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특별한 약속이 없었다.
일부러 아무 일정도 잡지 않은 평일이었다.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에 잠시 들렀다.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며
꽃을 바라보다가 몇 송이를 골랐다.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고른 꽃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포장을 풀자
중기 끝에 아직 남아 있던 물기가 손에 닿았다.
가위로 줄기를 정리하고
잎을 하나씩 떼어내는 동안
시간이 조금 느리게 흘렀다.
무언가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꽃을 만지고 있을 때면
생각이 많아지지 않는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도
굳이 떠올리지 않게 된다.
예전에는
이런 시간이 사소하다고 생각했다.
꽃을 만진다고 해서
하루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대단한 결과가 남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안다.
이 시간들이 없으면
하루가 금세 나를 지나쳐 버린다는 걸.
꽃을 꽂고 나면
집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눈에 띄게 변하는 건 아니지만
어딘가 부드러워진 느낌.
이런 오후를 보내고 나면
하루를 잘 살았다는 기준이 조금 달라진다.
무엇을 해냈는지보다
어떤 상태로 이 시간을 지나왔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아마도 나는
이렇게 사소한 장면들을 계속 쓰게 될 것 같다.
꽃을 만지던 오후처럼,
크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 남는 순간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