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책방 이야기 1

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한 줄의 문장

by 초콜릿책방지기

1. 어찌 보면 인생이 나도 모르는 곳으로 이끌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이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평범하기만 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누군가가 내 취향에 대해 물어볼 때조차 한참 동안 골똘히 생각해봐야 간신히 한 두 마디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이 스스럼없이 덕후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때도 있다. 한 가지 또렷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특별함을 조금은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취향을 자유롭게 주장하면서 살 만한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혹은 주변 사람들이 내 취향에 공감하지 않거나 비웃을까 봐 부끄럽고 겁이 나서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저 이유들 모두를 오가며 평범하게 살아왔다.


어쩌면, 오랫동안 소설을 써왔다는 사실이 조금은 특별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책 한 권 내지 못했고, 부끄러운 습작의 기억들은 컴퓨터 하드 디스크 속에 조용히 묻혀있다. 오래전 일기장처럼 앞으로도 오랫동안 다시 꺼내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습작을 하든 안 하든, 책은 언제나 흠모의 대상이었다. 적어도 독서의 순간만큼은 평범한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한 문장 한 줄에 공감하는 그 순간은 특별하다. 그래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에게 책은 은밀한 특별함이다.


사실 인생이 꼭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서 열패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효리가 말한 대로, 훌륭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특별한 인생은 아니더라도, 특별한 문장 한 줄에 공감하는 취향 정도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 이고는 싶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에 함께 공감할 사람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집안에 갇혀서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엄마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거나 동네에서 알게 된 엄마들과 간혹 차를 마실 때도 있지만, 함께 독서를 하고 좋아하는 문장을 나누는 것과 같이 내밀한 공감을 하는 관계로 발전하기는 매우 어렵다. 주변에서 찾을 수 없다고 마음 맞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에는, 살림과 육아를 잘 해내고 싶은 엄마에게 가로막혀 있는 장벽이 꽤 높은 편이다. 그저 서평을 잘 써놓은 블로그를 방문하거나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가끔 중학교 때 열심히 이용하던 헌책방이 생각날 때가 있다. 저렴한 가격에 몇 권씩 사들고 간 책들을 일주일도 안 되어서 다 읽고 되팔러 가면, 헌책방 아저씨가 흔쾌히 받아주면서 내가 좋아할 만한 책들을 권해주고는 했다. 사람 한 명 간신히 지나다닐만한 통로만 남겨두고 책방 천정까지 가득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면서, 거기 있는 책들을 전부 다 읽고 말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쌓여 있는 책들을 모두 읽기도 전에 책방이 문을 닫아버리긴 했지만. (아마 내가 책을 되팔아서 문을 닫는 시기가 조금은 더 당겨졌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마음에 닫힌 문 앞에서 몇 번이나 서성이던 기억이 난다. 저 책들은 다 어디로 갈까, 내가 책방 주인이었다면 갑작스럽게 문을 닫지는 않았을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중학생이었으니까 할 법한 생각이었지만, 살림과 육아를 하게 된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책방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책방의 주인이 된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내 책방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좋은 책들을(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눈에 띄게 진열해 놓을 수도 있고, 일정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취향에 맞는 책을 추천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반대로 나에게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예쁜 활자들과 알록달록한 표지의 책들에 둘러싸여, 제목만 훑어봐도 뿌듯한 기분이 드는 공간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 같았다.


하지만 책방을 낸다는 것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내는 것보다 어쩌면 더 복합적인 일일 것이다. 막연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든가,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서 덜컥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내 돈과 시간이 모두 맞물려 있을 것이며, 주변 사람들의 현실적인 우려를 극복해내야 하고, 종국에는 사라져 갈 과거의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을 낼 수 있다면 특별히 용기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책방에 관한 그런 모든 고민들을 안고 채 괴로워해 보기도 전에, 인생이 나도 모르는 곳으로 이끌었다. 그러니까 그것도 내 선택이긴 했지만, 돌아보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힘에 의해 인생이 끌려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