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한 입, 달콤 쌉쌀한 문장 한 줄
아이가 한글 공부를 하고 있어서 아이를 통해서 글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글자를 하나씩 띄엄띄엄 끊어서 읽으니 이따금씩 단어가 생경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래도 이제는 음절 하나하나를 떼어 읽고 나서도 그것을 이어서 이해하는 능력까지는 생겼다.
하루는 아이가 '상황버섯'을 더듬거리며 읽더니, "이 버섯은 못 먹겠네."한다. 나는 무심코, "아냐, 그건 끓여서 먹으면 되는 버섯이야."하고 말해줬더니 "상한 버섯을 어떻게 먹어?"하고 묻는다.
아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글자의 한계 내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그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래, 상황버섯이 그리 흔한 버섯은 아니야.
그렇게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상황버섯이 상한 버섯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가 말하는 단어를 좀 더 주의 깊게 듣게 되었다. 아이의 시선으로 보니, 단어들이 모두 새롭게 보였다. 그렇게 아이와 놀다 보니, 문득 책방에서 한 강연이 생각이 났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말 인기가 없었던 강연이었는데(지인 모두 동원해서 8명이 참석했다), 주제 자체가 그럴 만했다. 막 누구나 오고 싶어 지는 강연이 아니었다. 생태철학자이신 신승철 교수님의 강연이었는데, 교수님의 저서인 "저성장 시대의 행복 사회"에 기반한 강연이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저성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비호감으로 인식이 된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고성장, 상승, 상위, 톱.. 등등 위쪽을 향하는 개념을 훨씬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닌지 정확히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일단 강연의 흥행은 폭망이었다(교수님, 죄송합니다ㅠㅠ).
하지만, 강연의 질을 따지고 보면 참석자들의 만족도는 아주 높았다. '저성장'이라는 단어가 비호감이라고 해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부인할 길 없는 저성장의 시대이고, 우리가 이런 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과 자세로 살아야 할지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답은 참석자 각자 이끌어내는 것이지만, 모두가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좋았던 대목은 들뢰즈의 '발견주의'였는데, 이것은 아이의 한글 공부와 연결이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진부하게 바라보고 생각하던 대상들을, 혹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새롭게 보기. 새로움을 발견하기.
내가 잘 이해를 했다면, 위와 같은 요지의 내용이다. 아이와 함께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어를 새롭게 보기. 그리고 아이를 새롭게 보기. 밥 잘 안 먹고, 하라는 대로 잘 하지 않고, 떼 많이 쓰는 아이로만 생각하던 아이를.
책방이 문을 연 지 이제 다섯 달째 접어들었고, 나는 책방이 무심한 일상처럼 굴러가기를 바라는 동시에 새롭게 보려고 애를 쓴다. 눈을 크게 뜨고, 낯선 이름 들뢰즈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