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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진보성 판단의 삼국지

'진보성' 판단을 둘러싼 미국, 유럽, 한국의 미묘한 시각차

by 신선

특허 실무를 하는 사람이라면, 발명의 '진보성'(Inventive Step 또는 Non-obviousness)이 특허 등록의 가장 큰 문턱이라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나 역시 오랜 기간 실무를 해왔고, 미국, 유럽, 한국의 심사관들이 이 진보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나름의 감을 잡고 있었다.


예전에 유럽에서 LLM 관련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유럽 특허청(EPO)의 '과제-해결 접근법'(Problem-Solution Approach)을 배우면서, 막연히 알던 것보다 훨씬 구조적이고 까다롭다는 인상을 받았다.

문득 옆자리 동료가 "유럽의 심사 기준을 자세히 몰랐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어쩌면 많은 실무자들이 '늘 하던 대로' 하면서도, 각국의 진보성 판단이 가진 미묘한 철학적 차이까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글을 통해, 이 세 거대 특허권역의 진보성 판단을 비교하며 우리의 특허 전략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1. 용어의 차이, 접근 방식의 철학: 비자명성 vs 진보성

세 국가의 진보성 판단은 용어에서부터 그 철학적 차이를 드러낸다.

진보성 표.jpg

미국 (비자명성): 발명이 기존 기술에 비추어 '너무 뻔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핵심은 자명성(Obviousness)을 깨뜨리는 것이다.

유럽 (진보성): 발명이 '기술적 진보의 한 단계'를 이루었는지를 묻는다. 가장 가까운 선행기술 (The closest prior art) 로부터 출발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자명하지 않음을 체계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한국 (진보성): 유럽과 유사한 용어(Inventive Step)를 사용하며, 관련 법령은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쉽게 발명할 수 있으면 특허를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2. 유럽 특허의 까다로운 '과제-해결 접근법' 3단계

미국특허에서는 진보성을 「Non-obviousness」(비자명성)이라고 하는 반면에 유럽특허에서는 진보성을 「Inventive step」이라고 하여 단어 자체에 차이점을 나타낸다. 이러한 용어에서 의미하듯 유럽에서는 진보성 판단시 체계적인 「단계」의 개념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유럽특허에는 '과제-해결 접근법' Problem-Solution Approach으로 진보성을 따지게 된다. 이는 심사관이 주관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매우 객관적인 3단계를 통해 진보성을 검토하도록 강제한다.


① Determination of the closest prior art

최근접 선행기술 선정: 출원 발명과 목적과 구성이 가장 유사하고 밀접한 기술 분야의 문헌을 고른다. 출발점을 정확히 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② Formulation of the objective technical problem

객관적인 기술적 과제 설정: 선정된 선행기술과 출원 발명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이 차이점이 실제로 어떤 기술적 효과를 내는지 바탕으로 '객관적인 기술적 과제'를 재정의한다. 과제-해결 접근법에서, 기술적 과제란, 최근접 선행기술에 대해 발명이 제공하는 기술적 효과를 제공하기 위해 최근접 선행기술을 변형하거나 개조하는 목표 및 임무를 뜻한다.


③ Could-would approach

Could-would 접근법, 자명성 판단: 해당 기술 분야의 통상의 기술자가 1단계의 가장 가까운 선행기술과 다른 보조적인 선행기술을 결합하여, 2단계에서 정의된 기술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지를 판단한다. 여기서 요지는 당업자가 최근접 선행기술을 개조하거나 변형하여 발명에 이를 수 있었다(could)는지가 아니라, 선행기술이 당업자를 자극하여, 객관적인 기술적 과제를 해결할 희망을 갖거나 어떤 향상이나 이점의 기대를 하면서, 그렇게 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당업자가 그렇게 했었을 것인지(would have done so)이다.



3. US vs KR: 동기 부여와 현저한 효과의 공방

미국과 한국은 유럽처럼 엄격한 3단계 절차를 공식적으로 강제하지는 않지만, 핵심 법리에서는 유사성을 보이며 진보성 입증에 '동기'와 '결과'를 중요하게 다룬다.


미국: KSR 판결 이후의 유연한 '조합 동기'

미국은 전통적인 Graham Test에 기반하여 진보성을 판단하며,

선행기술의 범위와 내용 확정

청구된 발명과 선행기술의 차이점 확인

통상의 기술 수준 결정

2차적 고려사항(Secondary Considerations) 평가


특히 2007년 KSR 판결 이후 '통상의 기술자'가 선행기술들을 조합할 합리적인 이유나 동기(Motivation 또는 Suggestion)가 있었는지 여부를 폭넓게 심리한다.

