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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May 04. 2021

(12) 내 생에 가장 분주했던 일주일


[호주는 참 좋은 곳이에요! 서양인들과 어울려보세요!]

 호주에 도착을 했다. 열두 시간 비행 동안 감기약을 먹고 푹 잔 덕분에 큰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비몽사몽 정신을 차려보니 호주였다.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호주에 도착했다. 10월에 여행을 한 번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공항에서 크게 헤매지 않았다. 짐도 수월하게 잘 찾았고, 티켓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유심칩도 헤매지 않고 잘 구매했다. 심지어 여행 온 아주머니들은 나의 행동을 보고 바로 따라 하셨다. 10월에 처음 왔을 때랑은 다른 모습인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난 공항에서 헤매지 않았다. 


호주는 유독 건조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시즌에는 산불이 종종 난다고 한다. 코알라들이 먹는 유칼립투스 잎이 기름의 성분을 띄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산불은 유독 심했다. 가뭄이 심해져 산불이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러 산불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그 탓인지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났다. 


국제공항에 내렸더니 10월에 내가 호주에 처음 도착했었을 때의 그 느낌은 온데간데없이 하늘이 누렇게 되어있었다. 집 앞에 산이 불탔을 때와 같은 냄새가 났었다. 호주 산불 호주 산불 뉴스에서 말만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공항 픽업을 마중 나온 한인 택시를 탔다. 

타고 씁쓸한 표정으로 누렇게 된 하늘을 쳐다보는데 택시 기사님이 대뜸 말을 걸었다.


“워홀 온 거예요?”

“네~~! 워홀 막차 타고 왔어요. 몇 년을 고민하다가.”

“눈썹 문신도 하셨네요?”

“헉, 티나요?”

“아 사실은 제가 눈썹 문신을 했는데, 제가 하고 나니까 눈썹 문신 한 분들을 다 알아보겠더라고요 하하”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약 20분을 차로 달린 것 같았다. 


“호주는 참 좋은 곳이에요. 저도 워홀로 왔다가 세상에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호주에 정착하게 됐어요. 여기서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았거든요. 살다 보니 제 자녀는 학업 경쟁이 심한 곳에서 키우고 싶지 않고 그냥 맑은 공기, 산, 바다를 보게 하면서 지내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워홀 오신 김에 백인들 많은 곳에서 가감하게 생활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워홀 비자가 고작 1년밖에 안되는데... 평생 살면서 언제 한번 백인들 커뮤니티에 속해보겠어요. 한인들 많은 곳에서 최저도 받고 일하면서 지내지 마시고 오신 김에.. 돌아갈 곳이 있을 때.. 한번 꼭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가끔 워홀 오는 친구들이 한국과 똑같이 한국인들이랑 일하는 거 보면 좀 괜히 아쉽고 그랬어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대답만 할 정도로 긴 조언을 해준 기사님이었다. 


이 외에도 본인이 호주에서 백인들 커뮤니티에 속하게 되었던 20대 때의 이야기와 어디서 살았었는지, 어디서 얼마를 주고 지냈었는지 등 여러 가지 팁을 알려주셨다. 

사실 조언을 원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조언을 해주면 괜히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난 내가 이런 조언들을 바랐는지, 이상하게 정말 나를 위해주는 말 같고, 잘 말해주시는 게 선생님 같은 느낌도 들어 되물었다.


“아.. 진짜 듣고 보니 정말..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어디 가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없었거든요.

이런 경험도 재산인데 이렇게 공유해주시는 게 너무 감사해요. 이런 조언을 원하는 사람들도 되게 많을 것 같아요. ”


멋쩍게 웃으신 기사님은 내 말을 이어 답하셨다


“그렇죠. 제가 호주에 올 때만 해도 요즘처럼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잘 없었어요.... 예전에 사실 유학원 상담도 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워홀로 온 친구들을 보면 이렇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네요.. “


나는 감사한 마음에 택시에서 내리면서 팁으로 $5를 더 드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귀한 $5이 500원처럼 느껴졌다.)




["한국 드라마 좋아해서 한국어를 할줄알아요"]

캐리어 2개와 무거운 짐 가방을 들고 호텔에 들어갔다.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어우씨.. 힘들어 죽겠네 진짜! 하..” 


