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햇빛이 쨍했던 3월 말에 양산을 쓰고 걸어서 도서관에 갔다. 햇빛은 강했으나 아직 바람이 쌀쌀했던 3월 말이라 길거리에 양산을 쓴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햇빛이 강렬한 한여름에 양산을 쓰는 건 아무렇지 않지만, 아직 덥지도 않은데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양산을 쓰는 것은 뭔가 유난스러운 것 같고, 왠지 튀는 것 같아서, 나로서는 조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양산 쓰는 게 어때서,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양산 쓰는 것을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것인가 생각하다 보니,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몇 가지 일이 생각났다.
기억 1 : 동기 언니의 양산
내가 다닌 첫 직장은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상명하복 문화가 강했던 남초(남성의 비율이 훨씬 높은) 회사였다. 그리고 선배들의 나이도 훨씬 많았다. 그곳에서 나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어린 나이와 성별(여성)만으로 이미 튀는 존재였다. 남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기존 조직 문화에 철저하게 나를 맞추려 노력했고, 무난한 신입으로 거듭나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함께 힘들게 생활하던 입사 동기들 중에는 유난히 피부가 하얀 언니가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회사 밖으로 나가다가 우연히 언니를 마주쳤는데, 언니가 양산을 쓰고 팀 선배들(전부 남자였다)과 함께 식당으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수백 명이 근무하는 우리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 양산을 쓰는 사람은 그 언니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저 언니는 나중에 크게 될 거야'라고도 생각했다.
고작 양산 쓴 것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 지금에 와서는 우습지만, 모이면 항상 누군가를 평가했던 첫 직장의 분위기 속에서 혼자 고고하게 양산을 쓰고 다니는 언니에게 어떤 시선이 가해질지 알았기에, 그런 시선 따위보다 자외선 차단을 더 중시하는 언니의 실용적인 결단과 그 결단의 결과물인 하얀 피부가 사뭇 부러웠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양산 쓰는 것을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일로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기억 2 : 양산을 쓰고 느긋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주머니
청소년기 또는 대학생 정도 되었을 때였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차를 타고 어디를 가고 있었다. 집 근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받고 멈춰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양산을 쓴 상태로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깜박이는데도 개의치 않고 느릿느릿 느긋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평소 매우 급한 성격의 엄마가 그 아주머니 때문에 우리 차가 지체될 것 같은 기미가 느껴졌는지 냅다 "속 편한 여편네, 양산 쓰고 느릿느릿, 남들은 신경도 안 쓰고 혼자만 여유롭네" 같은 비난의 소리를 했다.
차 안에서 말했으므로, 횡단보도에 있던 아주머니는 듣지 못했고, 차 안에 있던 가족들만 그 비난을 들었다. 지금에 와서는 말을 한 엄마도, 차에 있던 다른 형제들도 기억하지 못할 지극히 사소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사소한 순간이 어찌 된 일인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나는 그 일로 '양산을 쓰고 여유롭게 걷는 것'이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비난받을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기게 되었건 것 같다. 그래서 고작 양산을 쓰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던 것인가 싶다.
한편 나는 유독 유난 떠는 것을 싫어하고, 쿨하고 싶어 한다.
무엇인가에 집착하며 연연하는 것이 싫고, 어떤 것에든 조금 쿨한 태도를 유지하고 싶다. 육아도, 연애도, 공부도, 시험도, 친구도, 일도.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쿨한 태도를 유지하려 애써 왔다. 이런 내 기준에서 덥지도 않은데 양산을 쓰는 것은 고작 햇빛 때문에 유난을 떠는 것 같고, 쿨하지 못한 태도 같아서 꺼려졌다. 양산은커녕 선크림도 건너뛰기 일쑤였던 쿨한 척의 대가는 혹독했다. 기미와 잡티가 많이 생겼고, 잡티를 제거하기 위한 시술에 돈과 시간을 들이고 따끔한 고통도 감내해야 한다. 잡티 제거 시술을 받고 나니, 햇빛에 대해 쿨한 척하지 말고 자외선 차단에 유난을 떨어야 할 이유가 확실해졌다.
얼마 전에 유발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를 읽다가 중세시대 마녀사냥에 대한 끔찍한 서술을 읽었다. 누군가에 의해 마녀라고 고발당하면, 마녀임을 자백하고 처형당하거나. 자백할 때까지 상상 이상의 고문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즉 고문당하다가 자백하고 죽거나, 그냥 자백하고 죽는 것 외에 달리 살아날 길이 없었다. 당시 특별히 아름답거나 특별히 더 사교적이어서 눈길을 모았던 여성들 또는 남들과 다른 행동으로 조금 이상하다고 평가받았던 여성들이 마녀로 몰려서 끔찍하게 죽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살았다면 튀는 행동으로 남의 눈에 띄는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길이었을 것이고, 가능한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없는 듯이 사는 것이 생존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전생이 있다면 나는 전생에 마녀로 몰려서 죽었거나, 이웃이 마녀로 몰려서 억울하고 끔찍하게 죽는 것을 보고 두려움에 몸서리쳤던 선조로부터 두려움 유전자를 강력하게 물려받은 것 같다. 그럴 정도로, 조금이라도 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행동을 극도로 자제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마녀사냥을 하는 중세시대도 아니고 남의 눈에 띄는 것을 이렇게 극도로 싫어하고 자제할 이유가 없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다지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눈에 띄든 말든 개의치 말고 자유롭게 행동하자. 따뜻한 봄에 쓰는 양산은 나에게 그 첫걸음이다. 이 글의 초고를 쓴 날에는 매번 가장 뒤에서 듣던 줌바댄스 수업에서 앞줄에 서보기도 했다. 당연히 양산을 쓴 날도, 줌바댄스 수업 앞줄에 선 날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혹시 본인만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스스로를 가두고 괜히 주저하고 자제하게 되는 일이 있다면, 그 이유를 천천히 되짚어보고 스스로 만든 제약을 기꺼이 벗어버리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