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얼굴에서 행복을 본 날을 기억해

정든 것들과 이별하기 - 비움의 기록 - 별이의 아기 욕조를 보내주다

by 선작



© lubomirkin, 출처 Unsplash



조리원에서 나오는 주, 나를 포함한 총 4명의 산모에게 퇴소 교육시간이 있었다. ‘모유 선생님’은 젖량 늘리는 방법 및 분유 타는 법을, ‘신생아 실장 선생님’은 목욕시키는 법을,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해 온 사람들 특유의 표정과 속도로 알려주었다. 어떤 산모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는 듯 반쯤 기대앉은 자세로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고 어떤 산모는 아직 온전치 못한 몸으로 의자에 앉아있느라 불편한 기색이다. 또 어떤 산모는 잔뜩 얼어서 수업 내용을 종이에 빼곡하게 메모하고 있다. 뭐 하나 할 줄 아는 것 없이 아이와 단둘이 세상에 던져질 시간이 너무나 두려웠던 그 산모는 바로 나였다. 신생아 코딱지를 빼주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묻자, 신생아 실장 선생님은 작은 면봉을 넣어서 번데기 빼듯 하면 된다고 답했다. 번데기를 빼 본 적이 없었으므로 손짓을 보며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안 돼요. 중이염이 생길 수 있어요. 머리 감길 때는 이렇게 두 손으로 귀를 딱 막고 해야 해요.”




목욕을 시킬 때마다 별이의 작은 머리를 뒤쪽에서 부여잡는 방식으로 두 귀를 막았다. 아기들의 중이염은 청각 발달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까지 듣자, 머리를 감기는 엄마 손은 매번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사람들과 육아 정보를 나누는 단톡 방이 있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육아 불안도가 얼마나 심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무지로 아기가 다치거나 상할까 봐 늘 불안했던 나날이다.





신생아에게도 땀 냄새가 났다. 아이 엄마들은 이 냄새에 ‘콤콤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꼭 쥔 주먹을 엄마 손으로 펴 보면 그 안에 먼지와 아기 땀이 들어있다. 작은 손바닥에 집게손가락을 대면 별이는 늘 힘껏 잡아 주었는데 이 평범한 반사작용이 마치 ‘당신에게 의지합니다’라는 메시지 같아 괜히 숙연해지곤 했다. 별이의 작은 양말은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지를 정도로 귀여움 그 자체였고, 그 안에 폭 싸여 있던 아가 발에서는 엄마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 냄새가 났다. 모든 이들의 몸 냄새가 별이 같다면 향수나 보디클렌저도 필요 없을 텐데.




별이는 조금씩 목욕을 즐기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날, 적당히 따스한 목욕물을 받아 아기를 씻기며 별이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사람의 표정’을 보았다. 눈은 동그래지고 입꼬리가 올라가 아주 만족스러운 상태임을 누구라도 알 수 있게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지금도 별이는 목욕을 하고 나오면 기분이 좋아서 벌거벗은 채 온 거실을 뛰어다니고 엄마를 와락 안거나 뽀뽀한다) 누구에게나 근원은 그립고 포근한 것일까. 아기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꼭 쥔 주먹을 사르르 풀어주는 따스한 물. 육아 단톡 방의 동료들은 아기용 수영장을 사서 몇 리터씩 물을 채우고 목 튜브를 끼워 놀게 한다고 했다. 나는 화장실이 비좁은 집에 살고 있었으므로 엄두를 내지 못했고, 아무리 지워도 다시 생기는 분홍색 곰팡이가 낀 어른 욕조에서 별이를 놀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기 전용 수영장이나 프라이빗 풀장이 딸린 멋진 호텔에서 아기들에게 물놀이를 시키는 사진들도 자주 공유됐다. 나는 그런 곳에 갈 여유도 용기도 없었다. 바깥세상은 거대한 감염원이었기에 그 속에 별이를 데리고 나간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잠시 마트에 다녀오더라도 병균을 잔뜩 묻혀 온 것만 같아 곧장 샤워하고 입었던 옷을 모조리 세탁하던 나였다. 경제적 여유도 정서적 여유도 없던 엄마 때문에 별이가 물속에 푹 잠겨 고요한 근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루에 한 번, 목욕시간뿐이었다. 아이 표정에 떠오르는 지극한 행복의 증거가 나를 더 행복하게 했다. 더 큰 집에서 멋진 아기 수영장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며, 아이에게 더 주지 못해 미안한 그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 sunjak



별이가 조용히 물에 잠겨 행복해하던 아기 욕조를 보내주었다. 이 욕조에는 사연이 있다. 세수 욕조 두 개를 번갈아 쓰던 신생아의 몸이 날로 자라자, ‘아기 욕조’라는 이름을 달고 정식으로 판매되는 여러 물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기 욕조는 중고로 구하는 것이 더 좋다는 조언을 듣게 된다. (그리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나) 지역 카페의 중고 판매 글을 뒤져 판매자에게 연락했고, 까칠하게 응답하는 상대에게 기가 죽어 조용히 돈을 내고 욕조를 받아왔다. 깨끗하게 씻어 쓰려고 비눗물에 담가놓았는데, 이럴 수가. 욕조에서 오래된 물때가 계속 나오는 게 아닌가. 원인을 찾으려고 바닥 부속품을 떼어보니 그 안이 엉망이었다. 마지막으로 쓰고 제대로 씻거나 말리지 않은 채 그냥 창고에 박아 두다가 우리 집으로 온 물건 같았다. 팔리면 말고 아니면 버리고 하는 마음으로 올린 물건을 내가 사 왔던 걸까. 거래할 때부터 속상했던 마음이 터져 나와 눈물이 흘렀다. 바락바락 악을 쓰며 항의하겠다는 나를 아이 아빠가 말렸고 중고 욕조는 재활용 처리장으로 직행했다. 결국 별이의 욕조는 같은 브랜드의 새 물건으로 다시 마련했다. 어떤 집 아기가 쓰게 될 물건일 텐데 적어도 쓸 수 있는 물건을 놓는 것이 중고 거래 상도덕이 아닌가 생각했다. 안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 매년 갱신되는데도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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