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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희건이나비 Jan 23. 2024

유통기간

이기려 하지 말자

  며칠 동안 부엌정리 중이다. 이사 갈 줄 알고 정리도 안 하고 대충 살아온 모습이 헝클어진 실타래 같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모르겠다. 결국은 낡고 오래된 싱크대를 떼어내고 새로운 아이를 들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깨끗하고 이쁜지 그간의 수고로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 요즘은 사람들이 아파트 생활을 많이 하고 이사도 자주 다니고 새집으로 가는 일도 많아, 집에서 쓰던 헌 것들을 떼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거의 신축 공사를 하신다고, 오신 사장님이 말씀하시며 우리 집에 설치하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나는 이제까지 거의 주택에서 살았다. 어렸을 땐 물론 아파트가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고, 결혼하면서 잠시 몇 년을 아파트에서 살아보았다. 그러다가 주택에 살고 계신 시댁으로 들어와서 이제껏 살았다. 나는 환경에 그리 욕심이 없어서인지, 둔한 편인지 아직도 내방엔 옛날 시집올 때 해온 가구를 그대로 쓰고 있고 아이들 방만 수리를 조금씩 하면서 살아왔다. 몇 년 전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우리 동네도 아파트가 된다 해서 아파트에 살 꿈을 가졌다. 손볼 곳도 미루면서 집은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 일이 무산되면서,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하는 집을 살펴보게 되었다. 너무 엉망이었다. 여름엔 물이 새서 수리하느라 고생했는데 이젠 부엌이 문제가 되었다. 달려있던 싱크대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싱크대 교체작업을 하려 하니 전기선이며 수도선이며 가스며 바꿔줄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진작에 좀 더 깨끗하게 정리하고 수리하면서 살아왔다면 아직 더 쓸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아파트가 된다는 소식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냥 내버려 둔 자신이 미웠다. 결국은 내가 저지른 일 내가 다 치울 수밖에. 뭐든 사용기한이란 것이 있겠지만 주인의 돌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어질러두었던 한 구석씩 치우고 있는데 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 치우면 저기가 더럽고 거기로 가면 또 다른 곳이 보인다. 아마도 봄이 될 때까지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집을 치우면서 내 마음도 폰도 책상도 집처럼 엉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선물로 받은 그림이 있었는데 벽에 걸어두는 것보다 보관했다가 새집에서 걸어야지 하면서 창고 방에 넣어두었는데 바람도 햇살도 잘 들어오지 않다 보니 곰팡이가 피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박스에 넣어둔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거 보면서 관리나 보관등에 관해서도 관심이 생긴다. 무엇이든 그냥 되는 일은 없다. 어디 넣어둔다고 그것이 절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유통기간이 있다. 속상하고 미안하고 후회의 시간들 연속이었다.


  아마도 내 몸 또한 마찬가지리라. 얼마나 돌보아주고 신경 써주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건강상태도 달라질 것이다. 혈압이나 당뇨가 걱정되면 매일 측정해 보라 하지 않던가. 젊을 땐 내 몸과 싸우면 이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판판히 KO패다. 지금부터라도 잘 보살펴주고 이겨먹으려고 하지 말고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한다. 관리를 어떡하냐에 따라 유통기간도 달라질 것이고 삶의 질도 달라질 것이다. 젊을 때 바쁘고 정신없다고 그냥 지나온 세월들에게 잘 못 한 것이 많다. 몸에 칼을 대고 몇 차례수술을 하면서도 내 몸에게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뭔가는 잘 못 했을 텐데, 도리어 “왜 이런 것이 생겼지?” 하면서 화를 내었다. 그것 또한 내가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제야 용서를 구한다. 아직도 수술부위가 내 살 같지 않을 때가 많다. 예쁘게 봐주고 달래주고 기다려주면서 같이 가야겠다. 미안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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