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맛있는 음식과 극도로 맛없는 음식. 내게 음식은 이렇게 양분됐다. 맛의 스펙트럼을 세밀하게 알지 못하는 터라 주로 자극이 강한 음식들에 끌리는 편이었다. 음식을 즐기지 못하면서도 열량을 넘치도록 채우는 것이 일상이었다. 임신하면 심한 입덧 또는 식욕을 얻게 된다는데, 이것이 태아 때문인 건지 임산부 본래 성향 때문인 건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내 경우에는 후자였다. 가벼운 입덧과 식욕으로 열 달을 보냈다. 한밤중에도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난다는데 그런 게 없었다. 음식에 심드렁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식사했고 자극적인 음식이 생각나면 먹었다. 며칠에 걸쳐 라면을 끓여 먹은 기억도 있다. 걱정이 많던 별이 할머니도 결국 포기하고 ‘엄마 먹고 싶은 게 애가 먹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태아가 라면을 좋아한다는 게 무척 재밌게 느껴졌다.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 별이 할머니는 밀가루로 만든 간식 종류를 부지런히 사다 날랐다. 몇십 년간 빵순이 생활을 유지하고 있던 나도 기꺼이 그것들을 입으로 털어 넣었으나, 밀가루가 모유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걸 몰랐을 때의 이야기다. 별이 할머니는 음식의 특성이나 요리에 별 관심이 없는 분이다. 그 덕에 정갈하게 차려진 반찬이나 주말의 특별요리와는 동떨어진 성장기를 보냈다. 마침내 나는 그분의 뒤를 이어 ‘끼니는 생존을 위한 것일 뿐’ 파가 되고 만다. 요리와 내가 상극이라는 전제를 두고 생활하니 뭔가를 만들고 먹는 행위가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삼시 세끼를 푸짐하게 먹고 자란 아이 아빠와 신혼 초부터 크고 작게 다툰 이유도 이게 컸으리라. 그런 내가 별이 이유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눈앞이 캄캄했다.
처음으로 쌀죽 이유식을 시도했다. 흰쌀을 갈아서 뜨거운 물에 넣고 오래 저어 끈끈한 액체 상태로 만들면 되는 손쉬운 요리(?)다. 갈지 않고 쓸 수 있는 쌀가루를 스틱 형태로 포장하고 ‘유기농’이라고 마크를 찍어 파는 상품도 많았다. 당연히 그걸 샀다. 한 포를 조심스럽게 뜯어 새로 산 이유식용 냄비에 생수와 함께 넣고는, 역시나 새로 산 이유식 주걱을 사용하여 살살 저으며 상태를 확인했다. 보글보글 거품과 함께 쌀가루가 묽게 풀어지자 불을 줄이고 조금 식혀 새로 산 이유식 용기에 옮겨 담았다. 이유식 용기에는 역시나 새로 산 눈금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첫 이유식에 적절하다는 용량을 정확하게 계량하기 위해서였다. 별이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쌀죽이 식자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거실로 향했다. 별이는 바운서에 앉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새로 산 아기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떠서 별이에게 주었다. 모든 것이 성스러운 의식 같았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음식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이후는 쌀죽에 재료를 하나씩 넣어가며 알레르기가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향이 달고 맛있는 이유식을 잘 먹는 것도 복이었지만, 그보다 놀라웠던 것은 별이가 오이나 브로콜리를 넣은 죽도 곧잘 먹었다는 것이다. (엄마도 잘 안 먹는 채소다) 별이는 세계를 음미하듯 여러 재료를 맛보고 삼켰다. 별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 남은 이유식은 보통 엄마 차지였는데, 내 기준 이유식은 ‘극도로 맛없는 음식’이었다. 추가되는 맛이 하나도 없는, 재료의 맛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그런 음식 말이다. 이런 걸 눈을 빛내며 먹었단 말이야? ...... 세상에. 고마워, 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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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령이 생기자 식재료를 한꺼번에 다듬어 얼려놓았다가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 쓰는 것으로 조리 방법을 바꾸었다. 매 끼니를 다듬고 갈고 만드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집과 멀리 떨어진 친환경 매장에서 식재료를 쓸어 담아오는 수고를 하면서 정작 다듬을 때를 놓쳐 푹푹 상하게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냉동고에 보관할 수 있는 큐브 용기를 잔뜩 샀었다. 묽은 죽 형태의 이유식이 진밥에서 볶음밥으로 바뀌고, 공들여 갈아야 했던 재료들을 통째로 먹게 되며 별이는 온전히 이유離乳했다. 이후로 큐브 용기는 부엌 찬장에 넣어 보관했는데 더는 우리 집에서 할 역할이 없을 것 같아 보내주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깨끗하게 씻으려고 꺼내니 무려 여덟 개나 된다. 용도별로 다양하게 마련했지만 결국 오래 써 보지 못하고 보내게 되는구나. 다른 집에 가서 아이가 잘 크게 도와주렴. 고마웠어.
아이는 먹는 만큼 키가 자랐고 몸무게가 늘었다. 준비한 음식에 따라 별이가 먹는 양이 다르고 기저귀 갈 때의 냄새도 다르다. 음식이 별이를 키우고 자라게 한다는 것, 아이가 먹은 음식이 아이를 구성한다는 진리를 그제야 알았다. 사람이 정성껏 준비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 그 사람의 몸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