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고기구이 엄마의 배추전

브런치 X한식문화: 우리家한식-한식문화 이야기 공모전

by 쓰는 사람

나에게는 추억의 음식이 아닌, 궁금한 외할머니의 음식이 있다. 외가 쪽에는 이민 가신 친척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한국을 방문하실 때마다 엄마에게 만들 줄 아느냐고 물었던 음식이다. 외할머니가 자주 만드셨고 잔칫상에는 반드시 올랐던 음식으로 고기를 아주 오래 정성 들여 다져서 간장 간을 하고 얇게 펴서 숯불에 구워 만든다고 했다. 친척분들의 회상으로는 다 구워진 고기구이를 네모 반듯하게 얌전한 한입 크기로 자르는 것까지가 요리의 완성인데 한입에 쏙 넣으면 힘줄 하나 남아있지 않은 부드러운 고기가 어느새 녹아 없어진다고 했다. 외할머니가 부엌에서 정정하게 요리하셨던 건 벌써 삼사십 년이 넘은 일인데 그 고기구이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까지 합세해서 그게 얼마나 귀하고 손끝 여문 음식이었는지 한참을 신 나게 이야기들 하시는 통에 나는 먹어보지도 못한 그 음식을 덩달아 그리워하며 귀 기울여 듣곤 했었다. 떡갈비나 너비아니인가 해서 여쭤보면 입을 모아 그것과는 좀 다르게 훨씬 얇싹하면서 부드러운 맛이라고 하셨다. 치매로 오래 고생하셨으면서도 돌아가실 때까지 곱고 음전한 모습으로 나를 감탄하게 하셨던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할머니가 특별히 정성 들여 만드신 음식은 얼마나 깔끔하고도 섬세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외할머니의 성격과 솜씨를 가장 닮았다고 여겨지는 막내딸인 우리 엄마이지만, 그래서 다시는 먹을 수 없는 그 음식을 엄마는 재현할 수 있을까 해서 친척분들이 여쭤보셨던 것일 테지만, 엄마는 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그 음식을 만들 때마다 부엌에서는 칼로 고기 다지는 소리가 온종일 났었다고. 시간과 정성이 아주 많이 들어간 음식이라고. 그러고 보면 정확한 명칭도 없이 가족들에게 그저 고기구이라고 불리는 그 음식은 가족이 모두 함께 즐겼던 고유한 외할머니 표 음식이었기에 쉽게 흉내 낼 수 없어 더 특별한 맛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른 넘어까지 엄마 품에 꼭 붙어살던 내가 해외 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스스로 밥을 지어 먹기 시작한 지도 몇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두부김치를 만드는 데 두 시간이 걸릴 정도로 미숙하던 요리가 점점 늘어 감자탕, 족발, 심지어 묵을 쑤어 먹을 정도로 웬만한 한식을 만들어 먹는 데는 자신이 붙었다. 부모님 연배의 이민 세대와는 달리 집 앞에 있는 한국 마트에서 신선한 한식 재료와 각종 반조리 식품을 공수하는 데도 큰 애로사항이 없다. 먹방 쿡방 시대의 유튜브와 인터넷에는 사 먹는 맛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다고 자랑하는 쉽고 빠른 요리법이 넘쳐난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심심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엄마의 음식에 내심 불만을 가지기도 했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찾은 요리법으로 나와 남편의 입맛에 맞게 좀 더 짜고 달고 맵게 만든 음식은 엄마의 음식보다 좀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했다. ‘벌써 엄마를 능가한 건가!’ 하고 잠시 배은망덕한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지 않다. (엄마, 미안)


그렇지만 왠지 몸과 마음이 힘든 날 여전히 제일 먼저 입맛이 당기게 생각나는 것은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엄마의 음식들이다. 엄마가 ‘오늘은 이런 걸 해 먹었어.’ 하고 카톡으로 저녁 밥상 사진을 보내올 때 자랑하려는 주요리보다 곁에 있는 별것 아닌 반찬들에 더 눈이 갈 때도 많다. 엄마는 특별히 값비싼 식자재를 써서 과시성 음식을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지나친 양념은커녕 재료가 한두 개쯤 빠진 게 아닌가 싶게 간결한 최소한의 재료만을 사용해서 요리한다. 너무 간단해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참 따라 하기 힘든, 소박하고 슴슴하고 깊은 맛이 난다.


