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대형 서점에 들렀습니다. 서가 사이를 거닐며 책을 찾으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쪽에서는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작가의 강연이 한창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러 온 사람들 옆에는 노트북을 펼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자리했고, 아이들은 작은 체험 공간에서 놀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은 서점인가, 카페인가, 아니면 문화공간인가?'
정답은 모두 맞습니다. 그리고 어느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빅블러(Big Blur)'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익숙한 풍경들이 점점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친구와 대화하고, 다른 이는 노트북으로 재택근무 중이며, 또 다른 이는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거래하고 있습니다. 한 공간 안에서 여가와 일, 소비와 투자가 모두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헬스장에서 만난 친구는 러닝머신 위에서 이어폰을 꽂고 있었습니다. 무슨 음악을 듣냐고 물었더니, "음악 아니야, 영어 강의 듣는 중이야"라고 대답했습니다. 운동하면서 공부를 하고, 쉬는 시간에는 SNS에 오늘의 운동 기록을 올립니다. 헬스장은 더 이상 단순한 운동 공간이 아닙니다.
이처럼 빅블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디지털과 현실의 경계, 일과 여가의 경계, 소비와 경험의 경계까지. 마치 수채화에 물을 뿌려 색들이 번지듯,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서서히 섞여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쇼핑이라는 행위가 단순했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 그것이 전부였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한 의류 매장에 들어가면 옷만 파는 것이 아니라, 입구에서는 시그니처 향수 향이 당신을 맞이하고, 한쪽에서는 브랜드의 철학을 담은 영상이 재생되며, 매장 한켠에 마련된 카페에서는 이 브랜드만의 특별한 차를 맛볼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단순히 옷을 사러 온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의 '세계관'을 경험하러 온 것입니다.
발터 벤야민은 "경험은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고 확장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빅블러 시대의 소비자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가치를 구매합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단순한 카페인 섭취가 아니라, 그 원두의 산지와 로스팅 과정, 그리고 그 카페의 분위기를 함께 소비하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경험을 '공유'하는 데 더 가치를 둡니다. 이것이 빅블러가 가져온 소비문화의 변화입니다.
"요즘 뭐하세요?"라는 질문에 한 문장으로 대답하기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제 지인 중 한 명은 평일에는 회사원으로 일하지만, 주말에는 인기 있는 맛집 블로거입니다. 그가 올린 리뷰를 보고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늘자, 몇몇 식당은 그에게 메뉴 컨설팅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자신만의 레시피 책을 온라인으로 출간했다고 합니다.
그는 회사원인가요, 블로거인가요, 컨설턴트인가요, 아니면 작가인가요? 모든 답이 맞습니다. 그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니까요.
질 들뢰즈의 '유동적 정체성' 개념이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그는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구성된다"고 말했는데, 빅블러 시대를 사는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직업이나 역할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 안에 여러 정체성이 공존하고, 때로는 충돌하고, 또 때로는 조화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오래전 어느 파티에서의 일입니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낮에는 은행원이고, 저녁에는 재즈 피아니스트예요. 주말에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요."
그때는 독특하게 느껴졌던 이 대답이, 지금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빅블러 시대에 우리는 더 이상 하나의 관점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다중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새로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자신을 찾으려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조언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모든 경계가 흐려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결국 나를 정의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의 선택과 가치관이니까요.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모든 역할과 경험 속에서,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빅블러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모든 것이 뒤섞이고 경계가 사라진 세상에서, 나만의 중심을 잡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어느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너무나 다양한 일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주 직장이 있지만 부업으로 세 가지 일을 더 하고 있었고, 여기에 취미 활동까지 더해져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물었습니다. "그 모든 일 중에서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너무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빅블러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경험과 역할 속에서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잊어버리는 것. 다양성이 오히려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계가 사라진 이 시대를 어떻게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첫째, 유연함을 갖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변하지 않는 '나'의 가치관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바다 위의 등대처럼, 어떤 파도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빛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 경계의 모호함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것을 창의적인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 서로 다른 역할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점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빅블러 시대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경계 사이의 빈 공간에서 혁신이 탄생하니까요.
셋째, 가끔은 의도적으로 '경계'를 만들어보세요. 모든 것이 섞이는 세상에서, 때로는 의식적으로 구분선을 그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일과 휴식의 시간을 명확히 구분하거나,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는 시간을 정하는 등의 작은 실천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지세요. "이 많은 경험과 역할 중에서, 정말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혼돈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빅블러 시대는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가능성이 숨겨져 있습니다.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질문의 본질로 돌아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가 아니라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직업이나 역할이 아닌, 그 너머에 있는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 빅블러 시대는 그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뒤섞인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나만의 중심을 찾아가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빅블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숙제이자 선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