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별이는 벌거벗은 채 태어났다. 아이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신생아용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하루를 꼬박 홀로 있었다. 강아지인형만 한 별이가 속싸개에 잔뜩 압박된 채 인도되었을 때는 내가 출산의 고통에서 해방된 지 하루가 지나있었다. 그동안 차가운 바깥 공기로부터 별이를 지켜주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흰 배냇저고리와 신생아용 기저귀, 그리고 산부인과 마크가 새겨진 속싸개였다.
미리 마련해 둔 새 배냇저고리는 신생아실로 들여 보낼 수 없었다. 귀여운 무늬가 그려진 속싸개와 금세 입게 될 유기농 내복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돌아와서야 별이는 새 배냇저고리를 입었다. 저고리를 아기침대 위에 펼치고 그 위에 인형 같은 신생아를 눕혀놓은 다음 행여나 부러질까 조심조심 소매에 팔을 넣었다. 배냇저고리는 끈으로 여미게 되어 있었는데 뒤척일 때마다 훌훌 풀어져 우습고도 귀여운 모습이 되어 있었다. 몸에 비해 지나치게 긴 소매 덕에 탈춤 추는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여름에는 반팔 바디수트를 색깔별로 입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별이가 바디수트를 입고 있으면 꼭 천으로 포장된 소시지 같았다. 별이는 옅은 푸른색이 잘 어울렸다. 물론 다른 옷을 입는다고 해서 그 귀여움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별이는 자주 토했다. 한번은 아이아빠의 야간근무로 밤새 홀로 신생아를 보고 있었는데 잘 놀던 아기가 말로만 듣던 분수 토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토를 쏟아내고 그다음에서야 울기 시작했는데, 작은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고 믿기 힘든 잔해들을 급히 치우려다가 아이의 귀에 토사물이 들어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제 수건을 말아쥐고 아이를 닦아주며 같이 울었다. 다행히 별이는 금세 진정되었지만 아이 내복에는 커다란 얼룩이 남았다. 여러 번 세탁해도 사라지지 않는 그 밤의 흔적이었다.
옷 세탁은 매일매일 계속됐다. 큰 냄비를 사서 천연세제를 넣고 푹푹 삶거나 세탁기 삶음 기능을 썼다. 90도가 넘는 물을 들이붓는 삶음 코스를 2시간 정도 돌리고 나면 아이의 옷은 깨끗해지다 못 해 터지고 낡아져 나왔다. 그러나 옷에서 은은한 아기 비누 냄새가 났으므로 아무래도 괜찮았다. 비누 냄새는 별이에게 입혀도 죄책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깨끗한 안정감이었다. 치수에 맞는 옷을 계속 돌려 입히려다 보니 가랑이가 하늘하늘 해져 있는 내복 바지를 옷장에서 꺼내야 할 때도 있었다. 별이 할머니는 “아기도 사람이라고 가랑이가 해지네.” 하며 웃으셨다.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아이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엄마는 그나마 신경 써서 어울리는 옷을 입혔고, 아빠는 이상한 패션 감각을 발휘하여 입혔다. 할머니의 선택은 무조건 계절적 특성에 기반한다. 그래서 누가 옷을 입히냐에 따라 별이는 휙휙 달라진다. 세트 내복의 상·하의가 맞지 않아 엉뚱한 무늬가 될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챙이 다 망가진 모자(역시 삶아서 이렇게 되었다)에 복슬복슬한 양말을 무릎까지 올려 신었다. 아기는 열이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며 조악한 풍뎅이 모양의 7부 내복을 입힌 다음 두꺼운 바디수트를 덧입혀 외출하기도 했다. 곰돌이를 연상케 하는 복슬복슬한 플리스는 모두가 사랑하는 옷이었다. 백곰처럼 새하얀 후드점퍼는 모자를 씌우면 곰돌이 귀가 뿅 나오는 귀여운 옷이었다. 가족들은 별이에게 예쁜 옷, 귀여운 옷을 찾아 입히고 싶어했다. 별이는 좋다 싫다 말이 없었지만.
계절을 돌아 아기장에 깨끗하게 보관해놓은 옷을 입혔다. 소매에 팔뚝이 꼭 끼는 느낌이 들더니, 뛰어노는 아이의 배꼽이 덜렁 나오기까지 한다. 그런 옷이 여러 벌이어도 함부로 옷장을 정리할 수 없었던 이유는 갓 태어난 아이가 피부처럼 입었던 옷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쓰레기통이나 폐옷수거함으로 보내면 수월할 것이지만 마치 은인을 버리는 느낌이라 내키지 않았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예의를 다 하고 싶었다. 벌거벗고 태어난 별이가 따뜻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함께 해 준 것에 대한 예의. 그래서 이들을 잘 보내주기 위해 글을 쓴다. 깨끗한 옷들을 골라낸 후, 돌 전 아기 옷을 기부받는 곳을 찾아보았다. 세탁하고 잘 개어서 종이백에 차곡차곡 넣고, 그 종이백들을 모아 큰 박스에 포장했다.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별이와 함께 해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