했더니, 안내 데스크에 있는 직원이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한국분이세요?”


한국말을 수준급으로 할 줄 알았던 필리핀 직원이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배웠더니 한국어가 금방 늘었다고 한다. 얼마나 잘했냐면 나도 모르게 “한국인인데 저한테 거짓말하는 거죠?”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이름이 엘리사였던 것 같은데, 나중에 호텔 나가며 후기에 엘리사만큼 친절한 직원을 못 봤다며 칭찬글을 마구마구 적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을 만나면 급 친절해진다던데 그 말을 실감했다. 나도 모르게 그 직원에게 친절을 베풀고있었다. 

호텔에 있으면서 모르는게 있으면 엘리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그녀는 언제나 친절하게 잘 대답해중었다.


호텔에서 카드를 받아 체크인을 했다. 보통 워홀러들이 처음 호주에 오게 되면 백패커 방을 이용한다고 들었다. 사실 나도 그랬어야 했는데 내가 생활해야 하는 곳에는 돈을 아끼고 싶지 않아 무리해서 호텔방을 잡았다. 

(다른 건 다 참고 무던한 편인데 잠자리에 예민한 편이다.)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든 생각은 

‘이제 최대한 빨리 잠잘 곳과 돈 벌 곳을 찾아야 한다’였다.

누가 내 귀에 ‘준비 시~작!’ 하며 총성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먼저 메모장을 열어 글을 적었다. 


[2020년 상반기 목표]    

마스터룸 구하기

일자리 구하기

투잡 뛰기

사실 호주에 도착하니 목표가 없다. 그냥 내 삶을 살아야겠다.


호텔에 있을 수 있는 기간이 4일밖에 안되어서 4일 안에 집을 찾아야 했다.

일단 든 생각이 외국인과 함께하는 곳은 절대 안 된다 였다. 한인 사회에 섞이든 말든 상관없이 여기에서 적응하기 전 까지는 한국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야지 난 상관없어 괜찮아. 였다.

좀 전까지 나에게 자상하게 워홀 팁을 알려준 택시 기사님께 조금 미안해졌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 급했다. 


방을 보러 다니기 위해 여기저기에 내 자기소개를 담은 카톡을 넣고 문자를 넣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나이 29살 여자 XXX이라고 합니다. 부동산 사이트 보고 연락드려요. 고시텔, 자취 경험이 있어 깔끔하고 조용하게 방 사용 가능합니다~! 혹시 인스펙션 보러 갈 수 있을까요?”라고 


솔직히 이 정도로 친절하게 글을 넣을 필요는 없었는데. 그때는 어떻게든 집을 빨리 구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생각보다 바로 집을 볼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일요일에 집을 보러 오라고 했다. 헉... 안돼... 나는 그전까지 집을 구해야 하는데!! 


급한 대로 제일 깨끗해 보이는 집에 문자를 넣었다. 내일 당장 방을 보러 와도 된다는 말에 다른 집을 더 알아보는 걸 취소하고 포기했다. 이사는 언제든지 하면 되니까. 나는 지금 평생 살 집을 구하는 게 아니니까. 크게 미련을 가지지 말자 라는 생각과 함께. 


그날 저녁에 갑자기 사이렌이 울려 소동이 일어났다. 다행히도 큰 일은 없었다.

이렇게 호주의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처음으로 본 방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다음날이 되었다. 


호주는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40도 가까이 웃도는 날, 나는 집을 보러 처음으로 트레인을 탔다. 

작년 10월, 호주에 놀러 왔을 때 스냅숏을 찍어준 작가님이 트레인 안에서의 사진도 함께 찍어 주셨기 때문에 트레인 타는 법도 얼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길치였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트레인을 거꾸로 타지 않았고, 나는 방을 보러 잘 도착할 수 있었다. 


큰 강을 끼고 있는 동네였다. Rhodes라는 동네였다. 나는 처음에  rose인 줄 알고 아시아인들이 많았다. 

더 걷다 보니 백인도 보이고, 중동, 흑인들도 모였다. 여기는 특정 인종만 지내는 곳이 아닌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 것 같았다. 


