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추구미-모양도 향기도 다른,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

by 임선재

하늘색 벽지에 붉은 소파가 놓인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과감한 색 조합이라 여겼을 테지만,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이상하게도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그 집은 그 친구를 닮아 있었습니다. 화려하지만 어딘가 따뜻하고, 대담하면서도 포근한.

공간을 거닐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보편적인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고유한 감각이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추구미'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일상에 스며든 나만의 색깔

거리를 걷다 보면 각자 다른 빛깔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원색의 옷을 입고 자신감 넘치게 걸어가는 사람, 모노톤의 의상으로 차분한 매력을 발산하는 이, 빈티지한 아이템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까지. 우리는 옷차림만으로도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방향을 드러냅니다.


한 친구는 카페에서 독특한 컵을 발견하면 꼭 구입해 집에 가져갑니다. 지금껏 그의 집에는 똑같은 컵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각기 다른 무늬와 색상의 컵들이 식탁 위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고 있는 듯합니다. 반면 또 다른 친구는 모노톤의 같은 디자인 컵만 선호합니다. 흰 벽, 검은 가구, 그리고 필요한 것만 남긴 깔끔한 공간. 두 사람의 공간은 전혀 다르지만, 둘 다 자신만의 '추구미'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스타일이 더 좋은가가 아니라, 그 선택이 진심으로 나를 만족시키는가 하는 점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정교한 알고리즘보다, 예전 앨범들을 모아둔 LP 컬렉션이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최신 기능의 스마트 가전보다 오래된 수동 커피 그라인더가 주는 만족감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 일상의 풍경을 그려냅니다.


나를 말하는 방식, 추구미와 자기표현

사실 추구미는 단순히 물건을 고르는 취향의 문제를 넘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언어와도 같습니다. 패션을 예로 들면,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유행만을 좇지 않습니다. 자신의 체형에 맞는 실루엣, 자신의 피부톤과 어울리는 색상,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소재를 찾아 나만의 스타일을 완성해 갑니다.

직장인 김씨는 평일에는 정갈한 슈트를 입지만, 주말에는 90년대 힙합 뮤지션을 연상케 하는 빈티지 룩으로 변신합니다. 대학생 이씨는 어머니의 옷장에서 찾아낸 80년대 블라우스에 현대적인 청바지를 매치해 자신만의 레트로 감성을 완성합니다. 어느 쪽이 더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입은 옷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캔버스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본질이 아닌 존재로서, 스스로를 창조해가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추구미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창조해 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그에 답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이 만들어집니다.


추구미는 어떤 면에서 용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때로 외로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 용기 있는 선택이야말로 자신을 가장 자신답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공간에 스며든 내 마음의 풍경

추구미는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방 안의 색감, 가구의 배치, 벽에 걸린 그림 한 장까지, 모든 것이 우리의 내면을 말해줍니다.


한 작가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집에는 책이 가득했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책장 대신 바닥과 테이블, 심지어 침대 위까지 책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무질서해 보였지만, 그는 그 공간에서 완벽한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그 '혼돈'은 창조의 원천이자, 영감의 바다였습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공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존재를 담는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공간이 단순히 물리적 환경을 넘어, 우리의 내면과 가치관, 삶의 방식을 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화려한 색감과 다양한 소품으로 가득한 공간은 그 주인의 활기찬 에너지를, 절제된 색감과 심플한 구조의 공간은 그 주인의 차분한 내면을 반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집 안의 작은 변화 하나도 단순한 인테리어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새 쿠션을 놓는 것, 벽 색을 바꾸는 것, 작은' 식물 하나를 들이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은 나의 내면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간을 바꾸어가는 자기표현의 방식입니다.


나만의 균형점 찾기

추구미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겪는 고민이 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뭘까?" 하는 질문입니다. 유행을 쫓다 보면 자신의 진짜 취향을 알기 어려워지고, SNS에 넘쳐나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패션 이미지들 사이에서 헷갈리기 쉽습니다.


스웨덴에 살던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는 '라곰(Lagom)'이라는 개념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적당히, 균형 있게'라는 뜻의 이 단어는 스웨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나타냅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딱 좋은'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죠.


추구미에도 이런 균형점이 필요합니다. 지나치게 화려한 스타일을 고집하다 보면 불필요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고, 너무 절제된 미적 감각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삶의 즐거움을 놓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답게' 사는 것, 그 속에서 진정한 만족감을 찾는 것입니다.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곳에서 발견된다"고 했습니다. 억지로 자신을 꾸미거나 보여주기 위한 추구미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선택들이 만드는 아름다움. 그것이야말로 진짜 추구미의 모습일 것입니다.


내가 만드는 작은 예술, 일상의 큐레이션

어느 아티스트의 말이 떠오릅니다. "예술은 미술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살아 숨 쉰다." 추구미는 바로 그런 일상 속 작은 예술과 같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 마시는 차, 꾸미는 공간, 듣는 음악까지. 모든 선택이 나만의 미적 감각을 통해 걸러지고 재배열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큐레이션하는 '큐레이터'와 같습니다. 무한한 선택지 속에서 '나다움'을 기준으로 선별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매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나는 왜 이 색을 좋아할까?" "왜 이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왜 이 공간에서는 창의력이 솟아날까?"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취향을 넘어, 내면의 풍경을 탐색하는 여정이 됩니다.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은 곧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다양성이 꽃피는 풍경

추구미가 가진 가장 큰 아름다움은 다양성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것을 좋아한다면 얼마나 단조로운 세상이 될까요? 서로 다른 색과 형태, 향기와 질감이 어우러질 때 세상은 훨씬 풍요롭고 아름다워집니다.


오랜 친구 두 명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명은 화려한 색감과 패턴을 좋아하고, 다른 한 명은 모노톤의 심플한 느낌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그 다름이 서로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서로의 공간을 방문하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때로는 그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죠.


추구미는 타인과의 소통과 교류 속에서 더욱 풍성해집니다. 나와 다른 미적 감각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세계를 엿보는 것은 나의 시야를 넓히는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는 더욱 창의적이고 열린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추구미는 정체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변화합니다. 열 살 때의 내가 좋아하던 것과 서른 살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르고, 그것은 또 오십 살의 내가 선택하는 것과도 다를 것입니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의 미적 감각도 함께 성장하고 깊어집니다.


그렇기에 추구미는 여정이지 목적지가 아닙니다. 완벽한 '나다움'을 찾았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여정을 즐기고, 변화하는 자신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저는 종종 몇 년 전의 사진을 보며 미소 짓곤 합니다. 당시에는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던 옷, 너무나 좋아했던 인테리어 스타일이 지금 보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성장의 흔적입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모두 진실된 '나'였으니까요.


추구미, 그 너머의 의미

결국 추구미는 단순히 멋을 부리거나 유행을 좇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사랑하는 과정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발견해나가는 여정이죠.

어느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선택한 것들이 모여 우리가 된다"면, 추구미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작은 선택들의 연속입니다. 그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일상을 채우고, 결국에는 우리 삶의 모양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 작은 선택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추구미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요?


당신만의 추구미는 어떤 모습인가요? 당신이 찾아가는 그 아름다움의 여정에 작은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빅블러-모든 것이 뒤섞인 세상에서 나를 찾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