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서도호, 그리고 하나의 질문
오랜 친구 카먼(Carmen)을 테이트 모던 현대미술관(Tate Modern)에서 만났다. 그녀가 영국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가족들과 함께 나의 고향, 부산을 찾았던 것도 벌써 1년 반 전의 일이다.
서도호 작가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날도 까마득하다. 한동안 그의 작품은 인천공항에 설치되어 있었고, 매년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가족들보다 먼저 나를 반겨주곤 했다. 그런 그의 작품이, 런던에 오다니!
When does a house become a home?
...
낯선 공간이 익숙한 안식처가 되는 건 언제일까?
그가 건넨 이 질문은, 10년 가까이 영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가장 먼저 떠오른 대답은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은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도 그곳을 나의 안식처, ‘집(Home)’처럼 느끼게 해 준다.
카먼 Carmen이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유학생 시절, 나는 김치 대신 올리브를 먹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니, 나는 김치가 그립지 않아. 김치냉장고도 안 그리워. 어머, 이 Tesco [한국의 이마트 같은 영국의 대형 마트] 마늘을 품은 올리브는 잘 숙성되니까 김치 맛이 나는걸…”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믿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손수 만든 한국 음식을 내어주었고, 직접 담근 오이김치를 꼭 한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주말에는 갓 구운 빵과 단팥이 들어간 따뜻한 빵을 손에 쥐여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이곳이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영국을 집처럼 느끼게 해 줬던 모든 순간에는 언제나 카먼[Carmen] 과 같은 “따뜻한 사람”이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문화가 세계로 퍼져나가, 스타벅스에서 케이팝 노래가 흐르고 김치가 올리브 옆에 나란히 진열된 모습을 보면, 문득 마음이 뭉클해진다.
두 번째 대답은 브리스톨[Bristol]로 돌아온 뒤, 그의 질문을 다시 곱씹던 중에 떠올랐다. 아직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어디든 그곳이 안식처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런던 불교 센터[London Buddhist Centre]에서 만난 오래된 멤버 수마나[Sumana]에게, 지난 9년 동안 내가 얼마나 자주 이사를 다녔는지 이야기한 적이 있다.
힘들었지만, 그리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집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더니, 그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Sun, because home is inside you.
썬, 그건 네 안에 집이 있기 때문이야.
그가 말한 ‘내 안의 집’을 나는 종종 상상해 본다.
영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낸 지난 10년, 나의 집은 자주 비가 새는 초가집 같았다. 그 집 말고는 돌아갈 곳이 없어서, 결국 언제나 그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던 시절. 지금은 편안한 매트리스를 갖춘 집을 지었고, 불가사리처럼 내 몸을 쭉 펼쳐 누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러니 그곳이 어느 나라든, 기숙사든, 방 한 칸짜리 셰어하우스든, 아파트든, 가든 하우스든 상관없다.
내 안에 집을 지어 가지고 다닌다면, 어떤 형태의 공간도 나의 안식처가 될 수 있다.
서도호의 반투명한 천으로 만든 집은, 그가 살아온 여러 나라의 집들을 조각보처럼 정성스럽게 이어 붙인 작품이다.
이 천 하나하나를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꿰매고, 형태를 빚어냈을까. 섬세하고, 참으로 아름답다.
언젠가 눈을 감고 내 안에 지은 집을 떠올릴 때, 그 집이 그의 작품처럼 다채롭고 아름답기를 바란다.
런던에서, 한국인 아티스트의 작품과 한국 음식을 오가며 보낸 지극히 한국적인 하루.
그 하루를 다정하게 함께해 준 카먼[Carmen]과 그녀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