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잔해, 부정적인 감정들을 토하듯 게워내고 마음을 비워내다
'상처로 인해 무슨 성장을 해,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지.'
지난 글에서 다루었듯 내가 상처와 외로움으로부터의 생존 전략으로 채택한 '통제의 방식'은 정작 나 자신과 나의 감정, 내면이 버려지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고착화된 삶의 방식을 인지했다고 해서, 그 패턴과 습성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깨어지고 변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20대를 지나면서 내가 가진 통제의 습성은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깨지고 부서졌지만 내겐 여전히 통제적인 습관과 면면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통제적인 습성이 집요함과 꼼꼼함과 끈기를 키워주는 등 성과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기도 하다. 또한, 내 주변의 누군가는 내가 통제해주고 생각을 가지치기해주며 어떤 문제에 대한 본질로 들어가 결론을 내주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즉, 상처로 인해 습득하게 된 경직된 삶의 방식들이 어느정도 깎이고 다듬어지고 풀어지게 되면, 이 또한 긍정적인 면모가 꽤 많다는 것이다.
'상처로 인해 무슨 성장을 해,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지.' 그렇다.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되도록이면 상처보다는 무한한 사랑과 믿음과 격려로써 성장하는 편이 모두에게 이롭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받는 일을 피할 수 없는게 우리의 운명이라면, 상처로 인한 아픔과 그로 인한 아프고 괴로운 성장까지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은 우리가 가진 이상만큼 마냥 깨끗하기만 하고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통제의 방식으로도 이해받거나 사랑받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깨닫다
지난 10대때 고착화된 통제의 습성이 20대 중반쯤 정점으로, 극단으로 치솟고 무너지며 심적으로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바닥을 기어보고 나서야 내가 가진 통제심의 실상을 마주하며 이를 무너뜨려가고, 다른 삶의 방식으로 전환해나갈 수 있었다.
20대 초반까지는 언제나 그랬듯, 다 잘하려고 애쓰며 살았다.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좋은 딸, 좋은 동생이 되는 것에 목적을 두었고, 학업, 교우관계 등 모든 일에 트러블이 없이 잘 해낼 수 있도록 나의 마음은 뒤로 차치해두고 내가 할 '도리', '과제'들을 잘 해냈다.
내가 이렇게 아등바등 무엇이든지 잘 해내려고 하며 산 것은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이 글에 다 담을 수 없어 축약하자면, 나는 어느순간 내가 통제한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니구나, 아니 진심을 묻어두었기때문에 상처는 받지 않더라도 나의 깊은 우울이나 외로움은 결코 해결될 수 없구나, 내가 모든 걸 잘 해낸다고 해서 그렇게 연기를 해낸다고 해서 이해받거나 사랑받을 수 있는게 아니구나 깨달았다. 이것은 따지자면, 일말의 희망마저 놓아버리게 된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야. 사람은 결국 이기적인 존재야. 그래, 고작 이정도 수준이 인간이 지닌 한계인거야.
'그래, 밝은 딸이 되면 사랑받을 수 있어, 다 잘 해내는 사람이 되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
통제의 방식으로 살던 것도 '완벽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거야'라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거다.
그러나 애쓰며 아등바등 완벽을 연기하며 스스로를 통제하고 상황을 통제하려고 해도, 결국 이런 방식으로도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거나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깨달은 순간, 나는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또 동시에 나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일말의 희망까지 전부 내려놓으며 매우 회의적이며 시니컬한 사람이 됐다.
그때의 내 눈에 모든 사람들은 결국 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결국 자기 결핍과 무지로 인한 '지팔지꼰'이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끝없는 공감을 구한다거나, 자기가 상처주고 사는 건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상처에 대한 끝없는 이해와 공감을 갈구하는 드라마퀸, 자기 이해타산을 계산하며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으로 접근하면서 그걸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한다거나, 자신의 책임과 무게를 감당하지 않으면서 남탓만 하며 입에 바른 소리만 하는 입만 산 사람 등등...
'그래, 인간이란 그냥 이정도 수준이 한계인거야.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자. 뭔 기대를 해.'
'그들이 나를 이용하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적당히 이용하자.'
'사랑은 무슨 사랑, 좋은 말로 포장하지만 결국은 다 이기심이지.'
'사람 속내를 뜯어보면 다 돈이지, 다 이해타산인거고, 사람들은 이런 저런 감정으로 자기 변명으로 의도를 포장하지만 그 감정들마저 속을 들춰다보면 누구나 뼛속까지 이기적이야.'
20대 중반의 나는 이런 생각을 갖고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있었다.
나 자신과 타인 모두를 포함한 '사람'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자 했다.
