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왼쪽 목 부근에 딱딱한 멍울을 발견한 것은 생후 보름쯤 지나서였다. 우리는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놓을 때 불편한 느낌이 든다 싶은 게 시작이었고 이후 목 부근에 뭔가 만져지는 걸 찾았다. 원래 갓 태어난 아기는 이런 거냐고 묻자 신생아 실장, 조리원 원장, 연계 소아과 의사가 연달아 나를 찾아왔다. 이게 흔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비음 섞인 호칭 ‘산모님’으로 나를 부르던 사람들이 미묘하게 싸늘해졌다. 원래 이렇게 태어난 아이일 뿐 자신들 잘못이 아니라는 걸, 그들은 온몸으로 전해왔다.
심지어 조리원과 연계된 소아과 의사는 멍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기가 찼다. 별이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란 걸 직감했다. 시큰거리는 손목을 무시하고 매일 인터넷을 검색했다. 몹시 외로워졌고 아주 다급했다. 거듭되는 검색을 통해 ‘사경’이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여러 이유로 생긴 멍울 때문에 머리가 한쪽으로 기우는 증상인데 물리치료로 좋아질 수 있다는 것, 적시에 치료하지 않으면 안면 발달에 문제가 생기고 심한 경우 큰 수술로 이어진다는 것까지 알아냈다. 사경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유명한 병원 이름과 치료에 필요한 기간, 방법 등을 꼼꼼하게 읽었다. 아는 게 생길수록 두려웠다. 임신 말기, 별이는 왜 항상 한편으로 치우쳐서 태동할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혹시 멍울이 태아 자세 때문에 생긴 거라면 미리 알고 대처할 방법은 없었던 걸까.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처음이라 알 수 없었다. 몰랐던 것도 내 탓이라 생각했다.
생후 50일이 지나자마자 별이를 대학병원으로 데려갔다. 멀지 않은 거리에 소아 물리치료를 하는 대학병원이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이 아빠는 인터넷으로 찾은 정보가 뭐 그리 유용하겠냐 반신반의하며 동행했다. 그는 병원에서 별일 아니라는 확답이 들어야 내가 더는 앓는 소리를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별이를 살펴본 교수는 무뚝뚝한 한 마디로 진단 내렸다.
“사경이네요. 물리치료해야겠네.”
앉지도 못 하는 아이를 대학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을 나와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보다 물리치료하는 시간이 더 짧았는데, 내심 아쉬웠지만 욕심낼 일이 아니다. 왕복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별이를 병원 침대 위에 오래 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집에 돌아와서는 입고 간 별이 옷을 모두 벗겨 세탁했다. 치료 한 번만 다녀와도 하루가 녹아내리듯 다 사라졌다. 차를 몰 수 없을 때에는 별이를 아기띠에 꽁꽁 묶어 안고 택시를 탔다. 병원 복도와 엘리베이터는 늘 사람들로 북적여서 엄마 몸에 아기를 밀착시켜 대롱대롱 달고 다니는 것이 제일 나은 수였다. 이렇게 작은 아기는 오랜만에 본다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아기를 왜 병원에 데리고 오냐는 무언의 질타처럼 느껴져 내 얼굴은 자주 일그러졌다. 엄마의 어두운 마음과는 별개로 별이는 신나게 세상 구경을 했다. 택시 라디오에서 나오는 트로트 음악에 별이가 발을 꼼지락거리면 알 수 없는 리듬이 엄마 몸으로 전해졌다. 뱃속에 별이를 품던 시절이 떠올랐다. 체온이 그대로 전해지는 상태가 무척 좋았다. 별이는 울다가도 엄마 심장 소리가 가까이 들리면 금세 진정했다. 따뜻함에 노곤해졌는지 잠도 잘 들었다.
거의 집에만 있어야 할 시기에 별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의사, 물리치료사, 실습대학생들. 수많은 환자들, 보호자들. 몇 년 간 물리치료받고 있는 아기들, 먼 곳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온 아기들, 그 엄마 아빠들... 이름 모를 그들과 별이와 엄마는 눈빛으로 서로를 응원했다. 다음 주에는 모든 아기들이 더 좋아져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아기띠에 익숙해지자 불안증을 조금 덜게 된 엄마는 곧잘 동네 나들이를 나가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아름다운 산책로와 화려한 꽃잎들을, 엄마는 마치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씩 별이에게 설명해줬다. 엄마는 세상에 나무와 꽃이 왜 존재하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아기띠 옆주머니에 위태하게 들어있던 휴대폰은 별이가 꼬물거리는 풀벌레에 집중할 때마다 급히 소환됐다. 우주를 본 듯한 아기의 눈빛을 남겨두고 싶었지만 카메라는 그 경이로움을 미처 담지 못했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늦봄에 시작된 물리치료는 여름과 가을이 지나 다시 찬 바람이 불 때까지 계속됐다.
물리치료가 일상이 되자, 이제는 사경이라는 단어가 그저 자음 모음으로 만들어진 글씨로만 보이기 시작했다. 질책하고 벌주는 것처럼 보였던 그것이 사라지니 더는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게 됐고 병원에 다녀온 별이 옷을 푹푹 삶아 세탁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후로는 별이를 믿었다. 고개와 허리에 힘이 생기자 별이는 차츰 목을 똑바로 들기 시작했다. 무뚝뚝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치료 종료 소견’을 들었을 때, 눈물을 펑펑 쏟는 엄마 모습을 자주 상상해왔건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감사 인사를 하고 아기띠에 별이를 안아 밖으로 나왔을 때 대기실에는 처음 치료를 시작할 때의 별이만 한 아기들이 두 어명 있었다. 별이 할머니는 그 아기의 엄마와 어느새 말을 트고 우리 아기도 눈에 띄게 좋아졌으니 너무 걱정 마시라며 선배답게 조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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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센터나 나들이 나갈 때도 늘 동행했던 아기띠지만 아무래도 이 친구는 병원 출입문이 열릴 때 나던 냄새와 택시 속 공기와 가장 추억이 깊다. 지칠 때 병원 입구 쪽 의자에 아기를 매달고 앉아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던 엄마와 그런 엄마를 맑은 눈으로 바라보던 별이가 있었다. 버클을 당겨 폭 안으면 배시시 웃던 별이가 있었다. 여러 번 세탁해서 부스스 보풀이 일어났어도 별이는 이걸 좋아했다. 엄마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안기던 아기는 이제는 어른이 잡지 못할 정도로 재빠르게 뛰어다니는 어린이가 됐다. 어깨와 허리가 감당을 못해 더는 사용할 수 없는 아기띠를 어린 아기가 있는 집으로 보내주기로 한다. 서로의 심장 소리를 나누게 해 준 고마운 친구에게 작별인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