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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정 Jan 10. 2024

엄마와의 시간을 놓치다.


엄마를 언니네 집에 모셔다 드렸다. 겨우 일주일이었건만 이번에도 엄마와의 시간은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힘겨운 과제를 떠넘기듯 언니에게 엄마를 넘기고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편안하다. 홀가분하다... 못된 년…


며칠 전 엄마를 오시라고 초대한 것은 나였다. 겨울이면 김양식 일 때문에 바빠 좀처럼 시간을 만들지 못하시는 엄마가 올해는 일을 많이 줄여서 한가하다고 하셨다. 세부한달살이 계획 때문에 설연휴에도 못 뵐 듯해서 아이랑 한번 다녀올까 하다가 귀찮은 마음이 들어 엄마가 올라오시는 것이 어떠냐며 꼬드겼다. 사실 아이 방학기간이라 내가 일을 하는 날 엄마에게 아이를 좀 맡기려는 얄팍한 꼼수도 숨어 있었다. ”엄마, 올라오셔서 같이 놀러도 가고 리마도 좀 봐주고 해요 “라고 했더니 어디든 가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엄마는 망설임 없이 그러마 하셨다.


올라오시는 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저녁을 대접한다고 찾아간 식당의 음식이 맛있었는지 과식을 하시더니 심하게 체하신 모양이다. 새벽 내내 부대끼셨다는데 자는 딸을 차마 깨우진 못하셨단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를 보니 기운이 하나도 없으셨다. 병원에 가자고 하니 싫으시단다. 몇 번 더 권유하다가 엄마의 고집을 아니 물러선다. 점심이 지나니 좀 괜찮아지신다며 아이아빠가 좋아하는 무생채를 해주신다고 몸을 일으키셨다. ”엄마 좀 있다가 해 “ 내 만류에도 말을 듣지 않으신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는 엄마를 알고 있다. 갓 무쳐낸 무생채에 군침이 돌아 속이 불편한 엄마를 두고 나만 밥을 비벼 맛있게 먹었다. 계속 누워계시던 엄마가  3시쯤 괜찮아졌다고 일어나시더니 리마 과자를 하나 집어드신다. “엄마, 체한 사람이 애처럼 그걸 왜 먹어?” 과자를 좋아하시는 엄마가 먹고 싶으시다는데 또다시 말리는 걸 그만둔다. 먹고 나서 결과는 뻔했다. 결국 부랴부랴 병원을 갈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컨디션이 회복되자 구경 다니는 것을 좋아하시는 엄마를 모시고 아이와 함께 63 빌딩을 갔다. 아쿠아리움 구경도 하고 서울 전망도 구경하자며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어두컴컴한 아쿠아리움 안에서 엄마는 천천히 물고기를 보고 있는 우리를 뒤로하고 혼자서 빠르게 앞으로 전진하셨다. 할머니가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되는 리마는 계속해서 할머니를 찾아다니고 나는 또 그런 엄마와 아이를 찾아다녀야 했다. 여유 있게 보고 싶었던 63 아트 미술관의 전시 작품은 제대로 눈에 담지도 못했다. 63 빌딩 투어를 누구보다 빠르게 끝내고 점심을 피자가 먹고 싶다는 엄마를 위해 피자집을 찾아갔다. 한강이 바로 내다 보이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셨는지 ’짜다, 느끼하다‘고 계속 불만을 토로하셨다. 그리곤 얼마 먹지 않고선 배부르다며 식사를 끝내셨다.


엄마와 함께 지낸 일주일은 어느 때보다 정신없이 흘러갔다. 방학이라 아이들 수업이 늘어 일이 많아진 데다가 체한 엄마를 간호하느라, 트로트 프로그램을 보느라 소파에서 옴짝 달짝하지 않는 엄마를 끼니마다 챙기느라,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이 많은 엄마를 모셔다 드리는 운전기사가 되느라 몹시 피곤했다. 번번이 내 일정을 고려하지 않는 엄마의 결정들을 힘겨워하며 맞춰드리느라 마음속에서 자꾸 삐쭉한 마음이 올라왔다.  나이 들수록 더해가는 고집스러움이, 엄마 입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말들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음도 지쳐갔다. 날이 갈수록 서로에게 마뜩찮은 말들을 해가며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예전처럼 아이 좀 맡겨놓고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면서 유유자적한 일주일을 보내 보려 했던 야심 찬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대신 방학중인 아이와 아이가 된 엄마, 둘을 챙겨야 했다.


엄마가 가신 다음날, 개운치 않은 마음을 뒤로하고 피로에 찌든 나를 구하려 건강검진을 핑계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동이 터오고 있었다. 엄마가 생각났다. 많이 늙어버린, 점점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가. 왜 엄마가 늙는다는 것을 자꾸 잊는 걸까? 1년 365일 중 우리 집에 와 계신 시간이라 봐야 7일뿐인데, 몇십 년을 엄마 등골 빼먹으며 살았으면서 고작 일주일에 불평을 늘어놓는 꼴사나운 내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머물던 자리가 자꾸 눈에 걸렸던 건 엄마와의 시간을 배부른 투정으로 놓쳐버린 어리석음 때문이었나보다. 후회와 그리움으로 자꾸 눈물이 났다.


공자님은 “부모를 섬길 때는 조용히 직언해야 한다.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더라고, 공경하고 어김이 없어야 하고,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논어 제4편 이인 18절)고 하셨다. 배웠으면 실천하고 살자. 다시 논어를 가까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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