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것들과 이별하기 - 비움의 기록 - 별이의 아기 의자들을 보내주다
내가 아기였을 때에는 엄마나 할머니 무릎에 앉힌 채로 밥을 먹였다 한다. 요새는 이유식 할 때부터 식습관을 형성해야 한다며 독립적으로 앉히는 방법을 사용하는 듯하다. 별이는 제힘으로 앉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유식을 시작했기에 초반에는 낮잠 재울 때나 놀이할 때 쓰던 바운서가 호출됐다. 육아에 정답은 없으므로 무엇을 하든 엄마와 아이에게 맞으면 그만이지만, 당시 나는 미숙하기 짝이 없는 초보 엄마였기에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육아에도 ‘정석’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었다. 수면 독립과 식사 독립이 유행하던 때였고 그래서 아이의 이유식은 알록달록한 바운서에서 시작됐다. 바운서 다음에는 범보 의자, 하이 체어 순서라고 했다. 별이의 발달에 발맞추어 하나씩 사들여야 하는 것들이었다. ‘해야 하는’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당시 내 심정이 그랬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있어야만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다. 육아용품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별이가 앉기를 시도했으나 허리 힘이 없어 휘청휘청 넘어질 무렵에는 범보 의자를 대여하여 (육아용품을 대여해주는 업체도 따로 있었다!) 밥을 먹였다. 엉덩이에 꼭 맞게 밀착되는 의자였는데 사용기한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기에 의자는 금세 작아졌다. 다음 순서는 하이 체어였지만 좁은 부엌에 큰 짐을 들이고 싶지 않아 며칠을 망설였다. 거실로 나가는 통로가 꽉 막힌다는 점, 이사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 모두 ‘안 되는 이유’였다. 결국 다시 눈이 아프게 검색을 시작했고 적당한 가격에 부피도 작은 휴대용 부스터 체어를 사게 된다. 별이 할머니는 뭔가를 사대는 내가 못마땅한 눈치였다. 이게 왜 필요한 거냐는 질문은 식습관을 잡아야 한다는 대답을 거쳐 대체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마무리됐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 아이에게 밥을 먹여야 할 때 일반 의자 위에 고정해서 쓰는 것이 휴대용 부스터의 본래 용도였으나, 그렇게 사용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너무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거실 바닥에 올려놓고 썼었는데 그 때문에 나도 거실 바닥에 별이를 마주 보고 앉아야 했다. 오랜 입식 생활에서 잠시 벗어났다. 아기 밥을 먹이다 힘들면 바닥에 드러눕기도 하고 그 높이에서 보이는 베란다 밖 풍경을 감상했다. 아이의 눈높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수직으로 솟은 건물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도 했다. 별이를 만난 이후 이전과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비단 비유적 표현만은 아니다.
아이는 앉는 방법을 천천히 익혔다. 처음에는 어찌나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던지 거북목으로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앉을 때는 허리와 목 힘을 함께 쓰며 균형을 잡아야 하는 거였다니, 별이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알았을까. 아이가 마음속으로 ‘이렇게 앉으니까 균형이 잡히네. 이 자세를 유지해볼까? 오! 진짜 되네?’ 하며 자신의 놀라운 습득 과정에 감탄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러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별이는 비스듬히 앉거나 쿠션이 기대어 앉는 방법, 심지어 쌓아놓은 인형에 의지해서 앉는 방법까지 차례로 습득하기에 이른다.
휴대용 부스터를 졸업한 별이에게 하이체어가 생겼다. 결국 사게 될 운명이었다. (사려면 하루라도 빨리 사자) 살면서 보아 온 의자 중 가장 거대했다. 거실과 주방의 가운데쯤에 위치하여 존재감을 내뿜었고 거기 있음만으로도 오가는 사람들의 발가락을 수시로 공격했던 친구다. 새끼발가락이 여러 번 찍히는 불상사를 견디던 엄마는 별이가 하이체어 대신 빨간 의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자 부리나케 이들과의 이별 준비를 한다. 아이에게 앉는 법을 가르쳐 주어서 정말 고마웠지만, 가끔 의자에 가두어(?)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어 고마웠지만, 그래도 우리는 최대한 빨리 이별하는 게 좋겠어! 미니멀한 삶과 거리가 먼 별이 엄마에게도 애물단지 같은 의자와 함께 하는 삶은 큰 도전이었다.
별이는 빨간 의자에 등산하듯 올라간다. 그러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적도 여러 번. 처음에는 아이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며 눈물까지 흘렸지만, 이제는 ‘에구. 우리 별이 조심하지 그랬어.’ 하며 보듬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이에게도 더 편한 의자를 찾아가 앉을 정도의 판단력과 요령이 생겼다. 비틀비틀 허리 힘 없이 매트 위로 넘어지던 아기가 이렇게 어린이가 됐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이에게 주는 선물을 매 순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