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은중과 상연 (2)

은중이 살아가는 방식, 상연이 살아가는 방식 - 결핍과 통제 혹은 자유

by 순주씨

상연은 썅년인가? 맞다. 그러나...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몰입해서 보고 친구와도 대화를 나누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도 찾아본 바, 상연은 썅연이라 불리울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았다.


지난 글에서 개인적으로 상연이 가슴 아리게 다가온다고 한 이유는 내가 상연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상연의 행동들을 옹호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가 얼마나 스스로의 삶을 더 치열하고 괴롭게 만드는지 알기 때문에…

그 괴로움에 공감되어 마음이 아파서 나 스스로를 분석해보는 마음으로, 그녀를 더 분석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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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할아버지가 내가 지나가는 줄 모르고 내 쪽으로 침을 뱉었다. 그리고 내게 "어우 쏘리~ 미안혀~" 이러시는데 난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한 채, 내 갈 길을 갔다.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가며 내 머릿속을 메꾸는 생각, '사람 지나다니는 길에 침을 뱉어? 그리고 왜 반말이야? 저게 사과야? 반응하는 것도 에너지 소모니까 그냥 가자... 아, 걷지 말고 차타고 갈 걸...'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쪽보다는 감정을 머리로 분석하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아마 "할아버지, 사람보지도 않고 침을 뱉으시면 어떻게 해요!"하고 짜증을 낼 법한데, 나는 '인간이 싫다...다음부터는 그냥 차타고 다녀야지.'라는 통제심이 일으켜진다.


아주 사소한 상황이지만, 내게 각인된 삶의 태도가 참 지독하다고 그와중에 느꼈다. 나는 또 통제하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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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화를 예시로 든 것은, 상연이 딱 나와 같은 통제적인 태도로 삶을 사는 사람이어서다.



'완전한 형식'을 갖추고 '완전히 무너진' 상연의 가족


드라마를 쭉 보면서 은중과 상연 두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둘은 기질부터가 다르고, 가정환경과 가족안에서의 문화도 다르고 이에 따라 굳혀진 삶의 방식과 태도도 극명하게 다르다.


어린 은중은 상연의 집에 걸려있는 '완전한 4인 가족'을 표상하는 듯한 가족 사진을 보며 부러워한다. 보여지는 모습은 완전했지만, 실상 상연의 가족은 '완전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상연의 할아버지는 장관 출신, 그리고 아버지는 극중에서도 보여지는 것처럼 욕심많고 권위적인 사람이다. 엄마의 우유배달을 돕는 은중을 보며 그는 상연에게 "너도 공부 안하면 커서 저렇게 되는거야"라는 계급주의적이며 몰상식한 말을 한다. 그는 돈과 권위에 매몰된 변치않는 빌런으로, 결국 30대의 상연은 아버지와 절연.


윤현숙 선생은 왜 자신과 많이 다른, 권위주의적이고 교만한 남자와 결혼했을까?

윤현숙 선생이 지닌 가치관은 권위주의와는 멀어보였다. 학생들중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의자까지 내어주는 모습이라든지, 상연에게도 네가 누리고 있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라고 깨우쳐주려하는 모습에서 전혀 권위주의적인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분명 그녀는 수평 지향적이며 따뜻한 태도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권위주의적인 남편과 결혼한 것은 아마 결핍에서 기인한 통제심때문일 것 같다.

그녀 또한 은중처럼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마 그 결핍때문에 자신은 '무너지지 않는 완전한 가정'을 갖고 싶었을거라고 짐작해본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좋은 것들로 채워가면 돼"라는 은중을 향한 조언은 진심이었겠고, 아마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은 그 결핍을 채워낸 삶에 도달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 또한 공직에 종사하며 뼈대 굵고 기반 튼튼한 장관 집안의 잘 나가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나의 가정은 무너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가정은 완전한 형식을 갖췄지만, 완전히 무너진다.


'불완전한 형식' 속에서 '견고하게 지켜진' 은중의 가족

반면, 윤현숙 선생의 조언을 들은 은중은 그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옆의 다른 친구가 "야, 너도 아빠 없잖아"라는 말에 잠시 침울해하던 은중의 마음을 공감한 윤현숙 선생이 타이밍 좋게 조언을 건넸고, 그 조언은 은중의 마음에 좋은 씨앗으로 심어졌다. 그 말이 은중이 자기 자신답게 살아가는 일에 좋은 촉매제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그 조언없이도 은중은 자신의 방식대로 잘 살아갔을 것이다. 은중은 애초에 결핍에 매몰되어 살 사람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언을 건넨 윤현숙 선생 자신이 그러한 결핍에 매몰되어 사는 사람이기에, 일종의 투사로 어린 은중에게 자신을 이입하여 조언을 건넸다고 생각한다.


