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요즈음에는
첨예한 논쟁을 펼쳐야 할 펜 끝을
자본으로 두드려 대충 뭉개놓으시고
칼보다 날카로운 언론은 어디로 갔냐며
불평하곤 하시는데
펜촉을 검끝보다 예리하게 갈아내려면
적어도 검보다 펜에 더 큰 무게가 실렸어야죠
칼을 들고 설치는 망나니보다
속내도 잉크처럼 새까만 저들을 경계해야죠
사람이 사람에게 총검은 겨누지 못해도
백지장 하나 두고 펜은 겨누어도 되는가
서서히 번져가는 검은 활자의 병태마저
이제는 무시할 터인가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헐값에 펜을 집어들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거기 담긴 책임이 가볍다는 것
말그대로 먹칠을 하는 일이다
보이는 것도 부정하는 마당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무슨 말을 못할까
쓸려오다 사라지는 문자들의 무덤
새하얀 소지되도록 전부 태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