점심이 살짝 지나 덥고 땀이 났다. 


집주인이 문을 열어주었다. 집은 시원했다. 호주는 햇빛만 피하면 시원하다고 하는데 사실이었나 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입구가 따로 없기 때문에 입구에서 들어오자마자 멈칫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나요? 신고 들어가야 하나요?’. 호탕한 집주인분은 ‘여기 문 뒤에 신발 놓으시면 돼요’ 했다.


초등생 아이가 하나 있는 한인 가정집이었다. 여자 셰어 생을 받는다고 했다. 


“저희 집이 좁죠?” 하는 말에 나는 

“아뇨! 너무 좋은데요! 깔끔하고 너무 좋아요~!”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질문을 하나 더 했다.


“혹시.. 바퀴벌레 나오나요?”


돌아온 대답


“아뇨, 여기 삼 년 살면서 바퀴벌레는 못 봤어요. 근데 바퀴들도 시원하고 따듯한 거 좋아해서, 가끔 환기시킨다고 문 열면 어떻게 알았는지 날아서 들어오더라고요.”


난 생각했다. 호주 바퀴벌레들은 약간 ‘새’ 같구나 


그 집에서 살고 싶다는 의사를 내 비친 뒤, 하루가 지나 난 돈을 인출하여 보증금을 내고, 미리 2주 치 방값도 냈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는 토요일 짐을 들고 시티에서 로즈로 가는 길은 너무 험난했다. 

내가 있는 호텔 근처에는 역이 없어 역까지 이십 분이 넘게 걸었어야 했다. 호텔에서 많은 돈을 쓴 것 같아 택시도 차마 부르지 못했다. 오전 10시. 멋지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설프게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기분 나쁜 약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이라 얇은 티를 입고 있었고, 호텔이 빗이 없었다. 내 머리를 엉키기 시작했다. 화장이 번지기 시작했다. 짐은 무거워 팔이 점점 아파왔다. 괜히 키가 더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앉을 벤치를 찾고 있는데 그날따라 모든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있었다. 내 꼴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 


“아. 도와달라고 부를 사람이 없네. 어떻게 도와달라고 할 사람이 없어”


혼자서 잘 지내보자 하며 나름 씩씩하게 왔는데, 온 지 일주일도 안되어 철저하게 혼자가 된 나 자신을 실감했다. 



[작은 비하인드 스토리]


호주에서 지낼 돈을 벌려고 월 200만 원을 넘게 주는 약국에서 일을 했다. 일을 하다가 나를 괴롭히는 직원이랑 싸움이 났는데, ‘아 도대체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산부인과 온라인 마케팅을 하기 위해 동네 맘 카페에 가입되어있던 나는, 그 카페에 들어가 ‘용한 점 집 추천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글을 올렸다. 


그리하여 추천받은 애기 동자네


큰 신이 바다에 살고 있다 하여 그 동네는 유독 점쟁이들이 많았다. 미역 비린내가 나고 구불구불한 길들이 많았던 그 동네로 들어갔다. 내 옆에는 약국에서 같이 일하던 젊은 아줌마도 같이 따라왔다. 그 아줌마는 최근에 남편 몰래 집을 사는 바람에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점집에 들어가니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주변엔 예쁜 아기 한복들이 가득했다.

휘파람을 몇 번 불던 점쟁이는 깃발을 뽑아봐라고 하더니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호주 갈 거가?”

“네”

“멜버른 가라.”

“네? 저 시드니 갈 건데요”

“아니야 멜버른이야. 자꾸 영어 M이 보이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시드니로 왔다. 그 사이에 정말 멜버른을 가야 하나 걱정을 많이 하긴 했다. 시드니에 있으면 뭔 안 좋은 일 생기려나.. 괜히 찝찝했다.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방으로 옮긴 날, 다음날 되어 햇살을 보기 위해 닫힌 커튼을 걷었다. 

그리고 창 밖에 있는 풍경을 보곤, 난 한참을 웃었다. 


점쟁이가 말한 눈에 아른거린다는 스펠링 ‘M’이 멜버른이 아닌 이거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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