은중의 어머니는 강인한 사람이다. 어찌보면 은중의 가정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무너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서 불안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아니었다. 은중의 어머니는 무너졌으면 무너진대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이다. 그녀는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태도가 아니라, 빈자리는 빈자리대로 두고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태도로 사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비관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게 우유배달이든, 파출부일이든, 분식집 장사든, 떡집이든 뭐든. 한 명의 개인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은중도 그랬다. 은중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 엄마의 우유배달을 돕는 은중을 보며 던지는 상연 아버지의 무례한 말이라든지, "너 아빠 없잖아."라는 친구의 말이라든지, 은중을 어떤 안정 궤도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보는 시선에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은중이 자신의 결핍을 찌르는 듯한 외부의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심성이 뒤틀리거나 삐뚤어지지 않고, 결핍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당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며 부끄럼없이 당차게 사는 엄마를 보고 그대로 배웠기 때문이다.


은중은 결핍을 채우기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은중은 형식보다는 본질에 집중한 삶을 산다. 은중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좋은 것들로 채우는 삶이라기보다는, 빈자리는 빈자리로 두고 자기 자신답게 살아감으로써 자신의 삶의 지평을 확장해간 인물로 보인다. "빈자리를 좋은 것들로 채워라"라는 조언을 결핍을 메꾸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색깔로 자기 삶을 자유롭게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은중은 그렇게 은중답게 소화했다.


결핍을 메꾸려 통제적인 삶을 사는 상연, 결핍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그려나가는 은중

상연은 오빠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완벽했지만 무너져버린 채 일어서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미움으로 괴로워했다. 심지어 그렇게 미워하던 엄마가 결국 암에 걸려 돌아가시기까지... 이렇게 척박한 상황 속에서 상연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부유한 환경에서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커온 상연이 감당하기에 벅찬 상황들이었을 것이다.

상연이 엄마를 빼다 닮은 점은 결핍을 메꾸려는 태도, 그리고 그에 기인한 통제심이다.

오빠의 죽음 이후 상연의 가정은 완전히 무너졌다. 상연의 부모는 이혼했고, 상연의 엄마는 실의에 빠져 일어서지 못했다. 상연 또한 자신의 엄마가 그러한 것처럼, 자기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빠가 왜 죽었는지 알기위해 광적으로 오빠가 쓰던 PC통신 비밀번호를 끝내 알아내고,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이 하필이면 오빠 천상학과 이름이 같은 김상학.

상연이 김상학에게 깊이 빠져든 모습은 자기 오빠의 죽음으로 인한 결핍을 메꾸려는 간절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거의 광적인 집착에 가깝게 30대가 되어서도 김상학을 놓지 못하는 모습, 그리고 은중에게 "너는 다른 사람이 있잖아. 나는 김상학 말고는 없어."라고 말하는 모습.


상연은 무너진 것을 복구하려고 한다. 결핍을 메꾸려고 한다.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한다. 그 결핍과 빈자리를 채워줄 유일한 사람은 김상학이라고 여긴다. 상연은 자신에게 닥쳐온 시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애초에 채워질 수 없다, 그래서 상연은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은 은중과 다르게,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받을수도 할수도 없으니, 생존에 매몰되어 일에 미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주의적인 태도로, 자신을 사랑해준 친구 은중에게마저 깊은 상처를 주면서.


은중은 그와중에도 자신의 상처에 집중하기보다는 상연을 바라보며 말을 건넨다. "네가 얼마나 빛나는 사람이었는지 안다면, 너 너한테 그렇게 못해."

은중은 통제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은중은 자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에 충실했으며, 과정에 정직하게 임하고, 일의 과정속에서도 누군가 부당함을 겪는다면 자신의 이익마저도 포기할 줄 아는 곧은 사람이었다. 은중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썅연의 뒷통수에도 불구하고 또 그 일조차도 받아들이고 영화계에서 나와서 드라마 작가로 전향하고, 또 그런대로 잘 산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연도 자기 엄마처럼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지만, 결국 이혼한다. "너를 누가 받아주겠니."라는 저주때문에, 보여주기위해 결혼했다고. 상연은 성공하면, 자신의 지독한 결핍이 메꿔지리라 생각하고 일에 매진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성공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결핍에 갇힌 상태로는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다.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정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안 생기더라." 이조차도 결핍을 메꾸기 위한 시도로 보여서 안타까웠다. 상연은 현재를 받아들이고 행복하고 충만할 방법을 모른채, 끝없이 결핍을 메꾸기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방식이 몸과 마음에 너무 오랫동안 굳혀져있는 사람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앞서 나아간 사람이었지만, 내면은 오랜 시간 정체되고 오그라든 채 멈춰있는 사람이었다.


반면, 그렇게 연애를 잘하던 은중은 막상 결혼하지 않았다. 100%가 아니면 연애도 안 한다는 신조까지... 은중은 이토록이나 자기 마음에 충실한 사람이다. 은중 엄마도 남편이 죽은 뒤에 재혼도 하지 않는다. 은중 엄마나 은중이나 그냥... 산다. 무언가 메꾸려고 살지 않고, 하루하루 일상을 충실하게 행복하게 산다.


그리고 결국 상연이 마지막에 찾게 되는 사람은 은중.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친구 은중을 마지막에 찾는다. "좋아하기만 하면 좋았을텐데. 미워해서 미안해" 상연이 결핍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은중을 미워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애썼어. 상연아. 너무 고생했어." 상연이 다음 생에는 애쓰지말고, 사랑하면서 살길, 은중이랑 또 친구로 만나서 그때는 미워하지말고 평생 좋은 깔깔 친구로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은중과상연 #결핍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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