지난번 한국에 방문했을 때 엄마는 나와 남편에게 메밀전을 해 주셨었다. 전은 바로 만들어 먹어야 맛있다며 알 배추, 채 썬 양배추, 봄 미나리로 재료를 바꾸어가며 따뜻하고 바삭한 전들을 꼬박 삼사십 분동안 가스 불 옆에 붙어 서서 부쳐 내셨다. 엄마의 전 부치는 속도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 날름날름 맛있게 집어먹으면서도 오랜만에 본 사위와 딸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겠다고 당신은 한 입도 못 드시는 걸 보면서 마음이 쓰였었다. ‘엄마는 더위도 많이 타고 더우면 얼굴도 금방 벌게지는데. 저 봐, 벌써 얼굴이 벌겋네.’ 라고 생각하면서. 채소보다는 고기를 더 좋아하고 양념이 센 음식을 선호하는 남편에게 너무 맛이 밋밋한 것은 아닐지도 신경이 쓰였다. 군말 없이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기에 장모님 앞이라고 무리하나 보구나 생각했다. 오랜만에 열 몇 시간을 날아가 만난 엄마의 요리하는 모습은 왠지 더 애틋했고, 아직 새 사람인 남편과 함께 있어 이것저것 괜스레 중간에서 눈치가 보였고, 엄마의 음식은 여전히 심심한 듯 봄 채소 본연의 맛이 살아있어 참 맛있었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엄마의 배추 메밀전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놀랍게도 남편이었다. 한국에 갈 때마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매 끼니 한식 위주의 특식을 대접 받는 것은 해외 살이 하는 사람들의 특권 같은 것인데, 이번 한국 방문에서 먹었던 그 많은 음식 중에 장모님의 배추 메밀 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평소 좋아하는 종류의 음식이 아니었는데도 한국에 가서 꼭 먹고 오고 싶었던 회나 차돌박이 같은 것보다도 좋았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면 한번 만들어 먹지 뭐.’라고 쉽게 생각했다. 김치전 해물파전 감자전 등 각종 전은 이미 우리 부부의 식단에서 사랑받는 메뉴였다. 배추전은 더 간단해 보였다. 적당히 배추를 반죽에 묻혀 지져 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엄마가 맛있는 메밀가루라며 그날 쓰셨던 메밀가루도 싸 보내주셨던 터였다. 한국에서 파는 배추와 똑같은 배추도 한국 마트에서 살 수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배추 메밀전을 부쳤던 저녁, 생긴 것부터 축축 처진 나의 배추전을 보니 직감적으로 엄마의 배추전과 같은 맛이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뭘 해 줘도 다 맛있게 잘 먹어주는 남편에게 지레 찔려서 맛이 어떠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때 그 맛이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 라는 조심스러운 한마디 평을 남겼다. 메밀전을 몇 접시씩 비웠던 그때와 달리 그날 저녁 우리는 배추 네 장을 겨우겨우 먹어 치웠다.


우리는 여전히 엄마의 배추전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리고 나의 배추전이 얼마나 실패였는지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남편이 엄마의 전과 나의 전을 비교했다고 씩씩대면서 엄마와 통화를 했으니 엄마는 아마 우리가 다음에 한국에 가면 또 꼬박 불 옆에 붙어 서서 흉내 낼 수 없는 맛의 배추전을 만들어주실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족과 내가 꾸린 새로운 가족이 만나는 지점에서 추억이 되어준 배추 메밀전은 아마 외할머니의 고기구이처럼 오래오래 우리 가족에게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언제든 찾아볼 수 있고 트렌드에 따라 빠르게 바뀌는 인터넷의 레시피 말고 엄마의 요리법들과 엄마만의 비법들을 하나씩 부지런히 배워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언젠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의 아이들에게 ‘이게 엄마 아빠 신혼 때 외할머니가 해주셔서 아빠가 정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야.’라고 이야기하며 그럴듯한 배추전을 만들어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오지 않았으면 하는 먼 미래가 왔을 때도 이게 ‘외할머니의 맛이지.’ 하고 다 같이 추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