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벽면을 모두 유리창으로 만들어 놓은 신생아실 옆에 수유실이 붙어 있었다. 문에는 ‘산모 외 출입금지’라는 사인과 인터폰이 붙어 있었던, 절대 내부를 확인할 수 없는 닫힌 장소였다. 신생아실 유리창에는 사람들이 이마를 붙이고 아기들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매일 저런 미소와 마주할 텐데도 간호사들의 표정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그들이 주기적으로 신생아 바구니를 밀고 이동하는 곳, 그곳이 수유실이었다.
수유실 앞에서 벨을 누르고 산모 등록번호를 말한 뒤 인터폰 카메라로 손목밴드에 적힌 번호를 함께 보여주어야 수유실에 입장할 수 있었다.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면 신생아실 간호사가 신생아 바구니를 돌돌 밀며 나왔는데 손목밴드에 적힌 산모등록번호와 바구니 번호를 맞추어 보는 것이 다음 절차였다. 내가 별이를 낳은 바로 그 사람임을 거듭 확인하고 나서야 아기가 인도됐다. 까다로운 절차가 번거롭지 않았던 이유는 철저한 확인 과정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출생 후 인큐베이터로 옮겨진 별이가 엄마도 모를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동안 나는 아이를 낳은 것이 마치 꿈속 일인 것만 같아 멍하고 피곤하게 늘어져 있었다. 졸렸다. 이 몽롱함은 산모 번호를 말하고 신생아 바구니 번호를 확인할 때에서야, 태명을 부르면 조용히 반응하는 너무나 작은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에서야 사라졌다. 이후에는 초보 엄마의 힘겨운 수유 시간이 이어졌다. 현실이었다. 간호사는 친절하고 기계적으로 젖 물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교육기회는 단 한 번 뿐이었다.
엄마야 수유실 속성 코스로 수유를 배웠다지만 별이는 어떻게 이걸 알고 젖을 먹었던 걸까. 몰아치듯 배웠던 수유 방법 중 기억에 남는 하나는 입으로 초유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신생아가 스스로 젖을 물게 된다는 것이다. 생존 본능과 반사 행동. 교과서에서나 보던 단어가 현실로 들어왔다. 출산 후 정확히 3일이 지나면서 돌아눕지도 못할 정도의 젖몸살을 앓았고 조리원 전문가들과 유축기의 도움으로 수유에 차츰 익숙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부터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산후우울증으로 삽시간에 젖이 말랐다. 별이는 자연스럽게 분유를 먹기 시작했다.
아기들이 특정 분유에 익숙해지면 이유식이 시작될 때까지 그것만 먹게 된다는 것을 육아를 시작하고 알게 됐다. 분유는 아기들의 식사다. 어른들이 취향껏 음료를 바꿔 먹는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 분유를 바꾸려면 긴 적응 기간이 필요하며 잘못했다간 토하거나 설사하는 등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산모 교실이나 행사에서 자사 분유를 나누어 주고, 조리원에서도 비싼 분유 캔을 퇴소 선물로 척척 주었던 것은 선의의 무료 나눔이 아니었다. 한번 먹이기 시작한 분유 브랜드에 1년 가까이 충성 고객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으니까.
빨기 반사 덕에 젖병을 물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유식을 시작하며 있었다. 숟가락을 입안으로 넣어 먹는다는 걸 별이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유식을 시작하면 아기 입속에 음식 찌꺼기가 남아서 물로 입안을 한 번씩 씻어줘야 했다. 숟가락으로 떠먹이는 것으로는 모자라 빨대컵을 물게 했는데 여기서 또 한 번의 난관을 만나게 된다. 아기는 엄마 젖꼭지 모양의 젖병을 무는 것은 잘했어도 막대 모양의 빨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랐던 거다. 스파우트 컵, 연습용 빨대컵을 거쳐 드디어 별이가 물 마시는 법을 터득한 순간 엄마는 환호했다. 시험 합격만큼이나 큰 기쁨이었다.
아이가 액체와 이별하고 고체를 섭취하게 된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별이를 도와준 젖병들, 작은 숟가락과 빨대컵 손잡이를 보내주었다. 돌고래 그림이 그려진 빨대컵 본체는 몇 번이고 잃어버렸다 찾았다 반복하다 결국 여의도 어느 쇼핑몰의 푸드 코트에서 분실하고 말았다. 이후로 별이도 엄마도 돌고래를 다시 찾지 않았다. 필요가 사라진 것들은 이렇게 사라지고 잊히기 마련일 테지. 아니, 자기 사명을 다한 것이라고 고쳐 말하자. 아기에게 먹는 방법과 먹는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언제 어디서든 목을 축이게 해 준 고마운 친구들에게 더 맞는 표현이다.
세상을 처음 겪는 아기가 배워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란 걸 지켜보면서 나 또한 그렇게 자라온 존재임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이들에게 이미 주어진 것은 몇 가지 반사 행동들과 엄마라는 한 사람. 아기들은 잘 살아가는 법을 아주 천천히 배워 간다. 아기들의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덧붙임)
출산하고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아이 아빠 대신 내 곁을 지켜 준 것은 나의 엄마, 별이 할머니였다. 신생아가 깼다며 산모를 내려보내 달라는 수유실 전화가 왔을 때, 엄마는 간호사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지금 애가 자는데, 좀 이따 보내도 될까요?”
간호사는 당황하여 망설이다가 그러시라며 전화를 끊었고, 이후 수유실에 간 내게 그녀는 아까 전화받으셨던 분이 친정엄마냐고 물었다. 그녀와 나, 그리고 엄마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힘겹게 잠이 든 ‘애’를 차마 깨울 수 없는 엄마 마음 같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