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지유 Mar 14. 2024

은근해서 더 무서운, 사뭇 다른 프랑스의 인종차별

무관심, 무지, 우월주의에서 비롯된 괴물

유학시절 썰로 시작해 타임라인을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가면서 글을 쓰다가, 문득 따로 빼야 하는 주제가 몇가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24년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화두에 올라오고 있는 "혐오", 바로 인종차별의 이야기다.


필자는 5살부터 여러 나라와 문화권에서 해외 생활을 해왔지만,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정말 지긋지긋하고 또 어려운 주제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인종차별일까"를 정의하는 것부터 "어디까지 내가 참아야 하는가"를 짚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매해 인내심의 한계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한다. 이제 웬만큼 당했으니 무던해졌다 싶다가도, 주변에서 차별당한 사연을 듣거나 하면 또 울컥 화가 치민다. 요즘 들어 사소하게, 은근하게 깔린 차별과 폭력을 지칭하는 "micro-agression"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필자가 프랑스에서 직접 느끼고, 또 봐온 다양한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처음으로 이게 인종차별인가? 싶은 경험을 한 것은 청소년 시절, 미국에 있는 프랑스 국제학교로 전학가면서부터였다. 유치부부터 고등학교까지 전부 포함되어 있는 큰 학교였고, 중등부와 고등부는 건물이 붙어 있었다. 내가 전학갔을 당시에는 내가 모든 부를 통틀어 최초이자 유일한 동양인 학생이었다. 한국이 어딨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은 궁금한 게 많았나 보다. '한국은 어디에 있는 나라야?', '한국은 무슨 언어 써?', '일본이랑 중국이랑 많이 달라?' 이런 류의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지금 생각해도 약간 머리가 아찔해지는 질문들이었다. '너도 쿵푸같은 거 하지?', '너는 여기 왜 있어?', '어떻게 여깄어?', '프랑스어는 왜 해?' 이 정도는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순진하게 생각할 수도, 약간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이야 갓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의 서툰 단어 선택 탓이라 생각한다. 저런 질문들을 해온 아이들은 이후 친구가 되었으니 말이다.


'난 네가 일본인인 것 같아.' 어쩌다 점심시간에 같이 앉게 일행들 안면만 사이였던 어느 여자애가 말이었다. 나는 저게 무슨 소린가 벙쪄서 아니, 우리 집은 다 한국인인데?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애는 '아냐, 넌 분명히 일본인 맞아. 너네 가계도에 있을 거야. 찾아봐' 라고 했다. 이건 저 애가 그냥 하는 헛소리인가, 신종 인종차별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게 무슨 소린가 이해가지 않았으며, 사실 지금도 이해가지 않는다. 이거, 무슨 뜻인지 알려주실 분?? 하나 확실한 건, 저 대화 이후 질문을 한 여자애와는 두번 다시 말을 섞지 않았다는 거.


바야흐로 시간이 흘러 2012년, 내가 유학을 시작한지 3년차가 되던 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열풍을 끌었던 해다. 이 얘기를 하면 담배피던 호랑이가 된 기분이지만, 당시 프랑스 지방 대학생들은 K-Pop이 뭔지를 떠나 한국이 어딨는지도 몰랐었다. 우리 학년에 한국인이라고는 거의 2-3명밖에 없었고, 같이 놀던 한국인이라고는 나밖에 없고, 동기들은 내가 공부를 위해 한국에서 그 프랑스 지방까지 온 것 자체를 신기해했다. 이 즈음부터 매번 받던 질문들에서 기출변형이 늘었다. '강남이 대체 뭐야?', '가사에 나오는 오빠는 무슨 뜻이야?' 이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국뽕이 차오르는 순간. K-pop의 세계화를 현지에서 몸소 체험하는 건 상당히 감동스러웠다. 이걸로 무식한 무지성 질문들은 좀 줄어들겠지, 희망에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몇년 후. 전공을 바꾸고 파리에서 학사를 마무리한 나는 학기말 인턴 보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나는 미술경영으로 전공을 바꾼 후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갤러리와 아트페어 등에서 인턴을 하면서 석사 지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턴 보고서와 함께 교수들과 학교 행정 직원들로 이루어진 심사단 앞에서 인턴 활동에 대한 발표를 해야 했는데, 내 10여년의 프랑스 생활(현재진행형)을 모두 통틀어 가장 강렬한 멘트를 들었다.


"Pourquoi pas chercher un beau garçon français et se faire marier? Beaucoup de vos compatriotes le font."

"괜찮은 프랑스 남자애 찾아서 결혼이나 하지 그래? 너네 나라 애들도 많이 하는데."