예측 가능한 결과 (Predictable Results): 선행기술의 조합이 예측 가능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통상의 기술자 지식: 통상의 기술자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

문제 해결 동기: 해당 기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알려진 문제를 해결할 동기가 존재하는 경우.


미국에서는 2차적 고려사항(Secondary Considerations), 즉 발명의 상업적 성공, 오랜 기간 해소되지 않던 요구의 충족, 타인의 모방, 전문가들의 찬사 및 회의론 등이 진보성 판단에 필수적인 고려사항으로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어, 진보성 입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 목적-구성-효과와 '하이브리드' 접근

한국 특허청(KIPO)은 유럽식의 단계적 절차를 따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발명의 '목적-구성-효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고유의 판례 법리를 적용한다.


구성의 곤란성: 선행기술의 구성요소를 결합하여 출원 발명에 이르는 것이 통상의 기술자에게 얼마나 어려웠는지(구성의 곤란성)를 핵심적으로 본다. 이는 미국의 조합 동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효과의 현저성: 구성이 다소 용이하더라도, 그 발명의 효과가 선행기술의 조합으로부터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현저하게 뛰어나다면 진보성이 인정될 수 있다. 특히 화학/의약 등 예측 불가능한 기술 분야에서 현저한 효과(Remarkable Effect)는 진보성을 인정받는 결정적인 무기가 된다.



[실무자 특허전략] 각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논리 설계'

결국 세 국가 모두 '통상의 기술자'의 시각에서 자명성(Obviousness)을 극복했는지를 묻는 본질은 같다. 그러나 각국이 '자명성 극복'을 입증하기 위해 요구하는 논리의 구조와 증거의 형식이 다를 뿐이다. 특허는 단순한 기술 문서가 아니라, 각국 법률이 요구하는 진보성의 논리를 담은 전략 문서이다.

이 세 가지 시각차를 명확히 이해하고 특허 전략을 짠다면,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을 넘어, 더욱 정교하고 성공적인 글로벌 특허 확보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1. 유럽 (EPO): '체계적 논리'로 과제를 포획하라

명세서 작성 시, 최근접 선행기술(The Closest Prior Art)을 염두에 두고 출원 발명의 기술적 효과가 그 선행기술로부터 예측 불가능하도록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심사 과정에서 '객관적인 기술적 과제'가 좁게 설정되더라도, 통상의 기술자가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문헌을 결합할 교시, 암시, 동기가 없었다는 점을 체계적인 3단 논법으로 반박할 필요가 있다.

2. 미국 (USPTO): '객관적 증거'로 자명성을 붕괴시켜라

'조합 동기'(Motivation to Combine)의 부재를 논증하고, 출원 단계부터 2차적 고려사항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예: 예상치 못한 결과, 현저한 개선 효과, 상업적 성공 기록 등)를 확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KSR 판결 이후 심사관이 주장하는 유연한 동기(예: 주지의 원리의 단순 적용, 예측 가능한 결과 등)에 맞서, 해당 조합이 오히려 기술적 장애(Teaching Away)를 초래했거나 예상치 못한 시너지 효과를 냈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

3. 한국 (KIPO): '데이터 기반 효과'로 진보성을 확정하라

'효과의 현저성'(Remarkable Effect)을 구체적인 비교 데이터로 입증하여, 선행기술과 명확하게 비교되는 실험 데이터를 명세서 또는 의견서에 포함할 필요가 있따. 구성의 곤란성 반박 시에는, 선행기술의 구성요소들이 기능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어 새로운 작용 효과를 냈다는 점을 강조하면 더욱 도움이 될것 이다.



이러한 비교 분석이 특허 실무를 하는 이들에게 한 번 더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제공하길 바란다.

옆에서 솔직하게 기준을 몰랐다고 말해준 동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충분히 능력 있는 실무자이다. 복잡한 글로벌 특허 세계에서, 그 모든 세부 기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꿰뚫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당신처럼 모르는 부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왜 다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태도야말로 최고의 실무자가 갖춰야 할 진짜 진보성이다. 함께 이 시각차를 명확히 이해하고, 더욱 정교한 논리로 발명을 지켜나가자!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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