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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Jun 08. 2020

(5) 27살, 필리핀 어학연수 가다


[내 방에 드래곤이 나타났어요]


아무튼 그렇게 창문을 열고 여유를 즐겼던 게 문제였던 걸까. 어느 날은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천장에서 갈색 큰 무언가가 떨어졌다. 너무 놀랐다. 시력이 좋지 않아 무슨 물체인지 확인을 못했다. 큰 나방인가? 나방치곤 엄청 큰데? 안경을 끼고 다시 확인을 해보니 도마뱀이었다. 아 며칠 전에 창문을 열었더니 그 틈으로 들어왔구나..........



1인실 방의 단점을 알았다. 벌레나, 도마뱀이 나오면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도마뱀을 처치할 동안 응원해줄 친구 따윈 없다. 난 도마뱀과 함께 지내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저녁 11시가 훨씬 넘어 복도로 나와 청소부 직원에게 말했다. 


내 방에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드래곤????????"


도마뱀은 영어로 '리자드'다. 어릴 적 봤던 포켓몬스터라는 만화엔 '리자드'라는 몬스터가 있었다. 얘가 내공이 쌓여(?) 진화하면 '리자몽'이 되었다. 리자몽은 날고, 입에서 불을 뿜기도 해서 흡사 '용'처럼 생겼었다. 나는 리자드를 외치고 싶었지만, 당황스러움에 뇌에 오류가 생겨 그냥 바로 리자몽도 아닌 '드래곤'이라고 말해버린 것이었다.


직원들은 드래곤은 본인들도 처치하지 못한다고 했다. 난 나의 말실수를 깨닫고 리자드가 나타났다고 정정했다. 하지만 대답은 같았다. 도마뱀은 복의 상징이라 죽이면 안 된다 했다. 나는 제발 두 손을 잡고 울기 직전으로 제발 부탁드린다고 했다. 난 오늘 얘랑 같이 있기 싫었다. 정말 이 날 만큼은 내가 룸메이트가 없는 게 너무 싫었다. 난 다시 부탁했다.  죽이지 않아도 되니 쫓아만 달라고. 내 말을 듣던 직원은 다른 직원을 불러 내 방으로 함께가 주었다. 


청소부 직원들과 함께 내방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대만 학생을 만났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싶어서 그 학생에게 괜히 스몰 토킹을 시도했다.


"안녕? 내 방에 도마뱀이 나타났어. 무서워"


아, 물론 짧은 영어실력으로 대화했다. 


그러자 대만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너 한국인이니?"

"어떻게 알았어?"

"한국인들은 도마뱀 무서워해"

"넌 안 무서워?"

"응. 나는 안 무서워"

"그럼 네가 내 방에 도마뱀 잡아줘"

"싫어"


그렇게 쿨하게 거절하고 대만 친구는 기숙사로 떠났다. 


그날 밤 나는 청소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편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감사의 보담으로 선생님들 주려고 가져왔던 팩들을 잔뜩 드렸다. 


첫날엔 그렇게 울고불고 겁에 질려있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그렇게 울었었나? 하는 기억들은 사라졌다.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나 또한 이곳에서 그냥 살아가졌다. 고작 한 달이지만.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내가 어떠한 위기에 쳐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면 되는지 플랜 A, B, C를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뭐 큰 문제없이 잘 지냈다.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았다.


영어실력은 그냥 큰 변화가 없었다. 정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아마 한 달 있기엔 너무 짧았나 보다. 적어도 두세 달은 있었어야 했나 보다. 필리핀 학원에서 짧은 기간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었다. 


"한국에서 좋은 대학교도 못 갈 바엔 해외에서 대학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일단 여기로 왔어요."

"자녀들 다 키우고 내 삶 살려고 왔어요. 일단 영어를 해야 뭐라도 할 것 같아 왔죠."

"회사에서 연수 보내줘서 온 거예요."

"워킹홀리데이 가기 전에 인맥 좀 쌓으려고 왔어요."


등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대다수가 필리핀 어학연수를 끝내고 바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으로 떠나는 워홀러들이었다.


아.. 나도 워홀 가려고 여기 온 건데..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 같이 국제공항으로 가는 학생들이랑 택시를 같이 탔는데, 이 친구들은 바로 호주 혹은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친구들이었다.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내심 그 친구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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