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 약약, 강약 약강, 강강 약강, 강약 약약

by YUJU

1. 강강 약약

나는 전형적인 '강강 약약'이다. 누군가 나보다 강한 사람이 내 뒤통수를 잡고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려고 하면, 절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이 없는 나는 차라리 내가 내 목을 스스로 꺾어서 부러트려 버리고야 마는 타입이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내가 드디어 엄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았어! 신이 나서 호들갑을 떠는 아이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봤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엄청 착한 사람한테 져. 그래서 엄청 착하면 돼.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굉장한 통찰력'이라며 아이를 칭찬했다. 맞다. 나는 착한 사람에게만큼은 완패를 당한다. 100번을 싸워도 100번을 여지없이 진다. 충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분자의 결합이 단단해져 오히려 강도가 상승하는 비브라늄 같은 마음(와칸다 포에버!)이, 착한 사람의 말 한마디에는 흐물흐물 푸딩처럼 녹아버린다. 그리고 그 '착하기 때문에 약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손톱을 한껏 세우고 용맹스럽게 강한 세상과 싸운다. 지금 누군가 나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결코 착하지도, 약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2. 강약 약강

나는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고양이파이다. 내가 왜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고양이가 가진 자유롭고 독립적인 성향을 흠모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보다 서열이 위인 반려 인간에게 철저하게 복종하고 항상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강아지와는 달리, 고양이는 반려 인간이 가진 막강한 '생사여탈권'에도 절대로 굴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비굴할 정도로 한없이 인간의 사랑을 구걸하기보다, 차라리 인간과 평생 내외하며 선 긋고 지낼지언정 가고 싶을 때 가고 오고 싶을 때 오는 자유로움을 택한다. 자신에게 평생 따듯한 안식처와 맛있는 사료를 무한 제공해 주는 고마운 '대왕 고양이(라고 쓰고 인간이라고 읽는)'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고양이 최대의 배려란 이런 것이다. "너, 내 동료가 돼라." 고양이로부터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는 것,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 서서 그들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예롭고도 행복한 일이다.

한편 권력을 가진 자를 눈치껏 알아보고, 그 권력에 복종하고, 권력자와의 거리에 따른 서열과 질서에 순응하는 모든 행위를 일컬어 '사회성'이라 미화하여 부르는 것부터가 벌써 이 세상을 지배하는 대다수의 인간들이 '강약 약강'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때문에 '강약 약강=사회성' 이라는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사회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나는 무엇보다 '자유'와 '독립', '평등'의 가치가 존중되는 수평적 관계를 좋아한다. 모두가 무시받을지언정, 누군가만 무시받는 것은 싫다. 모두가 존중받을지언정, 누군가만 존중받는 것도 싫다. 모든 인간들의 관계가 고양이의 세계와 같다면 좋으련만. 인간은 아무래도 고양이보다는 강아지와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것 같다.


3. 강강 약강

가장 노답인 케이스는 경험상 '강강 약강'이 압도적인 듯하다. 얼마 전에도 뒷목을 잡을만한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우리 교회 주차장에 교회 앞 아파트 주민이 차를 세웠다. 그런데 하필 그 자리가 아빠가 주로 이용하는 암묵적인 전용 주차 구역이었다. 아빠는 이십 대 후반의 남자 운전자에게 가서, 주차장을 사용하는 것은 괜찮은데 다만 차를 옆 칸으로 옮겨서 세워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남자는 머리가 희끗한 아빠에게 "당신이 뭔데 차를 다른 자리로 옮기라 마라 요구하는 것이냐"며 고압적인 태도로 따졌다. 아빠는 어쩔 수 없이 "나는 이 교회의 담임목사"라고 신분을 밝혔다. 만약 그 남자가 '강약 약강'의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적어도 '강강 약약'일지언정 머리가 좋아서 어느 정도의 메타인지가 가능한 사람이었다면 이쯤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남자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약자로 보여서 은근히 무시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세계관 최강자였음을 깨닫게 되자, 한 술 더 떠서 결국 절대로 남에게 보여선 안되었을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담임목사인데 뭐 어쩌라고. 담임목사면 남의 차를 마음대로 옮기라 마라 해도 돼?"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래도 한국에 태어났으면 어찌어찌 고등학교는 졸업했을 건데, 습자지처럼 얄팍하기 짝이 없는 이 주차 빌런의 상식 주머니 속에는 '사유지'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빠는 마침내 "당신 같이 고마움을 모르는 안하무인한 사람에게는 교회 땅을 한 평도 허용할 수 없다"라고 화를 냈고, 옆에 서있던 엄마는 기가 막혀서 "여기가 누구의 주차장인가요?"하고 남자에게 되물었다. 남자는 대답은 못하고 아빠만 한참 째려보더니, 결국 차를 주차장 밖으로 뺐다고 한다.

나는 씩씩대며 집에 돌아가 이 일을 복기하고 있을 그 남자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남의 사유지에 허락도 없이 무단 주차 및 무단 점유라는 불법을 감행한 주제에, 시설 관리 주체이자 최고 결정권자인 교회의 대표에게 "당신이 담임목사면 다냐"라고 되려 뻔뻔스럽게 화를 낼 수 있는 정도의 폐급력이라니!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지를 납득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같은 그 해괴한 장면을 나도 직관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그래도 저 딴에는 "나는 권력 앞에서도 기 안 죽고 내 할 말 다 하는 사람이야. 저런 꼰대 같은 목사의 갑질에도 당당히 저항했다고!" 하며 일말의 수치심도, 부끄러움도 없이 자위를 실컷 해대었겠지. 자기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자기 주제가 어디쯤인지조차 전혀 모르는 순도 높은 '무식'이 그를 기어코 '강강 약강'의 길로 이끌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는 그와는 일면식도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주차 자리를 찾아 매일 동네를 빙글빙글 도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4. 강약 약약

알고보면 이 바닥의 최상위 포식자는 이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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