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가게 된 베이비페어에서 나는 이미 만삭에 가까운 몸이었다. 사실 가까운 마트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육아용품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는데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그 현장을 택하고야 만 것이다. 별이가 쓸 물건을 하나하나 비교해보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물론 그곳은 전혀 그런 곳이 아니었고 도리어 충동적인 소비를 부추기도록 기획된 장소에 가까웠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말이다.
가긴 갔으나… 여전히 나도 아이 아빠도 뭘 몰랐다. 평소에도 쇼핑을 즐기지 않는 사람 둘이었기에 무엇부터 봐야 하는지, 무엇을 사야 하는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던 거다. 이미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몸이었지만 내게는 현장을 몇 바퀴 돌더라도 이것저것 보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 있었고 아이 아빠는 만사가 귀찮던 중이었다. 임산부들과 임산부들의 남편과 또 어린아이들과 유모차가 있었다.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결국 부스 배치도에 나온 카테고리 위주로 돌아보기로 했다.
부스를 돌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이 조그만 아이 물건이 뭐 이렇게 비싸담,이었다. 두 번째로 많이 한 생각은 이렇게나 많은 것이 정말 다 필요하다고? 물건을 들었다가 가격을 보고 스마트폰을 들어 같은 상품명을 검색하여 최저가를 살펴보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이곳에 온 목적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지쳤다. 휴식 공간은 펜스 몇 개를 쳐 놓고 가운데에 커피머신 여러 개를 들여놓은 이른바 ‘카페’라는 곳뿐이었는데 이미 나처럼 지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 앉을 자리가 도통 없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적어도 임산부나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나 배려가 있을 줄로 착각했다. 인간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대부분 아내나 엄마나 딸을 따라왔다가 몇 시간이고 자리를 독점하고 앉아 쇼핑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커피나 간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 자리 자체가 중요한 사람들이었으므로 다리가 퉁퉁 부은 임산부는 가볍게 외면당했다. 부스 옆에 간이로 상품을 적재하도록 만든, 그러나 당시에는 비어있었던 네모난 평상 같은 곳에 엉덩이를 걸치고 아주 조금만 쉴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여기까지 온 정성과 본전 생각에 억울함까지 보태지자 절대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구석 부스에서 조악한 무늬를 프린트하여 파는 저렴한 아기 내복을 골랐고, 사실 아기보다는 어린이 내복에 가까웠으나 참지 못하고 샀다. 다음에는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에서 유모차 라이너라는 것을 샀다.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는 대체로 저렴하다는 게 이곳의 룰이었다. 가까운 미래에 유모차 라이너는 제대로 접히지 않아 보관조차 어려운 흉물이 되어 결국은 버림받는 운명을 맞는다. 다음 순서는, 대망의 ‘국민 육아템’ 부스였다. 엄마 뱃속에서 갓 나온 신생아의 부드러운 살결은 아무 손수건으로나 건드릴 수 없다. 대나무로 만들어 극도의 부드러움을 자랑하는 바로 그 손수건으로 닦아주어야 좋다는 것이 엄마들의 생각이었다. 손수건 치고는 비쌌으나 다른 육아용품에 댈 것이 아니었다. 입장하기도 전에 구매 의사를 굳혔다. 손바닥으로 쓸어보니 과연 내가 이제까지 만졌던 그 어떤 직물보다도 부드러웠다. 나는 대나무 손수건과 면 엠보싱 손수건, 그리고 천 기저귀가 세트로 묶여있는 상품을 샀다. 행복이니 사랑이니 하는 기대와 희망에 가득 찬 타이틀이 세트 이름으로 붙어 있었다. 내가 산 것이 행복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별이를 만나게 됨으로써 나는 그걸 얻었고, 이외에도 갖가지 노동과 고난을 얻었으나 그걸 세트 이름으로 붙이는 회사는 없었다.
