 서민들에게는 그저 공허한 쌉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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