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가는 시간은 해가 뜨겁게 내리쬐는 시간이다. 짧지 않은 거리이기에 양산을 꺼내어 쓰고 간다. 오늘 내가 쓰는 양산은 산리오 캐릭터 중 하나인 귀여운 포차코가 그려진 양산이지만 아쉽게도 귀여운 캐릭터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 햇볕이 한창 뜨거웠던 7월의 어느날 아이는 양산을 쓰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는 선생님 말을 전하며 양산을 사달라고 했다. 선생님 말이 세상에 없는 진리인 아이에게 양산은 꼭 필요한 물건이었으리라. 그래서 아이와 함께 신중하게 양산을 골랐다. 하지만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민트색에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이 양산은 한번의 사용을 끝으로 버려졌다. 여기저기 활달히 다니는 초등3학년 아이에게 양산을 챙긴다는 것은 귀찮고도 번거로운 일이었으니 저 양산이 내 것이 될 것 같은 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엄마가 되면서부터 취향을 잃었다. 아이가 쓰다가 안쓰는 것들은 죄다 엄마 물건이 된다. 쓰다 남은 깍두기노트는 메모장이 되고, 선물로 받아온, 하지만 주인의 눈에 들지 못한 각종 연필이며 볼펜은 내 필통속으로 들어온다. 필통조차 아이가 체험활동에서 만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넣는 가방은 어딘가에서 얻어온 에코백이니 몸에 걸치고 있는 것 중 어느것도 내 취향은 반영되지 못한다.
엄마인 나에게 유일하게 취향이 보존 되었던 것은 부엌에서 쓰는 냄비나 그릇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그릇을 살때면 마냥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남편 몰래 비싸게 들인 그릇세트에 아이 간식을 덜어주고, 밥상을 차리면서 혼자서 들뜨곤 했었다. 하지만 넘쳐나는 물건들에 지친 요즘 미니멀라이프에 그릇취향마저도 양보했다.
이렇게 취향을 잃어가는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물건에 대한 취향이 모호해진 대신 가치관에 대한 취향은 확고해져 왔음을 깨닫게 된다. 이 변화는 책의 취향에서 시작된 것이 틀림없다. 읽어 온 책들은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책들에 끌려읽었던 것은 나의 취향이 맞닿아 있어서이지 않을까? 좋은 게 좋은거라는 애매한 태도로 살아왔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싫은데 좋은척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가 정리 되었고 그림자마냥 따라 다니던 관계의 어려움에서 어느정도 해방될 수 있었다.
취향은 변한다. 물건에서 사람까지 내 취향도 수없이 많이 변해왔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있어야 취향도 있다는 것이다. 나다운 나로 바로 서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