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실력 #1
『어쩌면 가능한 만남들』이라는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나에 대해 잘 모를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그 책은 ‘클럽죽돌이’였던 한 청년이 23살에 20만 원으로 시작해서 1년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 청년은 에필로그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저, 다음 달에 사업자 등록증 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문단에서 이렇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처참하리만큼 커다란 실패가 잔뜩 심술궂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오도 되어 있다. 실패는 해도 끝까지 포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리라.”
그 청년에게 미래의 일을 알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요? 아니면 역시 ‘말이 씨가 된다’ 일까요? 이후로 10년간 정말 적잖이 실패했습니다. 아니, 실패하고 있습니다. 10년. 긴 세월입니다.
레프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불행하다”
나는 이 말의 형식을 빌려와 성공과 실패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자 합니다.
“성공한 사람은 비슷한 이유로 성공하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창업만이 도전과 모험은 아닙니다.
각 분야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일은 가장 일반적인 모험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창조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필라테스나 요가 선생님이 되려고 준비 중인 사람도 있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어떤 이는 목수가 되어 예쁜 통나무집을 짓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요컨대, 세상에는 우리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한 진로와 이를 위한 도전이 있습니다. 각자의 도전에는 수많은 성공이 있고 그보다 더욱 많은 실패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나하나의 실패 요인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그리고 경험적인 한 인간의 실패담이 세상 모든 종류의 실패를 대변하지도 대표한다고도 감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보편성 같은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설령 그것이 보편적일지라도) 실패의 요인을 분석하고 배제한다고 하여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기호로 표현한다면 대략 이 정도가 아닐까요?
실패의 요인들을 분석하고 최대한 배제한다 ≒ 성공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글을 읽는다고 하여 성공을 보장하는 일 같은 건 없습니다. 대다수의 또래와는 생김새가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던 개인의 모험과 실패담을 -심지어 운도 지지리 없는 편입니다- 그저 하나의 텍스트로써 편한 마음으로 읽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도전과 모험을 즐겨하지만 지지리 운도 없고 실력과 재능도 부족한 한 청년의 방황기로써 타산지석 삼을 일이 있다면 얻을 것은 얻어가고, 웃으며 흘려 넘길 것은 흘려주는. 그런 쿨하고 멋진 자세로 읽어봐 준다면…
온갖 쪽팔리는 ‘본인의 실패 이야기’를 남김없이 털어놓을 저자에게 그보다 더한 영광과 보람은 없겠습니다.
23살에 20만원으로 시작했던 좌충우돌 세계여행기 『어쩌면 가능한 만남들』로 찾아뵌 지 정확히 10년이 되었습니다. 어딘가 조금 어설펐던 한 청년은 그 시간 동안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30대 중후반의 장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불완전합니다.
별명 짓기를 좋아하는 얄미운 친구 녀석들은 그 장년에게 ‘프로실패러’라던가 ‘실패몬’이라는 지금 누구 놀리나 싶은 별명도 붙여줬습니다.
네, 뭐 어쨌든. 그래서 지금은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더 풍성한(…) 실패담으로 다시 찾아뵐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기왕이면 그때는 성공담이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도 있습니다.
실패를 묻어둔 아픈 기억을 굳이 헤집고 끄집어내어 정리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결코 쉽지 않을 과정입니다.
게다가 과거 회상이 아닌, 여전히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현재 진행형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지요.
얼마 전, 오랜 친구가 코로나19 펜데믹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나를 찾아와 소주를 한 잔 따라주며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야 인마, 그래도 그동안 그렇게 꾸준히 실패했다는 건 그만큼 멈추지 않고 도전하며 마음껏 살아왔다는 이야기잖아. 우리 중에 너처럼 희로애락이 분명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어. 충분히 축복받은 삶이야. 부러울 정도로. 그러니까 힘 좀 내라.”
조금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 말을 듣자 눈물이 흘렸습니다. 양 볼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그런 눈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패의 연속이라고는 해도 그 과정에서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도전과 실패의 반복이었지만 그 덕분에 ‘살아있다’는 것을 꽤 선명하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지고 태어난 것이 그다지 많지 않고, 배우고 익힌 재능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우리 삶에는 ‘지금 당장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따위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불변의 진리에 조금씩 다가가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성공을 위해 십 수년째 몸부림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실패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가?”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실패의 경험으로 얻게 된 게 더 많았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습니다.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프랑스의 옛 경제학자인 프랑수아 케나라는 사람은 “실패를 함구하는 건 성공을 뽐내는 것보다 더 나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실패를 경험하며 얻은 것, 즉 ‘실패의 전리품’을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0여 년 넘는 시간 동안 각별한 노력을 들이고 어마어마한 금액까지 지불하면서 간신히 얻은 실패의 경험들을 나와 동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친구들, 후배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만 있다면, 저자로서 더없이 행복하고 보람된 일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채워갈 '오롯이 실패에 대한' 이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소주 한 잔’, ‘따뜻한 차 한 잔’ 같은 위안과 격려, 그리고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동시에 이 실패에 관한 이야기가 앞으로 있을 당신의 새로운 도전과 모험에 작은 나침반이 될 수 있기를.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