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은중과 상연 (1)

은중의 어머니와 상연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by 순주씨

2025년 최고의 드라마를 꼽자면, '은중과 상연'이다.


은중역을 맡은 김고은 배우와 상연역을 맡은 박지현 배우의 작품들은 앞으로도 챙겨보게 될 것 같다. 특히, 박지현 배우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호흡과 몸짓, 눈짓, 작은 표정 하나하나까지 소름돋도록 디테일한 연기를 보여줘서 놀랐다.


2025년은 작년과 달리 가을이 제때 왔다. 9월 중순부터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중과 상연도 이런 날씨에 맞게 제때 공개된 것 같다. 서늘해지는 날씨와 어울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며, 은중의 어머니와 상연의 어머니, 그리고 은중의 모녀관계, 상연의 모녀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단단한 자존감을 지닌 사랑스러운 '은중'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은중'은 비록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지만, 가난한 환경속에서도 강인하고 밝은 에너지를 지닌 엄마와 자신의 아픔을 공감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윤현숙 선생님(상연의 모) 덕분에 점점 자신감도 갖게 되고, 사랑스럽고 밝은 사람으로 자란다. 은중의 인생 그래프는 따지자면 최저점에서 시작해서 점차 우상향하는 그래프를 떠올리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가 은중의 삶에 치명적인 결핍으로 남지 않도록 도운 것은 윤현숙 선생님의 말, "아버지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마음이 담긴 조언을 은중이가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빈자리를 좋은 것들로 채우기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소화하기 힘든 고난을 겪고도, 아이들을 위해 악착같이 살았던 은중의 어머니의 모습은 은중의 뿌리깊은 자존감의 한 축이 되었을 것이다. 극중에서 은중의 어머니는 파출부 일을 하면서도, 우유배달을 하면서도 쉬이 얼굴을 찡그리는 법이 없고, 능청스럽게 일을 해나간다.

나중에 40대의 은중이가 엄마에게 아빠가 사고 당했을 때, 그때 어떻게 버텼었냐고 물으니, 엄마는 사고는 그저 닥쳐온 일이고 뭘 어떻게 버텨,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없었지 라는 뉘앙스로 대답한다.


'받아들임', 그리고 큰 욕심없는 '성실함'이 은중이가 자신의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큰 유산이며 그것으로부터 단단한 자존감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갑옷으로 무장한 채 생존 투쟁을 벌이는 '상연'

상연은 사랑받고 싶은 아이였다. 사랑받고 싶었기에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수업시간에 떠드는 아이도 회초리로 때렸지만, 그 길로 엄마(윤현숙 선생)에게 되려 혼나고 만다. "맞으면 아픈거야." 엄마는 아이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지니길 바랐다.

상연이가 엄마에게 이쁨받으려고 하는 짓, 좋은 성적 받기, 선생님 말씀 잘 듣기 같은 일들은 상연 엄마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보통의 엄마들 같았으면,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칭찬해줄 법도 한데, 상연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좋은 성적표를 보여줘도 "네가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은, 좋은 환경이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되돌아올 뿐이었다. 상연은 어릴 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상연 엄마는 상연이 오만해지는 것을 경계했을 것이다. 유독 자기 자식에게 더 엄격한 부모가 있다. 상연 엄마가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은중이에게 아버지의 빈자리를 좋은 것으로 채워가라는 조언을 해준 윤현숙 선생님은 아들 천상학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시들어갔다. 그 비극이 있기전에는 좋은 선생님, 좋은 스승으로 평판이 좋았던 상연 엄마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학교도 그만 두고 강릉의 작은 집에서 칩거한다. 은중의 엄마는 남편의 죽음이라는 고난 속에서 더욱 강인해졌지만, 상연의 엄마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고난 속에서 길을 잃었다.


