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새로운 실존 형태에 대하여
길을 걷다가 앞사람과 부딪힐 뻔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특히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과 마주칠 뻔한 순간들. 요즘 이런 사람들을 "스몸비"라고 부른다.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로, 화면에 빠져 주변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그런 장면을 목격했다. 한 남자가 스마트폰을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신호가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해 경적 소리를 듣고서야 멈춰 섰다. 길을 건너던 나 역시 움찔하며 그를 쳐다봤다. 순간적으로 짜증도 났지만, 곧 내 모습도 떠올랐다. 나 역시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려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과 부딪힌 적이 있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스마트폰에 의존하게 된 걸까?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는 그의 책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현대인은 본질이 아닌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스몸비 현상은 단순히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행동 이상의 문제다. 우리는 SNS에서 "좋아요"와 댓글을 기다리며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고, 끊임없이 정보를 확인하며 불안감을 해소하려 한다. 이러한 행동은 스마트폰 화면 속 가상의 세계가 우리의 삶을 점점 더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마트폰 속 세계에 빠진 스몸비들의 모습은, 어쩌면 현대인들이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초상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우리는 끊임없이 연결되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눈앞의 세계와는 단절되어 간다. 스마트폰은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줄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속에서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각자 자신의 화면에 몰두하는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되었다.
유리창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직장 동료와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스마트폰을 없애버리면 이런 문제도 없어질까?" 동료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스몸비가 되는 이유는 단순히 스마트폰 때문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확인하고 채워야 한다는 현대인의 강박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SNS 알림, 메시지, 이메일...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기술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기술을 통해 많은 편리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기술에 종속된 삶을 살고 있다. 스마트폰은 우리를 연결하는 동시에, 우리를 고립시키는 아이러니한 도구가 되었다.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빼앗는다.
니체는 "현대인은 속도에 중독되었다"고 말했다. 어쩌면 스몸비는 이 말의 또 다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는 조급함 속에서, 정작 주변의 진짜 풍경과 순간을 놓치고 있다. 길을 걷는 동안 하늘을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세상을 보지 못한 채 우리는 걸어가고 있다.
스몸비 현상은 단순히 스마트폰 사용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방향과 우선순위가 왜곡된 결과다. 우리는 정보를 소비하며 시간을 채우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정보가 아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있다. 스몸비는 우리에게 멈춰 서서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스몸비라는 단어는 단순히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을 돌아볼 기회를 준다. 화면 속 세계가 아니라, 지금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순간을 보는 것. 이 단순한 변화가 우리가 스몸비에서 벗어날 첫걸음이 아닐까? 스마트폰 대신 주변을 바라보며 걷는 시간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회복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작은 실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길을 걸을 때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변을 바라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점차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무의 색깔, 바람의 소리, 사람들의 표정 같은 것들. 이런 작은 변화가 쌓이면 우리는 스몸비에서 벗어나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스몸비의 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우리가 어디에 집중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기술은 우리의 존재 방식을 형성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오늘은 스마트폰을 잠시 주머니에 넣고 걸어야겠다. 하늘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말이다. 스몸비의 길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다운 길을 걷고 싶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