아주 부드럽고 깃털처럼 가벼웠기에 그 손수건은 쉽게 낡아졌다. 별이가 쓰는 물건은 얼룩이 묻는 대로 삶아지곤 했는데 그 예민한 부지런을 견디기에 너무나 섬세한 손수건이었던 거다. 별이가 맘마를 먹다가 흘리는 액체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목에 차는 수건으로 활용한 것들은 네모반듯하던 각이 사라지고 점점 볼품없어져 버렸다. 천 기저귀는 -사실 처음부터 천 기저귀를 사용할 용기도 없었지만- 다른 엄마들의 팁대로 아이의 목욕 수건으로 사용했다. 쭉 펼치면 아이의 몸이 쏙 들어갈 정도로 컸다. 갓 목욕을 마친 별이를 수건으로 폭 싸서 안으면 아기 비누 냄새가 잔잔하게 나서 좋았다. 목욕 직후는 별이가 가장 기분이 좋을 때라 아이는 수건 품에서 곧잘 웃었다. 기저귀를 뗄 무렵 즈음 천 기저귀도 처음의 모습이 간데없이 사라지고, 몹시 거칠어 어른 수건으로 써도 될 정도의 퀄리티가 되어 버린다. 당시 나는 수건을 구분하여 쓸 정도의 정성을 쏟기엔 이미 여러모로 지쳐 있어 아무 수건이나 꺼내 별이를 쓱쓱 닦기 시작했는데, 아이 발을 어른 수건에 닦아 길게 타박받은 별이 할머니께 부끄러워지는 변화였다. 별이를 닦이고 씻기던 수건들은 용도로 치면 언제라도 바로 처분해야 할 것들이었다. 부드럽고 섬세해서 좋았던 직물들은 이미 여러 번의 세탁을 거쳐 일반 수건보다 거칠어진 상태였고 별이 전용으로 쓰려던 본래 용도를 잃은 지 오래. 따로 구분하여 삶던 영겁 같던 시간도 지난 지 오래.
베이비페어에서 오랜 시간을 걷고 서 있었던 탓에 나는 첫 번째 조산 위기를 겪었었다. 피가 비쳐 달려간 응급실에서 당직의는 출산도 가능한 진통인데 어떻게 할 건지 정해서 알려달라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언젠가 출산의 과정을 겪어야 할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안개처럼 뿌옇게 미래의 일로만 남아있었을 뿐. 사방에서 산모들의 비명이 들리는 출산 대기실의 침대에 누워 나는 덜덜 떨고 있었다. 베이비페어에 가지 말걸. 아기 내복이나 수건이야 그냥 인터넷으로 사면 되는 것을 괜히 거기에 가서…. 그러나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나는 언젠가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유리 같은 신생아를 품에 안아야 했다. 두 번째 조산 위기에 결국 별이를 만나게 됐는데, 그때도 왜일까. 무언가를 사도 안 사도, 쉬어도 쉬지 못해도, 서운함과 우울함이 울컥울컥 올라와 견딜 수가 없었던 날이 생각났다. 베이비페어에서 돌아오는 길 택시 안에서 나는 숨죽여 울고 있었고 아이 아빠는 아무런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가 닿지 않을 말들을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르게 했다.
세상에는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할 너무 많은 것들이 있는가 보다.
그런데 내가 과연 이걸 다 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도움이 필요한데, 어른들이 날 금전적으로 돕지 않는 것이 서운하다.
그러나 다름 아닌 내가 어른이었으므로 울음을 삼켜야 했던 일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이제는 연차 쌓인 아이 엄마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씩씩해져서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을 끊임없이 세뇌하는 자들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고 자신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는데. 그걸 잊게끔 만드는 자들을 정확히 응시하고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며 살게 된다. 평소라면 어차피 버릴 천 조각들이니 베란다나 창틀의 먼지를 한번 쓱 닦아내고 버리는 것으로 했을 터다. 하지만 별이의 천 조각들을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새 종량제 봉투를 꺼내어 손수건과 목욕 수건과 각종 아이와 관련된 직물들을 쏟아 넣으며 어차피 버릴 것들을 이렇게 ‘포장’씩이나 하는 이유가 뭘까 싶어 졌다. 곧 답을 찾았다. 소중한 사람을 씻기고 닦아 준 고마움 앞에서는 행동 하나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수년 전 베이비페어에서 느꼈던 그 미묘한 열패감과 깊은 피로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너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나의 마음이란 것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었구나. 즐비한 광고 문구들 사이에서 나는 정작 소중한 걸 놓칠 뻔했구나. 잘 가렴. 별이의 성장을 도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