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쌉쌀한 한 줄의 문장.
살면서 단 한 번도 초콜릿을 만들면서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초콜릿으로 밥벌이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언젠가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여러 관광지를 거쳐 우연히 가게 된 '초콜릿 박물관'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초콜릿 만들기 체험을 해본 것이 내가 초콜릿과 맺은 인연의 시작이라고 무리해서 우긴다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심지어 초콜릿을 수제로 만든다는 사실에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내가 초콜릿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동생은 카페를 열고 싶어 했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선 단골이 되어 줄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동생은 커피를 파는 "평범한" 카페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가 많은 커피를 놔두고, 초콜릿을 하겠다고 했다. 그걸 먹으러 카페에 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나는 가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디저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그리 보편적이지 않던 무렵이었다.
초콜릿을 배운 후 당시에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초콜릿 가게에서 일하던 동생에게 나는, 차라리 햄버거 가게가 어때, 하며 진지함 같은 것은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리고 말을 했다. 동생을 돕고 싶기는 했지만, 초콜릿보다는 햄버거를 먹을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말을 했던 것이다.
동생은 정색을 하고, 최대한 진지한 얼굴로 초콜릿 카페를 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도와달라고.
도와줄 의향은 있었지만, 초콜릿이라니.
절박한 동생의 얼굴을 앞에 두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대책도 없이 말이다. 그 무렵의 나는 살림과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뚜렷한 취향도 없었던 탓에 막연한 기대를 안고 동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뒤로 나는 얼결에 초콜릿을 배우러 다녔고, 초콜릿 관련 서적을 전공 공부하듯이 밑줄을 쳐가며 공부했고, 몇 개월간 부동산을 돌아다니다 가게를 얻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 흐름에 맡겨버렸다. 나를 끌고 가주는 어떤 힘에 의지해 버린 셈이다.
물론 나는 그것이 내 의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로는 과거를 돌아볼 때, 어쩐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어떤 힘이 자신을 이끄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인생을 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분명히 내 선택대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내 선택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주변의 모든 조건과, 과거의 모든 내가 축적되어 나의 선택과 의지를 만들어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해서 만들어낸 것과 조금은 다른 것 같은 의지 말이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밥벌이로 삼고 살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더라도, 그것이 먹고사는 일로 치환되는 순간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기가 쉽다. 그리고 먹고사는 일이 절박할수록 좋아하는 일에 관한 동경은 사치처럼 보인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도 숨 가쁘니까 말이다.
언뜻 보면 초콜릿 카페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공간이다. 초콜릿 자체도 매력적인 대상이다.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 취향이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그것이 밥벌이가 된 이상, 초콜릿을 만들고 판매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라는 의미를 좀 더 갖는다. 매일 똑같이 이어지는 템퍼링, 재단, 성형과 같은 초콜릿 작업을 묵묵히 이어나가고, 설거지와 청소를 한결같이 해내야 하는 엄정한 노동이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과 노동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작업을 통해서,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분명히 어제와 다른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초콜릿과 같이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는 경우에는 반복되는 일을 숙명처럼 이어나가야 한다. 그런 날들이 켜켜이 쌓여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미려한 기술을 가진 초콜릿 기술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초콜릿을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초콜릿을 만들고 맛보는 것보다는, 초콜릿과 관련된 글을 읽거나 쓰는 일에 더 매력을 느꼈다. 만드는 일이 마냥 싫지만은 않지만 책을 읽는 것에서보다는 확실히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글을 읽고 쓰던 시간이 초콜릿을 만드는 시간으로 대체되고, 카페를 운영하는 일에만 모든 것을 집중해야만 할수록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