이 발언은 학사논문의 주제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하고 학년 동안 두가지 인턴십에서의 활동을 설명한 후, 석사에 지원해서 공부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다는 계획을 듣고 교수님이 말이었다. 교수님은 중년의 여성분이었고, 미술보험/운송 강의 교수님으로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충격이었다. 나는 해당 과목의 성적도 좋았고, 인턴십도 굉장히 성실하게 해왔으며 향후 계획도 명확했다. 발표할 긴장은 했으나 이미 시점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한지 10년이 넘었으니 언어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학생의 인턴 활동에 대해 듣고, 향후에 대해 묻는 심사 자리에서, 저런 발언을?


이 멘트에서 충격받은 포인트가 한두가지가 아닌데, 한번 정리해보자면:

1. 인턴 활동을 평가하고 심사하는 자리에서 저런 멘트를 던지는 심리

2. 인턴, 석사, 그 이후 취직에 대한 코멘트 일절 없이 저 멘트만 달랑 했다는 점

3. 젊은 여성 유학생이 프랑스에 체류하려면 결혼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편견

4. 프랑스에 체류하는, 또는 체류하려는 외국인 여성의 학력과 경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점

5. 모든 외국인 여성이 프랑스에 체류하는 목적이 결혼이라는 일반화

6. 위의 목적인 결혼에는 식민지를 보유했던 제국주의적 사고에서 바탕되는 이른바 '팔자 피는 결혼'이라는 뉘앙스

7. 이 일반화를 본인의 제자에게 들이민다는 점

8. "너네 나라", 모든 동양권 국가와 문화 다양성을 싹 다 지워버리는 무지(無知)


그렇다. 나는 졸지에 존경하는 교수님으로부터 "팔자나 피려고 프랑스에 놀러온 게으른 외국인 여성" 취급을 받은 것이다. 방금까지 발표한 내용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도 없던 걸 고려하면, 가히 교수의 자질까지 의심해봐야 하는 수준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었다.


교수님의 저 발언은 프랑스 중년 여성의 젊은 동양인 유학생에 대한 견해에 대해 잘 보여주는 말이었다. 물론 모든 프랑스 중년 여성들의 견해라고 일반화시킬 생각은 없다. 실제로 너무나 상냥하고 동양인 학생들에 대해 무수히 칭찬하는 교수도 있었고, 전철에서 자리를 양보해드린 할머니들 가운데 어디서 왔니? 물으면서 프랑스에서 공부하다니 대단하네, 감탄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저 문제적 발언이, 심사단에 계신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게 내게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재학 중이며 교수님이 재직하고 계신 학교에는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 유학생이 정말 많았으니까. 그렇다면 교수님은 재단에 서서 강의를 하시면서도 어차피 얘네는 팔자나 피러 온 애들인데, 하는 생각으로 수업을 하셨던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 컸다. 정말 나나, 나와 같은 학생들은 그저 월급벌이밖에 안 되었구나...하고.


그래서 그 때, 어떻게 대처했느냐고? 바보같게도 나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 뭐...그것도 방법이죠." 라고 대답했다. 왜 그 자리에서 분노하지 않고 발언 정정해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나는 이 인턴 평가 심사에 통과해야만 했고, 교수님은 교수님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저런 문제적 발언을 처음 들은 것이 아니었으니까. 유학시절 초반부터 프랑스인은 물론이고 같은 한국인들도 저것과 같은 말을 무수히 해왔다. 프랑스에서 살 생각이냐, 하는 질문 뒤에는 반드시 꼬리표처럼 달라붙는 말이었다.


"프랑스에서 살게? 그럼 프랑스인이랑 결혼하면 되겠네~"

"공부 끝나면 뭐하게? 그냥 프랑스인이랑 결혼해!"

"여기서 오래 살 거면 프랑스인이랑 결혼하는 게 맞지 않아?"

"살 거면 프랑스인이랑 결혼하는 게 훨씬 편할걸? 체류증 바로 나오잖아."


인종차별과 성차별, 일반화가 합해지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프랑스어가 유창하고, 공부를 오래 하고, 학위가 여럿이고, 논문을 여럿 썼어도 내 얼굴이 명확한 동양인의 얼굴인 이상, 저 질문은 절대로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며, 프랑스에 깔린 인종차별의 진짜 얼굴이다. 미국의 공격적인 인종차별과는 사뭇 다른 무관심, 무지, 제국주의, 우월주의가 만들어낸 괴물. 하지만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악랄하다. 유럽의 멜팅팟인 프랑스에는 이러한 차별주의가 뿌리깊게 내리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력이 약한 탓이다? 천만의 말씀. 이건 프랑스 정서에 뿌리깊게 박힌 괴물이며 지금처럼 한류가 프랑스에서 인기를 얻고 있음에도 존재하는 또다른 이면이다.


P.S. 필자는 위의 발언을 듣고 몇년 동안이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다가, 약 4-5년이 지나고 나서야 회상하면서 새삼 분노했다. 그만큼 저런 발언은 흔하디 흔하며, 재외국민들이 그냥 견디고 사는 편견 중의 하나라는 거...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원, 새로운 생태계에서 적응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