통제의 방식으로도 내가 바라는 사랑과 이해는 절대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간 정립해온 내적인 질서도 다 무너졌으며, 이때의 난 향방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인간관계에서도, 일에서도, 내 내면속에서도 아무런 가치와 의미를 찾지 못했다. 책임을 다 해야할 명분과 이유도 찾지 못했고, 어차피 본디 이기적인 존재에게 사랑이라는 가치는 분에 넘치고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이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이때의 난 차라리 술에 취한 상태가 마음이 편했다. 그래, 사는데에 별 의미도 가치도 없는데,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으니까 정신이라도 좀 놓아보자. 술에 취한 순간은 웃을 수 있었다. 그게 설령 가짜웃음이더라도, 들이찬 공허감을 외면할 수 있는 시간은 그 시간뿐이었다.
쥐고 있던 모든 걸 포기했을 때, 내면에 묵히고 가둬뒀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 묵은 찌끼들이 올라오다
20대 중반의 나는 그야말로 '지랄맞은 딸, 지랄맞은 동생, 지랄맞은 친구'였다. 유년시절부터 '긍정' 혹은 '완벽과 통제'로 덮어두고 포장하며, 뒤로 차치하고 묵혀뒀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주체할 수 없이 내 맘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나 자신에게 습관처럼 퍼붓던 잔인한 자책의 말, 스스로를 통제하기 위해 강요하고 강제하던 말들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제발 좋은 사람인 척 좀 하지마. 엄마 아빠 그닥 좋은 사람 아니야. 좋은 부모인 척 좀 하지마."
부모님 마음에 대못을 박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 속 분노를 필터링없이 그대로 쏟아내기도 했다.
'쟤가 예전엔 저런 애가 아니었는데, 왜 저러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옆에서 내 방황을 지켜보며 마음 졸였다. 친구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나를 진정시키려고 좋은 말로 설득했지만 그때의 난 친구의 말도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너는 나랑 상황이 다르잖아. 너가 날 알아? 너도 날 이해 못할거야.' 이런 생각이었다.
통제의 방식, 꽉 쥐고 애쓰던 모든 것들, 그간 쌓아온 모든 내적 질서들을 다 놓아버리고 포기해버린 나는 그야말로 '미친년'처럼 굴었다.
나 자신과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 가족, 가장 친밀한 친구만이 이때의 내가 '미친년'이자 '썅년'이었다는 것을 알테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때의 나는 내 생애에서 감정과 생각이 가장 극단을 오갔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와 가까운 이들을 너무 괴롭게 했다.
혼란하고 미친 나여도, 떠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미친년'처럼 굴고 나서야, 그런 나여도 곁을 지켜주고 떠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사랑받고 있었다라는 것과 사랑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게 됐다.
이때의 나는 가장 괴로웠고 친밀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고통을 주었지만, 이 시기가 있었기에 내가 '잘하기 때문에', '긍정적이기 때문에', '쓸모있기 때문에' 사랑받는게 아닌, '내가 그저 나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음을 믿을 수 있게 됐다. 아니, 100%까지 믿을 수는 없더라도, 무조건적인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금 품게 됐다.
그간 쌓아왔던 내면의 질서와 가치(통제의 방식 등)에 균열이 생기고 무너지고, 손을 놓아버리고 나서야, 무너져도 내 존재로서도 그저 사랑받을 수 있음에 대해서 믿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억압되어있던 부정적인 감정들, 좌절감, 분노, 우울, 슬픔, 상실감 등을 마주하고 느껴가며, 응어리진 감정들을 쏟아내고, 토해내고, 게워내며 마음을 텅 비워내고 나서야, 다시 좋은 것들로 채울 자리가 마련됐다.
상처는 잔해를 만들고, 잔해를 치워낼 때는 매캐한 먼지가 피어오른다.
상처는 잔해를 만들고, 잔해를 치워낼 때는 매캐한 먼지가 피어오른다. 따지자면, 20대 중반의 나는 마음속에 쌓여있던 잔해들을 거둬내며 먼지를 풀풀 내던 때였다. 하지만 이 시기가 없이는 마음이 비워질 수 없었고, 다시 좋은 것들로 채울 기회도 허락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를 버텨냈던 내가 지금은 안쓰럽게 느껴지고 그때의 나를 안아주고 싶다. 또한, 이 시기의 나를 견뎌줬던 가장 가깝고 친밀한 가족과 친구에게 빚진 마음과 감사함, 그들이 내게 주었던 조건없는 사랑에 대해서는 평생동안 갚아도 갚을 수 없을 것이다.
묵혀뒀던, 억압됐던, 부유하던 감정들이 비워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상처의 치유 과정에서 이 과정은 가장 고통스럽고 추잡하고 더럽고 혼란스럽고 대책없어 보인다. 하지만 더러운 것들을 게워내야만, 잔해를 거두어내야만, 그 빈자리에 비로소 온전한 마음의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다.
나처럼 '미친 시기'를 겪는 사람이 있다면, 혼란하고 고통스럽고 답 없어보이는 시간이더라도 죽지 말고 일단 살아서 버텨내기를, 그리고 그의 곁에 그 혼돈을 감내해주고, 게워내는 고통을 함께 버텨주는 한사람이 있길 마음 깊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