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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 Jun 15. 2023

옥천의 멋진 언니들을 응원해

결혼 이주여성. 우리는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나.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잘 사는 나라에 남편감을 찾아 온 사람들. 그것이 우리가 지닌 인식의 한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이미지는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이주여성의 상당수는 '돈'이 원인이 되어 결혼이주를 선택한다. 그러나 이 하나의 사실이 이주여성에게 행해지는 차별과 혐오, 폭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는 옥천의 작은 독립 출판사가 지역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펴낸 책이다. 저자인 한인정 작가는 옥천의 다양한 이주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저자가 직접 이주여성의 삶을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지면의 상당부분은 옥천 이주여성들의 증언에 할애되어 있다. 이 증언의 목소리가 정말 뜨겁다. 분노로 뜨겁기도 하고 삶에 대한 의지로 뜨겁기도 하다. 차별과 멸시, 혐오와 배제가 일상화된 삶에서 존엄을 찾기 위한 투쟁. 옥천의 이주여성들은 살면서 겪었던 불합리한 상황들과 구조들, 부당한 시선과 대우들을 하나하나 증언한다. 


이주여성이 처음 한국에 오면 온갖 낯섦 사이에 둘러싸인다. 날씨부터 음식, 언어 모든 것이 낯설지만 그 낯섦에 적응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일방적인 수용을 강요받는다. 이질적인 음식 냄새를 참아가며 남편과 시부모,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하고 한국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이유로 모국어를 차단 당한다. 이주여성들은 부인, 며느리, 엄마라는 '역할'로서만 한국 사회에서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이주여성은 집안일과 육아는 물론이고 농사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경제권을 갖기 어렵고 가정 내에서는 언제나 '뭘 잘 모르는 사람' '노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지역 사회는 또 어떠한가. 이주여성을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한 명의 주체적 인간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누군가 (남편, 시부모)에게 소속된 존재로만 바라본다. 다문화가족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교육을 받는 대상은 언제나 이주여성이다. 이주여성의 가족은 교육을 받지 않는다. 다문화라는 말 속에 이주여성의 모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주여성들은 하나의 문화만 강요하는 것이 것이 어떻게 '다문화'이냐고 반문한다. 이주여성들은 한국의 다문화 정책에 이주여성의 모국의 언어, 문화, 생활양식은 없다. 오직 이들이 한국에 잘 동화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지적한다. 


이주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해 112에 신고를 해도 경찰은 한국어가 서투른 이주여성의 말을 듣기보다는 한국인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곤 이주여성을 향한 폭력은 그렇게 집안의 일이 된다. 공권력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주여성들이 할 수 있는 건 같은 처지에 있는 또 다른 이주여성 친구를 만나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그저 밭이나 논두렁을 걸으며 마음을 추스리고 폭력이 난무하는 집으로 다시 돌아갈 뿐이다. 이 책에서 이주여성의 삶을 증언하고 있는 옥천의 이주여성들은 일상 속 차별과 혐오, 가정폭력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이들은 지지체계가 없어서 폭력에 노출되어도 가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주여성들을 위해 그들 스스로가 지지 체계가 되어주기로 한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외면해온 일을 스스로 하기로 한다. 저자는 도망치는 이주여성들을 조명할 것이 아니라 이주여성들을 도망치게 만드는 요인들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이 이주여성들로 하여금 그토록 사랑스런 내 아이를 집에 두고 나오게 하는지, 도망의 근본 원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감내하고 참아왔던 옥천의 이주여성들은 힘을 뭉치기로 한다. 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며 공감을 표시하고 유대를 구축한다. 그러다 어느 날 이주여성들의 공분을 산 사건이 일어난다. 전라북도 익산시장이 다문화가족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고 이 사건은 전국의 이주여성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간다. 익산시장의 발언은 한국사회가 이주여성에게 가해온 폭력의 단면을 드러낸다. 전국에서 모여든 이주여성들은 익산시청 앞에서 항의 시위를 이어가고, 결국 익산시장은 사과를 한다. 익산시장의 발언은 전국 이주여성들의 개인적 상처와 아픔을 건드렸고, 이들을 한 데 모이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이주여성들에게 익산에서의 시위 경험은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알게 한다. 그리고 옥천의 이주여성들은 이주여성의 온전하고 안전한 삶을 위해 싸우는 단체인 '옥천 이주여성협의회'를 만든다. 이제, 정말 싸움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옥천의 이주여성들은 소멸되어가는 지역사회에서 가정을 일구고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과 정책은 전무하다. 관련된 조례가 있다 하더라도 낮은 감수성과 의식 아래 잠자고 있을 뿐이다. 옥천의 이주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한다.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그들은 말한다. 한국에 온 이유가 비록 '돈'이었다 하더라도 한국행을 선택한 건 '잘 살아보기' 위해서라고. 그들은 잘 살아보기 위해 더 이상 참지 않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구할 거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주여성협의회는 이주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이주여성에게 지원을 하겠습니다. 이렇게 모이기까지 크고 작은 차별대우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린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가만히 있기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구하고 떄떄론 싸울 것입니다.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 발대식 선언문 중


드디어 2022년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옥천의 이주여성들은 첫 기자회견을 연다.
방 한 켠, 카페 구석, 누군가의 깻잎하우스에 모여 준비한 내용을 세상에 외친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권리가 있고 대한민국 정치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옥천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는 폭력의 시대를 살아남은 자로서의 증언이라고. 고군분투한 생존자의 이야기라고. 지면을 울리는 옥천의 이주여성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이 문장이 열어젖힌 세상엔 눈물 없인 분노 없인 볼 수 없는 뜨거운 전투가 있었다. 그 전투는 싸움에 능한 사람들이 좋은 무기를 갖추고 치르는 전투가 아니라 지지 기반 하나 없는 홀홀단신의 몸, 낯선 타국에서 부당한 시선과 차별, 혐오와 배제를 매일 감내하며 치르는 전투라 더 눈물겹다. 책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잘 살기 위해 매일 같이 전투를 치르는 이 언니들을 응원하고 싶어질 것이다. 가까이에서 응원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걸 못내 아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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