상연은 그런 엄마를 보며, "남은 자식을 봐서라도 잘 살아야하는 거 아니냐"라는 생각으로 엄마에 대한 분노가 더해간다. 상연은 자신의 엄마를 미워했다. 상연의 엄마는 자식의 죽음 앞에 무너졌고, 남은 자식인 상연은 오빠가 죽은 뒤로는 자신의 삶을 지켜나갈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는 없다는 생존의 무대에 남겨졌다.


상연은 따지자면 기질적으로 곰살맞게 태어난 아이는 아니었다. 상연은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책임감이 크고, 타고난 능력치가 좋고, 경잼심도 많고, 머리도 좋지만 그에 반해 인간관계 처세술이 있다거나,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거나하는 관계적인 능력이랄까 사람 마음을 주무르는 능력 같은게 뛰어난 아이는 아니었다.


상연 엄마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딸에게 그렇게 했는지는 알겠지만, 한편으로는 상연 엄마는 완벽주의의 끝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상연 엄마는 자기 자식이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 되길 바란 욕심많은 사람중에 하나가 아닐까.


은중 엄마와 상연 엄마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을 한 건 은중 엄마였다는 것, 완벽하길 바라는 사랑을 한 건 상연 엄마였다는 것이다.

극중 은중 엄마에게서는 은중이가 성적이 좋건, 좋지 않건, 어떤 선택을 하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밥이라도 먹고 자!!!" 정도의 잔소리.

윤현숙 선생이 은중에게 따뜻했던 것처럼, 은중 엄마도 상연에게 따뜻했다. 30대의 상연의 "아줌마, 저 나쁜 년인데, 한번만 안아주시면 안되요?"라는 말에 상연을 말없이 안아주던 은중 엄마. 상연은 자신의 엄마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는데, 은중 엄마만큼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실거라는 믿음이 있었나보다. 상연은 그순간 이런 엄마를 가진 은중에 대한 부러운 마음, 은중에게 한 짓에 대한 미안한 마음, 그리고 자신은 갖지 못한 그 품이 그순간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위로받는 마음 등 복잡한 마음으로 울었을 것이다.


상연 엄마는 상연이가 본래 타고나지 못한 면, 깊은 공감능력이라든가, 곰살맞게 굴 줄 아는 것, 상연에게는 없고 은중에게는 있는 면들까지도 갖기를 원했다. 딸이 완벽하길 바란 것이다. 이런 태도는 아들 천상학에게도 그대로 적용됐을 것 같다.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아들을, 이 완벽주의 엄마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나. 그것 하나 빼고는 완벽한 아들이었는데.


상연의 엄마는 거리가 있는 학생인 은중에게는 아버지의 빈 자리를 좋은 것들로 채워가라는 따뜻한 조언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가장 가까운 자기 자식에게는 자식이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단점까지 보완된 완벽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나는 상연 엄마가 상연의 뛰어난 면모를 더욱 북돋아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면, 상연이 저렇게까지 삐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연 평생의 콤플렉스는 자신은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은중이는 저렇게 사랑받는데, 자신은 사랑스럽지 못하다라는 것. 상연의 엄마는 은중이는 환한 미소로 안아주면서, 상연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엄마였으니.


가뜩이나 스스로에게 엄격한 상연이, 엄격한 엄마 아래에서 얼마나 더 뻣뻣한 사람이 되어갔을지, 말그대로 더 사랑스럽지 못한 모습으로 되어갔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자식에게 엄격한 길이 진정 자식을 위하는 길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무한한 사랑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길이 좋은 심성을 만드는 길 아닐까.


은중에게 주어진 무형의 자산이 얼마나 컸는가, 그로 인해 은중이는 '큰 마음'을 갖게 되었고,

반대로 상연에게 주어진 것들은 얼마나 척박했는가를 고려한다면, 상연의 삐뚤어진 마음, 작고 방어적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개인적으로 상연은 나에게 너무나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 캐릭터여서 더 풀어보고 싶다.




#은중과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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